이동식 로켓발사대, 문종화차(文宗火車)
2014-12-22
채연석 교수|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로켓의 발사틀은 여러 가지 화약무기의 발사틀 중에서는 그 구조가 가장 간단하다. 왜냐하면 발사틀은 로켓이 날아갈 각도와 방향만 정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당시 로켓의 발사대는 빈 화살통 같이 로켓을 뉘어놓을 수 있는 것이면 되었다. 현대 군에서 사용하는 로켓포의 발사틀 역시 앞뒤가 뚫린 연통토막처럼 원통형으로 간단하게 생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118권, 29년(1447년) 11월 22일의 기록에 보면
“평안·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유시하기를, ‘주화(走火)의 이익은 크다. 말 위에서 쓰기가 편리하여 다른 화포(火砲)의 미칠 것이 아니다. 기사(騎士)가 혹은 허리 사이에 꽂고 혹은 화살통에 꽂아서 말을 달리며 쏘면 부닥치는 자가 반드시 죽을 뿐 아니라, 그 형상을 보고 그 소리를 듣는 자가 모두 두려워서 항복한다. 밤 싸움에 쓰면 광염이 하늘에 비치어 적의 기운을 먼저 빼앗는다. 복병(伏兵)이 있는가 의심스러운 곳에 쓰면 연기 불이 어지럽게 발하여 적의 무리가 놀라고 겁에 질려 그 진정을 숨기지 못한다.’고 하여 주화는 말을 달리며 화살통에서 쏠 수 있어서 편리하다고 기록하였다. 이것이 로켓화기의 특징인 것이다.
신기전의 대량발사 하기위해서 연구 개발된 것이 바로 화차(火車)이다. 화살통에 꽂아서 1~2발씩 발사하던 중신기전 100발을 화차의 발사틀에 꽂고 차례대로 발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한사람의 병사가 1~2발의 중신기전을 발사하던 것을 4명의 병사가 100발의 중신기전을 발사할 수 있도록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화차에서는 중신기전만 발사하였던 것은 아니다.
지금의 총알에 해당하는 길이 22cm, 직경 8mm의 세전(細箭:가는 화살) 2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총통발사틀’도 사용할 수 있었다. ‘총통발사틀’에는 세전 4발을 꽂아 발사할 수 있는 4전총통 50개를 설치하여 거의 동시에 200발의 세전을 발사할 수 있게 설계된 아주 위력적인 무기였다.
화차는 “임진왜란 때에 변이중(邊以中)이 수레 위에 승자총(勝字銃) 40개를 실어 점화선을 몇 개씩 모아 계속해서 발사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박진이 경주 전투에서, 권율이 행주산성 전투에서 이것을 사용하여 큰 공을 세웠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이보다 200년 앞서서 문종이 손수 연구하여 발명한 것이다. 문종은 세종의 세자로 있을 때부터 동생인 임영대군, 금성대군과 함께 화약무기의 연구를 도울 정도로 과학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 이때 만든 설계도를 보면 폭넓은 연구와 많은 실험을 거친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데, 실록(實錄)에 기록된 대로 문종화차는 문종의 독창적인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아마 우리나라에서 왕이 직접 새로운 무기를 발명한 예는 문종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문종은 2년 3개월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왕위에 있었지만 세종때 세자로 있으면서 화약무기 개발을 지휘 한 뒤 왕이 된 후에는 화차라는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며 위력적인 이동식 로켓화기 발사대인 병기를 발명한 과학 분야에 창의성이 뛰어난 훌륭한 군주였다.

행주산성에서 신기전을 발사하는화차
문종화차의 구조는 크게 수레와 신기전 발사틀, 총통발사틀로 구성되어있다.
- 수레
수레의 바퀴 직경은 87.5cm이며, 바퀴 하나에 사용한 바퀴살은 15개이다. 바퀴축의 길이는 131.2cm이다. 축 중간에 넓은판자기둥(廣柱)을 세우는데, 그 길이는 54.7cm이고, 넓이는 23.4cm이다. 그리고 가운데에 작은 기둥(小柱)을 세우는데, 그 길이는 68.4cm이다. 넓은판자기둥 위에 각각 멍에를 설치하는데, 그 길이는 231.2cm이다. 멍에의 뒤쪽 아랫면과 맨 끝의 윗면에 등철을 설치한다.(등철은 횡목을 받으며, 횡목의 중간에 구멍을 뚫어 횡목의 세움대를 만든다) 이 화차에는 총통틀(銃筒機)를 실을 수도 있고, 신기전기발사틀(神機箭機)를 실을 수도 있다.
화차수레의 설계도에서 알 수 있듯이 문종에 사용한 수레는 길이 231.2cm이고, 폭이 73.5cm, 바퀴의 축은 차체로부터 58.8cm 떨어진 아래에 설치되어 있고, 바퀴의 직경은 87.5cm이다.

문종화차 수레설계도
- 신기전 발사틀
신기전 발사틀의 구조는 가로 117.2cm, 넓이 10.9cm, 폭 4.7cm의 횡목위에 높이 43.7cm, 세로 28.1cm, 가로 84.3cm의 직육면체 나무틀 속에 가로, 세로 각각 5.6cm, 길이 23.4cm짜리의 직육면체 나무토막에 길이로 직경 4.7cm의 구멍을 뚫은 원공목통 100개를 차례로 쌓아 조립하여 놓은 것이다. 아래에서 첫 번째 줄에는 10개의 목통을, 그리고 2∼7번재 줄에는 1줄에 15개씩 나열한 것이다.
조립해 놓은 원공목통의 안쪽 구멍 입구 중심을 가느다란 철사로 꿰어놓아 신기전을 원공목통에 꽂고 이동하거나, 발사할 때 원공목통이 뒤로 기울어 졌을 때 신기전이 신기전 발사틀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하였다.

신기전 발사틀 설계도
- 총통발사틀
총통틀은 길이 84.4cm이며, 높이 34.4cm, 두께는 6.2cm의 자루판자의 내면에는 총통자루 50개를 설치하며, 5줄로 세운다. 또 네 곳의 모퉁이에 짧은기둥(短柱)을 설치한다. 짧은 기둥의 길이는 25.6cm인 사각기둥이다. 기둥사이에 네 개의 사이막 판자를 설치하고 매 판자의 윗면에는 10개의 구멍을 뚫어 그곳에 사전총통을 설치한다. 총통의 아래끝(下端)은 자루(柄板)의 내면에 있는 총통자루를 씌우게 하고 총통의 부리부분은 사이막 판자의 구멍에 걸친다. 사이막 판자 네 개를 차례로 끼우고 그 위에 사이막 판자와 같은 크기의 횡목을 올려놓아서 흩어지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끝으로 복토를 설치해서 튼튼히 하는데 복토는 좌우의 기둥 위에 먼저 설치해 놓는다.

총통틀화차
문종화차의 가장 큰 특징은 신기전의 발사 각도를 높일 수 있도록 고안된 점이다. 세종 때의 일반적인 수레는 바퀴의 바퀴 축 위에 수레의 차체를 올려놓는 데 비해 문종 화차에 사용한 수레는 바퀴 축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차체를 올려놓아, 신기전의 발사 각도를 최고 40~45도까지 높일 수 있게 하였다. 만일 당시의 일반적인 수레에 신기전 발사틀을 올려놓았다면 신기전의 최대 발사 각도는 기껏해야 20도 정도밖에 되지 못한다.
발사각이 40도일 때 최대로 날아갈 수 있는 거리가 100m라면 20도를 발사했을 때는 65m를 날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차체를 바퀴축 위에 올려주어 발사각을 20도에서 40도로 올려줌으로써 신기전의 비행거리는 35m, 즉 발사각이 20도일 때 보다 1.5배나 더 날아갈 수 있게 된다. 발사각을 0도에서 최대 40도까지 조절하여 로켓의 사정거리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게 설계한 것은 문종화차만이 가지고 있는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점으로 높이 평가 할 수 있는 것이다.

병기도설의 문종화차
문종화차는 1451년 처음 제작되기 시작하여 그 해에만 총 450여 대가 전국에서 제작되어 주요 지역 배치되었다. 화차는 전시에는 무기로 사용되었지만 평상시에는 수레를 물건을 운반하는데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점을 보면 화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군겸용기술의 산물로 평가된다.

문종화차 수레설계도
화차의 작동방법
신기전 화차에서 신기전의 발사 과정에 관한 기록은 『화포식언해』에 있는데 그 내용은 중신기전에 소발화를 붙여 신기전 발사틀의 매 구멍에 한 개씩 꽂고, 중약선 다섯 사리(141cm)로 중신기전 약통에 꽂혀있는 약선(전통약선)과 연결하여 모아 묶어 두 끝에 불을 붙여 신기전을 발사하였다. 그러므로 화차의 신기전 발사틀은 100개의 중신기전을 동시에 발사할 수 있는 대단히 위력적인 화기였다.
신기전의 사정거리는 신기전의 발사 각도를 이용하여 조절하였는데 수레의 손잡이를 땅에 놓으면, 발사각은 최대인 43°가 되어 중신기전의 사정거리도 최대가 되어 약 150-200m를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간의 발사각에 대하여는 수레의 등철에 관한 설명에서 수레에 설치된 2개의 손잡이용 횡목중 멍에의 중간 등철에 끼웠던 것을 뽑아, 멍에 끝에 있는 손잡이용 횡목의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중간 횡목을 수직으로 세워 조정하였다.

복원한문종화차(1980)
화차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제작된 것은 문종때이지만 실제로 많이 사용된 시기는 성종때에 들어와 그동안 침체 상태에 있던 화차가, 신숙주등이 화차는 적의 포위망을 뚫고 나가는 데 유효하다 하여 군기사로 하여금 이를 만들어 양계의 진에 나누어 보내어 항상 연습하도록 함으로써 다시 중요화기로 인식되었다. 변방뿐만 아니라 중앙에서도 모화관에서 화차와 화전의 발사연습을 권장함으로써 문종 이후 처음으로 화차의 사용과 발사연습이 빈번해졌다. 이러한 영향 때문이었는지 성종 23년(1492) 1월 명의 지배 밑에 있던 건주(建州) 오랑캐들이 작당하여 다시 우리의 국경 지방을 침입하였을 때에도 적의 포위을 뚫고 적을 물리치는 데 화차의 공이 컸다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도 해전에서 거북선이 있었다면 육전에서는 화차가 있어서 적을 무찌르는데 크게 효과적 이였다. 조선시대 제작된 화차의 유물이 남아있는 것은 없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1980년 행주산성의 유물기념관에 필자가 처음 문종화차를 복원하여 전시하게 되었고 그 이후 여러 곳에도 복원하여 전시하게 되었다. 문종화차의 복원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철띠를 두르지 않은 나무바퀴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문종때는 철띠를 두르지 않은 나무바퀴를 수레에 사용하였는데 현재 철띠를 두르지 않은 나무바퀴를 제작하는 기술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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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 |
|---|---|
| (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 |
| 신기전 발견 및 복원자 | |
| 액체추진제 과학로켓(KSR-3) 사업책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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