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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작성일 2014-12-17

원종우 대표|과학과사람들

 

누구나 알다시피 크리스마스는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온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흔히 탄생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역사가들에 따르면 실제적인 의미가 있는 날은 아니고, 탄생 연도 자체도 기원 0년보다 4년 정도 빠르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부분들의 정확성보다는 축일로서의 상징성이 크고, 원래는 기독교의 기념일이지만 지금은 종교나 문화와 상관없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지에서 축하하고 즐기는 날로 정착되어 있다.

그래서, 이렇게 들뜨고 설레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과학은 어떤 관점에서 무엇을 축하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예수가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온 것을 기념하듯이 과학은 우리 자신이 인간으로 세상에 서게 된 이 기적같은 일을 되새기고 자축해 보면 어떨까? 우리는 어디에서 시작했고 어떻게 사람으로 이 땅에 서게 됐고,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과학은 실로 많은 통찰을 던져주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단지 우리 인간만의 스토리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기까지 수많은 생물들이 참여한 기나긴 세월과 험난한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은 인간은 함께 살며 이 세상을 채워가는 모든 생물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일단 우리 모두는 진화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살고 있다. 약 40억년 전 첫 단세포 생물이 생겨난 이래 진화의 근간인 자연선택은 누구도 막을 수도, 거스를 수도 없는 지구 생태계의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해 왔다. 흔히 진화를 마치 아메바가 플랑크톤으로, 이어 물고기로, 양서류와 파충류로, 급기야는 쥐와 원숭이를 거쳐 인간으로 서서히 ‘변화’해 온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는 진화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다. 진화는 개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환경에 적응한 종들이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종들이 도태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진화가 덜된’ 사람 같은 것은 우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원시인이라고 부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도 그 시점에서는 진화상으로 완성된 존재였고 다만 환경이 변해서 멸종되고 다른 종이 등장했을 뿐이다. 우리 인류 속에서 뿐 아니라, 실은 진화가 덜 된 생물이란 것 자체가 없다. 즉 아메바, 상어, 도마뱀, 코끼리, 고릴라가 인류보다 덜 진화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진화에는 목표 지점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우리의 흔한 착각처럼 진화가 인류를 향해 진행되어 왔다면, 소철이나 상어같이 오래된 생물들이 인간으로 진화하지 않고 그 자리에 수억년 이상 남아 있는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처한 환경에 최적화되어 아직도 멸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잠자리나 개구리, 코끼리, 침팬지 등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이 현재의 관점에서 진화적으로 최적화되어 있다. 따라서 이렇게 살아 존재하는 종들은 아무리 단순한 형태라고 해도 진화상에서의 우열을 비교할 수 없다.

인간과 다른 생물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강력한 힘은 생존과 번식의 본능이다. 이는 모든 생물들의 유전자에 프로그램되어 있다. 특히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거나 식량을 얻거나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위들은 인간에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가 인간만의 고유한 것이라고 여기기 쉬운 치장하기, 노래 부르기, 선물 주기, 안아 주기 같은 다양한 행동들이 동물 세계에도 흔히 존재한다. 나아가 동물들도 인간처럼 약자를 돌봐주기도 하고 집단을 위해 스스로 희생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의 행동이 보다 복잡하고 여러 가지 의미들로 엮여 있지만 그 근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가 사람같다고 여기곤 하는 것은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동물들이 실제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동물은 오성이 없기 때문에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다고 주장했고, 100여년 전까지도 과학자들은 동물이 감정이 없는 생존 기계라고 여겼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인간과 동물이 생각만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사람은 분명히 동물의 일원이지만 동물일 ‘뿐’은 아니다. 과학을 피상적으로 접하면 과학은 언제나 ‘사람도 결국 동물이다’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여러 중요한 특징들이 있다. 예컨대 침팬지나 개는 꽤 높은 지능을 갖고 있지만,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켰을 때 그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손가락만을 쳐다본다. 반면 인간은 아주 어린 아이라도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쳐다본다. 학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미 그런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인간의 모방 능력이다. 사탕이 들어있는 상자를 놓고는 사탕을 꺼내는 다소 복잡한 방법을 보여주면 침팬지와 인간의 어린 아이 모두 어렵지 않게 그 방법을 따라한다. 그러나 내부를 투명하게 만들어 실은 그 방법을 따라할 필요 없이 아래의 칸막이만 열면 아주 쉽게 사탕을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 어떨까? 침팬지는 금새 모든 절차를 무시하고 칸막이를 열어 사탕을 꺼내지만, 인간의 아이는 여전히 원래의 과정을 반복해 수행한다.

이 연구는 마치 침팬지가 인간보다 머리가 더 좋다는 증거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다. 침팬지가 당장의 목적 달성만을 위해 행동하는 데 반해, 인간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을 그대로 모방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인간이 문화를 어떻게 습득하고 또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다. 직접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지식한 모방이라는 형태를 통해 더 복잡미묘한 행위를 전달할 수 있을 때만 문화와 문명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리처드 도킨스가 제기한 밈(meme) 개념이 있다. 유전자가 모든 생물 속에서 자신을 복제하면서 전달되듯이, 인간 세상에는 문화를 전달하는 밈이라는 복제자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유전자처럼 물리적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할은 유전자 못지 않게 강력하다. 종교, 이념, 건축술 같은 것이 모두 인간만이 가진 이 밈의 역할 속에서 복제되고 전달된다.

이렇듯 인간은 분명히 특별한 존재다. 이 지구상에서 문명을 세우고 문화와 과학기술을 일으킨 것은 인간만이 가능했던 거대한 업적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과학 이전의 시대에 인류는 그 특별함을 지나치게 과장했다. 그래서 인간이 지구의 주인으로서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다른 생물들의 고통에는 둔감했다. 인간이 동물의 일원이라는 점을 모욕으로 여기고 애써 부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인 것은, 인간도 진화의 틀 안에서 생존과 번식의 본능에 지배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도취를 벗어나 스스로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훌륭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과 생명의 진실을 이해하고 그 의미를 아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진짜 가치를 찾아가는 시점에 놓여 있다.

글머리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사람으로 세상에 서게 된 우리 자신을 과학의 눈을 통해 축하해 보자고 했었다. 실은 이 놀라운 세상과 그 속을 살아가는 생명, 그리고 그 구성원로서의 우리 자신 모두가 축하받을 자격이 있다. 수십억년의 진화의 결과 지금 이 순간 하나의 종으로써 존재하고 개체로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도 큰 축복이다. 그 세월들처럼 때로는 고난과 고통을 겪기도 하고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이 거대한 순환의 일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원종우 (주)과학과 사람들 대표 프로필
사진 원종우 (주)과학과 사람들 대표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진행
2008년 SBS 창사 특집 환경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휴스턴 영화제 대상 수상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태양계 연대기>,<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저자
The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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