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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의학] 1923년 - 인슐린의 발견(프레더릭 그랜트 밴팅, 존 제임스 리처드 매클라우드)

작성일 2014-12-08
1923banting_medicine
  • 1891 ~ 1941
    프레더릭 그랜트 밴팅
    Frederick Grant Banting
    캐나다의 내과의사. 1916년에 토론토 대학교를 졸업한 후, 1917년부터 1919년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군의관으로 복무하였다. 1920년부터 웨스턴온타리오 대학교에서 강의하였으며, 1921년부터 1922년까지 토론토 대학교에서 약리학을 강의하는 동안 공동 수상자인 J. J. R. 매클라우드의 연구소에서 매클라우드, 베스트와 함께 인슐린을 발견하였다. 1922년에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23년 밴팅 앤드 베스트 연구소를 창립하였다. 1934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 1923macleod_medicine
    1876 ~ 1935
    존 제임스 리처드 매클라우드
    John James Richard Macleod
    영국의 생리학자. 1898년에 애버딘 대학교를 졸업한 후 1년간 라이프치히 대학교 생리학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었다. 1902년에 런던 병원 의학교에서 생화학을 강의하였으며, 1903년에 클리브랜드에 있는 웨스턴리저브 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었다. 1918년에 토론토 대학교 생리학 교수가 되어 재직 중 밴팅 및 베스트와 함께 연구하여 인슐린을 발견하였다. 1928년에 애버딘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인슐린의 발견을 통하여 당뇨혼수 증상의 회복에 도움을 주었다.

수상 업적

The Nobel Prize in Physiology or Medicine 1923 was awarded jointly to Frederick Grant Banting and John James Rickard Macleod“for the discovery of insulin” 192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인슐린의 발견”으로 프레더릭 밴팅과 존 매클라우드에게 공동 수여되었습니다

수상 추천문

전하,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 교수위원회는 인슐린을 발견한 밴팅 박사님과 매클라우드 교수님에게 1923년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셀수스 박사와 아레테우스 박사는 1세기경 자신들의 저서에서 다뇨, 심한 갈증, 심각한 체중소실 등이 주요 증상인 질병을 묘사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당뇨병`’입니다. 이처럼 이 질병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17세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국의 토머스 윌리스 박사에 의해 환자의 소변에 당과 같은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100년이 지나서야 영국의 돕슨 박사는 소변에서 문제의 당이 어떤 종류인지를 알아내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인해 설명할 수 없던 질병을 올바르게 연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실질적인 진보가 이루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 당을 해당 유기체에 이질적인 물질이며 질병상태에서만 생성된다고 생각했습니다. 1827년에 타이드만` 박사와 그멜린 박사는 정상적인 조건에서 녹말성 식품은 소장에서 당으로 바뀌고, 이것이 혈액으로 흡수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관찰함으로써 이 연구는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획기적인 사건은 1857년에 프랑스의 위대한 생리학자 베르나르` 박사의 발견이었습니다. 베르나르 박사는 간은 전분 같은 물질, 즉 글리코겐을 저장하는 기관이며, 살아 있는 동안 이 기관으로부터 당이 일정하게 생성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즉 간에서 혈액으로 당이 분비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의 생성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에 관한 연구와 관련하여, 베르나르 박사는 실험을 통해 신경계의 어떤 병소에서 혈중 당성분이 증가되는 것과 이 당이 소변으로 배출된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일시적이기는 했지만 소변에서 당을 검출하여 당뇨를 확인한 최초의 실험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베르나르 박사의 이 발견은 당뇨병의 성질과 원인에 대한 일련의 실험들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앞서 병리학자들은 심각한 당뇨병으로 사망한 환자의 부검에서 췌장이 병들어 있는 것을 관찰한 적이 있었습니다. 베르나르 박사는 이 점에 주목하였지만 당뇨를 인위적으로 유도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는 췌장에서 소장으로 이어지는 분비관을 막아도 보고 응고성 물질을 췌장에 주사해 보기도 했습니다. 수술로 췌장 전체를 제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1889년에 독일의 두 과학자 폰 메링 박사와 민코프스키 박사가 개에서 췌장을 떼어내는 수술에 성공하였을 때, 이는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수술한 동물은 소변으로 당을 분비하였을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사람에게 나타나는 급성 당뇨병 증세와 아주 비슷한 증세를 나타냈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혈중 당의 함량이 정상치 이상으로 증가하는 것, 그리고 질병으로 인한 독성으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도 비슷했습니다. 만약 췌장의 일부가 남아 있다거나, 췌장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피부 밑에 꿰매어 놓는다면 당뇨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췌장을 완전히 제거한 뒤 체내 당을 조절하는 기능이 상실되는 것은 췌장액이 소장으로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기관의 어떤 기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1880년의 연구들 중에 프랑스의 브라운`―`시커드 박사의 연구는 어떤 것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분비기관과 유사하지만 관이 없는 장기의 생명유지 기능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장기들은 혈액과 유효한 화학 물질을 포함한 조직액을 통해 그 효과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 유효물질을 호르몬이라고 부릅니다. 이 분비선 자체는 관이 없기 때문에 내분비선 또는 내부적으로 분비하는 기관이라고 부릅니다. 췌장은 분비선으로, 관을 통해 분비물을 소장으로 흘리는 방식으로 소화과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랑게르한스 박사가 오래전인 1869년에 보여주었듯이, 췌장은 관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 해부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일컬어 ‘랑게르한스의 세포섬’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90년 초기에 라게세는 당의 소화에 중요한 내부적인 분비가 이 세포섬에서 만들어진다고 추정하였습니다. 폰 메링 박사와 민코프스키 박사가 췌장이 당을 조절하고 있으며 당뇨의 발병에 이 기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로, 여러 나라에서 많은 연구자들이 췌장에서 당뇨 치료약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당뇨는 췌장이 호르몬을 생산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 양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질병입니다. 따라서 병든 췌장에 호르몬을 주입함으로써 병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비슷한 내분비 기능을 가진 갑상선의 경우에는 이와 비슷한 것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연구 과정 중에 많은 실패도 있었지만, 추출물을 만드는 데 성공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든 추출물을 사람 또는 개의 혈액에 주입하자 혈당이 증가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며 당이 소변으로 배출되는 증상도 사라지고 체중 증가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을 연구했던 사람들 중에 특별히 주엘저` 박사에 대해 언급하고자 합니다. 그는 1908년에 믿을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인 추출물을 만들었지만 유해한 결과를 보여 치료에 널리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포쉬바크`, 스콧, 멀린, 클라이너, 폴레스크 등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들이 있었습니다. 런던의 온타리오에 있는 웨스턴 대학교 생리학과의 젊은 조교수인 밴팅 박사님은 이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아주 중요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효과적인 추출물을 만드는 데 실패한 이유는 이 물질이 췌장 내 분비세포가 생성하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트립신이 이 물질에 반대작용을 하거나 이 물질을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만약 관을 묶어 분비세포를 파괴하고, 남아 있는 일부 선이 원래의 기능을 해준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을 묶음으로써 위축되는 것은 세포가 아니라 샘이라는 것은 이미 슐즈 박사와 소보레프 박사가 관찰하였습니다. 밴팅 박사님은 이 생각을 토론토의 매클라우드 교수님을 비롯한 몇몇 동료 연구자와 공유하였습니다. 그중에 베스트` 박사와 콜립 박사는 1921년 5월, 매클라우드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그의 실험실에서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당뇨병이 있는 개를 대상으로 한 첫 번째 실험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샤플레리 샤퍼` 경이 인슐린이라고 명명한 이 효과적인 추출물 제조 방법은 콜립 박사님이 개량하였습니다. 그 후에 혈당, 호흡지수, 간의 글리코겐 형성 능력 등에 관한 이 물질의 효과가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매클라우드 교수님의 지도 아래 수행한 동물실험을 통해 과용량으로 투여된 인슐린은 과도한 혈당 저하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알칼리 용액에서 트립신이 이 호르몬을 파괴한다는 것이 밝혀진 후, 심각한 당뇨를 앓고 있는 14세의 어린 환자에게 인슐린이 처음 주사되었으며 이 처치는 1922년 1월 23일에서 다음 날까지 실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환자의 혈당은 정상 수준으로 떨어졌고, 소변으로 배설되는 당의 양도 최소한으로 줄었습니다. 하지만 지방대사의 장애로 당뇨병과 같은 질병에서 종종 대량으로 생성되는 유해한 물질 때문에 산성증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이후로 이 새로운 치료법은 기술적으로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사용되어 좋은 결과들을 얻었습니다. 인슐린이 당뇨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당의 소화에 필요한 호르몬을 만드는 우리 몸 안의 세포가 파괴되는 것이 당뇨의 명백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슐린은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엄격히 제한된 식이요법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독성상태에서 끊임없이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독성상태가 심각해 당뇨 혼수상태가 온 경우에도 인슐린의 효과는 매우 좋았습니다. 인슐린이 발견되기 전까지 당뇨 혼수상태의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속수무책으로 환자의 사망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젠가는 인슐린과 같은 물질을 췌장선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며 이를 위한 많은 연구들이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연구자는 목표에 거의 근접해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환경이 탁월한 성과를 낳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파스퇴르 박사님의 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밴팅 박사님과 매클라우드 박사님의 연구업적이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노벨상의 영광을 두 분께 드리고자 합니다. 밴팅 박사님과 매클라우드 박사님은 오늘 여기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영국 총리께서 이 상을 대신 받으실 것입니다. 상과 더불어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축하의 말씀도 함께 전해 주시길 바립니다.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 생리•의학위원회 J. 스제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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