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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귀선

작성일 2012-12-10

 

 

 

 

한글품명

전라좌수영귀선

쓰임새

전투용 배

시대

조선시대

설명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이 창제한 거북선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치수·길이·너비 등은 통제영귀선과 거의 같다.

전문설명

조선 정조(正祖) 19년(1795)에 간행된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 의 권수도설(卷首圖說)에 보면 '통제영귀선(統制營龜船)'과 전라좌수영귀선(全羅左水營龜船)'의 판화귀선도(版畵龜船圖), 그리고 700자 정도의 안설(按說)이 실려 있다. 비록 후대의 거북선에 관한 기록이기는 하지만 거북선의 제도에 관계되는 사료 중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기술된 것으로서 거북선의 제원(諸元)을 아는데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이에 의하면 전라좌수영귀선은 통제영귀선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이 창제한 거북선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치수·길이·너비 등은 통제영귀선과 거의 같다. 그러나 용머리 아래에 또 귀신의 머리를 조각해 놓은 점과 복판(覆版) 위에 육각형의 거북무늬를 그려 넣고, 좌우에 각각 문이 2개 있는 점, 포혈의 총수가 36개로 용머리 아래에 포혈(砲穴)이 2개, 배의 옆면 좌우 각 현에 포혈이 각각 10개씩 있고, 좌우 현판에도 포혈이 각각 6개씩 있는 점, 배를 젓는 노(櫓)는 좌우에 각각 8개씩 있는 점 등이 통제영귀선과 다르다. 또한 용아가리로 연기를 토하는 것은 통제영귀선과 같지만, 용의 목이 세워져 있어 이순신의 거북선과 같이 입으로 포를 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배꼬리[쌍엽미(雙葉尾)]도 짧게 마무리 되어 있는 통제영귀선에 비해 현저히 길게 위로 뻗어있다.안설(按說)에 의한 복원연구에 따르면, 선체길이(雙葉尾를 제외한 상장부분)는 26∼28m, 선체너비 9∼10m, 선체높이 6∼6.5m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현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고증성 있는 거북선모형이나 1980년에 진수된 해군사관학교의 '복원거북선'은 <<이충무공전서>>의 도설(圖說)에서 주로 전라좌수영귀선을 본떠서 제작한 것으로, 철갑과 철첨을 더함으로써 이순신의 거북선을 상징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ㆍ김재근, 『거북선』, 정우사, 1992ㆍ김재근, 『조선왕조군선연구』, 일호각, 1977ㆍ김재근, 『우리배의 역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8ㆍ김재근, 『한국의 배』,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ㆍ김원식, 『한국의 배』, 대원사, 1990ㆍ한국민족문화연구소, 『한국의 문화유산』, 부산대학교출판부, 1998ㆍ홍이섭, 『조선과학사』, 정음사, 1946ㆍ최영희, 『귀선고』, 고려대학교사학회, 1958ㆍ최두환, 『충무공 이순신 전집 6』, 도서출판 우석, 1999ㆍ이순신, 『이충무공전서』, 경인문화사, 1989ㆍ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자료제공 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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