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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달 특별 칼럼] 세상에 빛이 없다면: 빛의 해를 맞아

작성일 2015-04-01

고인석 교수|인하대학교 철학과

 

세상에 빛이 없다면: 빛의 해를 맞아1)

긴 겨울을 뒤로 하고 봄빛이 완연해지고 있다. 꽤 이른 아침에도 벌써 환해지는 하늘과 길가 나무에 핀 꽃들의 환한 빛깔이 계절의 변화를 알려준다. 등굣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시간을 본다. 여덟시 십오분, 서둘러야겠는 걸! 하지만 신호등은 아직 빨간색이다.

우리의 일상은 빛 속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빛 덕분에 사물을 보며 일하고, 빛을 받아 자란 곡식과 채소, 그리고 그것을 먹고 자란 동물들의 고기를 먹는다. 만일 세상에 빛이 없으면 어떨까? “빛이 없으면 당연히 캄캄하겠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테고… 뭐, 빤한 것 아닌가?” 그러면서 도대체 그런 싱거운 상상을 왜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상상에 꼭 처음부터 그럴 듯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억지로라도 상상의 날개를 한번 펼쳐 보자.

‘아니, 나는 그러면 손전등을 켜겠어. 내 책상 서랍에 하나 있거든!’

‘옆에 폰이 있는데 손전등은 무슨… 폰만 켜도 꽤 환해지잖아.’

아쉽지만 이 답은 안 되겠다. 손전등이나 휴대폰 액정화면을 켠다는 것은 ‘세상에 빛이 없다면’이라는 가정을 깨뜨리는 셈이니까. 물론 “세상에 빛이 없으면 내가 나서서 그 빛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청소년이 있다면 그 진취적인 마음을 마땅히 칭찬하고 격려해야 하겠지만, 지금 이 상상놀이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반칙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가정하고 보니, 온 세상에 빛이 없는 상황이 처음보다 좀 심각한 상황처럼 느껴진다.

‘캄캄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고, 손전등도 촛불도 켤 수 없다는 말이지. 음, 그렇다면 좀 다른 도구를 사용해야 하겠는 걸. 예를 들면, 열 감지 카메라 같은 것 말이지. 영화에도 자주 나오잖아. 야간 군사작전에도 사용된다 하고. 캄캄한 곳에서도 사물을 보거나 촬영할 수 있는 장치!’

하지만 다시 한 번 ‘삑!’, 반칙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다. 열 감지 카메라라는 적외선(赤外線)을 이용해서 사물을 촬영하는 장치인데, 적외선이란 다름 아닌 특정한 종류의 빛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열 감지 카메라는 적외선 카메라이고 적외선을 이용해서 사물의 모습을 찍을 수 있다면 빛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특정한 종류의 빛이라니? 빛에 무슨 종류가 있다는 말이지?

보이는 빛만 빛이 아니다

무엇인가의 종류를 나눈다는 것―즉 분分-류類―은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나누는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기준을 세워서 하는 일이니까 빛을 어떻게 분류할지는 그때그때 달라지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빛의 종류’란 빛의 파장이나 진동수에 따른 분류를 말한다. 파장이란 파동의 길이, 즉 파동의 어느 마루부터 그 다음 마루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예를 들어 노란색의 빛은 파장이 580나노미터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단위를 써서 적어보면 0.00058밀리미터― 정도다. 빛의 진동수는 파장이 정해지면 따라서 정해지니까, 진동수에 따라 분류한다는 것은 파장에 따라 분류한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똑같다. 빛의 파장에 진동수를 곱하면 빛의 속도가 되는데, 빛의 속도는 초속 약 30만 킬로미터―좀 더 정확하게는 초속 299,792,458미터, 물론 이것도 근삿값이지만―로 항상 일정하기 때문에 빛의 진동수와 파장 중 하나를 알면 다른 하나도 알 수 있다.

앞에서 나온 ‘적외선’의 뜻을 풀이해 보면 붉은색(적) 바깥(외)의 빛줄기(선)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범위의 빛은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갯빛 스펙트럼을 이루는데, 그 스펙트럼 한쪽 끝의 빨간색보다 더 긴 파장의 빛을 적외선이라고 부른다. 이 무지갯빛 스펙트럼에서는 빨강의 반대쪽 끝에 있는 보라색 빛의 파장이 제일 짧은데, 보라색 빛보다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자외선(紫外線)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적외선을 infrared, 자외선을 ultraviolet이라고 하는데, infra-는 ‘…보다 아래’, ultra는 ‘…보다 위’를 뜻하는 말이니, 서양 사람들은 아마 파동의 길이가 아니라 진동수의 크기를 이름의 기준으로 삼은 듯하다.

02_빛의파장

<그림 > 파장으로 본 빛의 종류와 범위

위 그림이나 그 비슷한 것을 아마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미 적외선과 자외선의 존재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빛의 범위는 우리 눈에 보이는 빛, 즉 가시광선의 범위보다 훨씬 넓다. 어쩌면 독자 중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빛을 빛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날카로운 질문이다. 하지만, 소리와 견주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보통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진동수는 20Hz에서 20000Hz 사이라지만,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로 신체 나이를 가늠해보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사람마다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는 다르다. 뿐만 아니라 개, 돌고래 같은 동물의 가청(可聽) 영역은 사람의 그것과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다.

결론은? 내가 들을 수 없다고 해서 소리가 아니라고 판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의 영역'이기 때문일 수 있다. 다시 이 유비 관계를 빛에 되돌려 적용하여 생각해보자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빛이 아니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처음 물음 "세상에 빛이 없다면?"으로 돌아가 보자. 이 물음은 이제 아주 심각하고 심지어 암울한 느낌을 주는 물음이 되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 온기도 없는 세상이라니… 빛이 없는 세상에서는 아무 식물도 살아갈 수 없고, 따라서 아무 동물도 생존할 수 없다. 그러고 보니,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할 때 맨 먼저 빛을 만들었다는 창세기의 서술은 아주 합리적인 이야기다. 따지고 보면 사실 “세상에 빛이 없다면 어떨까?”라는 질문은 좀 이상한 질문이다. 그건 거의 “세상이 없다면 어떨까?”라는 질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질문으로 잠시 독자들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든 필자를 부디 용서하길…)

그리고 다행히, 이 세상은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빛의 파장과 진동수, 그리고 광속

위에서 배운 관계를 써서 노란색 빛의 진동수를 한번 계산해 보자. 광속의 크기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노란색 빛의 파장에 그 빛의 진동수를 곱해서 광속 즉 빛의 속도가 된다면, 노란색 빛의 진동수는 광속 나누기 노란색 빛의 파장이니까 (헷갈리지 않도록 길이를 전부 미터로 환산해서 쓰면)

3x108 미터/초 ÷ 580x10-9 미터 ≃ 5.2x1014 /초

즉 노란색으로 나타나는 빛의 파동이 1초에 517조 번의 진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1초에 진동하는 수(/초)를 헤르츠(Hz)라고 하니까, 우리는 노란색 빛의 진동수가 517조Hz 또는 517THz(테라헤르츠)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테라헤르츠라니 ‘후덜덜’ 실감나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진동이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파장이 650나노미터인 빨간색 빛과 보라색 빛의 진동수를 계산해 보면, 각각

3x108 미터/초 ÷ 400x10-9 미터 ≃ 7.5 THz

3x108 미터/초 ÷ 650x10-9 미터 ≃ 4.6 THz

이다. 이제 나는 다양한 빛들의 진동수를 계산할 수 있다! 진동수를 계산해서 뭐하느냐고? 뭐 그냥 궁금해서 계산해볼 수도 있는 일이고, 빛의 진동수를 알면 그 빛이 가진 에너지를 알 수 있으니 맥락에 따라 요긴한 계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여러 가지 얘기를 하고 또 듣는 것은 오히려 좋은 공부 방법이 아니니까 진동수 얘기는 이만 하고, 잠깐 저 위의 식들을 다시 한 번 보자.

우리가 사용한 식은

빛의 속도 ÷ 빛의 파장 = 빛의 진동수, 즉

빛의 속도 = 빛의 파장 x 빛의 진동수

인데, 위 계산에서 빛의 속도가 빛의 색깔과 상관없이 초속 30만 킬로미터였던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속도는 가시광선의 경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시광선의 100배에서 10만 배에 달하는 진동수를 가진 X선이나 파장이 몇 미터에서 수백 미터에 이르는 라디오 전파나 할 것 없이 전부, 무조건 똑같이, 초속 30만 킬로미터다. 파장을 한 걸음에 내딛는 거리라고 생각하고 진동수를 단위 시간 동안 걷는 걸음의 수라고 생각하면, 파장에 진동수를 곱해서 속도가 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각된다.

그런데 빛의 속도가 이렇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빛의 속도를 알려면 그것을 재야하겠지. 그런데 빛의 속도를 어떻게 잴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숙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인터넷에서 빛의 속도에 대한 정보와 더불어 광속의 측정에 관한 풍부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까. ‘speed of light’를 검색어로 영어 자료도 검색해보자. 그러다가 광속의 측정에 관한 역사도 뒤져보게 되기를 바란다. (영어로 된 사이트 검색에서는 ‘history’ 하나만 더 추가하면 된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오늘 당연한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기까지 많은 고민과 실패와 시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과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났단 위대한 생각의 과정에 동참하는 짜릿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빛에 속도라는 개념을 적용하려들지 않았다. 빛의 속도는 우리가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어떤 속도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너무 크다. 빛은 순간적으로 퍼지고 전달에 데 시간이 소요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괴짜 생각쟁이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의 도전을 필두로 인간은 빛의 속도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리에서 활동하던 덴마크 천문학자 뢰머(Ole Rømer, 1644-1710)는 당시의 천문학을 발판으로 광속을 계산해냈다. 만일 광속 측정의 역사를 뒤져보게 된다면 적어도 갈릴레이와 뢰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보게 되길 기대해 본다.

1) 2015년은 유엔과 유네스코가 정한 ‘빛의 해’다. 공식 명칭은 ‘International Year of Light and Light-Based Technology’(빛과 빛 관련 기술의 해)이고, 줄여서 ‘IYL 2015’로 표기한다.
 
고인석 인하대학교 철학과 교수 프로필
고인석 교수 사진 고인석 교수 (인하대학교 철학과) insok@inha.ac.kr
독일 Konstanz 대학 철학 박사(과학철학)
前 로봇산업경제진흥원 로봇윤리 공론화 연구위원
前 연구윤리정책위원회 연구위원
前 이화여대 교수
‘과학철학:흐름과 쟁점, 그리고 확장’, ‘과학의 지형도’ 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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