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선도와 색각이상자

곽영신 부교수|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지하철 노선도와 색각이상자
아래 [그림1]은 서울도시철도 공사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수도권 전철노선도이다. 울산에 거주하면서 서울은 업무차 가끔씩 방문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17 종류의 노선들이 정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것을 보면 그 규모에 약간 과장해 경외심마져 든다. 필자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20여년 전의 서울 지하철 노선도와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변화이다.

[그림1] 거미줄 처럼 얽혀있는 수도권 전철 노선도 (출처: 서울도시철도 공사 홈페이지)
사람들이 노선도를 이용하는 목적은 물론 이용해야 할 지하철 노선을 찾고 어떤 역에서 타고 내려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노선도에서는 각 노선의 모든 지하철 역들이 잘 표현이 되어야 하고 노선들 간에 뚜렷하게 구분이 되어 있어야 할것이다. 그러 면에서 수도권 노선도 제작에 참여한 디자이너들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17개나 되는 노선을 서로 다르게 표현해야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수도권 지하철 노선도 제작을 위해 택한 방법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하듯이) 색을 이용한 노선 구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도 색깔만 보고 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노선들을 찾아보려면 쉽지 않은데 필자보다 더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색약 혹은 색맹인 사람들이다. [그림2]는 적색맹인 사람이 보게되는 수도권 전철 노선도를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림1]보다 [그림2]가 더 알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2] 적색맹이 보는 수도권 전철 노선도
그렇다면 도대체 색약 혹은 색약은 왜 이렇게 다르게 보는지 알아보자.
색약과 색맹
사람의 눈에 있는 망막에는 색을 인지하는 L (long), M (medium), S (short) 세 종류의 원추(cone) 세포가 있는데, 이 세 종류의 세포들은 흡수 파장대가 서로 달라 우리가 색을 볼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그림3]은 이 세가지 원추 세포들의 파장대별 민감도를 나타낸 그래프로 가로 방향으로는 나노미터(nm) 단위로 표현된 가시광선 영역을 나타내고 세로 방향으로는 파장별 상대적 민감도를 나타낸다. 세로축 높이가 높을 수 록 그 파장대의 빛을 잘 흡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양한 색을 인식하려면 이 세가지 세포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건 이 세가지 세포들이 대부분의 사람들과 좀 다른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장 긴 파장대를 인식하는 (일반적으로 편의상 적색을 인식하는 세포로 불리는) L 세포가 없거나 혹은 민감도가 많이 떨어지거나 M세포 쪽으로 민감도가 치우쳐진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적색맹 (아예 없는 경우) 혹은 적색약(민감도가 떨어지는 경우)이 된다. 비슷하게 M 세포 쪽에 문제가 생기면 녹색맹 혹은 녹색약이 되고 S 세포 쪽에 문제가 생기면 청색약 혹은 청색맹이 된다. 세개 세포 중 두개의 세포가 없는 경우도 드물게 있는데 세포가 한 종류 밖에 없으면 색을 인지 못하고 물체의 밝기만 인지할 수 있어 색맹이 된다. 이렇듯 원추 세포에 이상이 있어 색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을 색각 이상자라 한다.

[그림3] 원추 세포들의 파장별 민감도
검색하는 자료마다 숫자가 조금씩 달라 국내 색약 및 색약 인구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남자들은 약 6~8%, 여자들은 약 0.4% 정도가 색각이상자로 알려져 있고, L 세포와 M 세포에 이상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S 세포에 이상이 있는 청색맹이나 청색약은 매우 드물다.
그렇다면 색각 이상자들은 정상 색각에 비해 세상을 어떻게 다르게 보고 있을가? 우선 [그림3]에서 가로 방향의 스펙트럼 파장에 따라 보이는 색이 무지개 색 순서로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보다. 파장이 긴쪽에서부터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의 순서로 바뀐다. 참고로 보라색은 빨강과 파랑이 섞여 나오는 색이라 스펙트럼 색상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L세포와 M세포들은 빨강~초록의 범위에 해당하는 색을 인식하는데 사용되는데 적색맹, 녹색맹은 L세포와 M 세포 중 하나가 없는 경우므로 이 영역에 해당하는 색들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그림2]의 시뮬레이션 영상처럼 빨강과 초록의 색 구분이 불가능해지고 모든 색들이 노랑, 파랑색으로만 보이게 된다. 적색약, 녹색약은 빨강과 초록의 색 구분을 할수는 있으나 정상색각인보다는 구분 능력이 떨어진다. 반면 청색맹은 파란색을 인지하는 세포가 없는 경우로 L세포와 M세포가 동시에 반응했을 때 인지되는 노랑과 세포에 이상이 있어 인지할 수 없는 파랑의 구분이 불가능하다.






[그림4] 적색약 정도에 따라 색이 달라 보이는 정도
(가장 왼쪽이 원영상 가장 오른쪽이 적색맹이 보는 영상)
인터넷을 찾아보면 [그림2]나 [그림4]처럼 정상색각인을 위해 색각이상자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 가를 느낄 수 있게 해주기 위해, 색각이상자들이 보는 영상을 시뮬레이션 해주는 웹사이트나 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것이다. [그림2]와 [그림4]에 사용된 영상은 필자의 연구팀이 제작한 영상들로 이런 시뮬레이션 영상들은 우선 영상의RGB 신호들을 L,M,S 세 종류의 원추 세포 신호로 바꿔준 후 의도적으로 L신호를 왜곡시킨 후 다시 영상의 RGB 신호로 바꾸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이때 원추 세포 신호를 계산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사람들이 보고 있는 색 정보가 필요하므로 본 시뮬레이션을 위하여 특정 모니터에서 보는 경우를 가정였다. 이처럼 모든 시뮬레이션 영상들은 특정 모니터를 기준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모델의 정확도에도 한계가 있으니 혹시 적색맹인 독자가 보기에 시뮬레이션 영상들이 본인들이 실제로 보는 영상과 다르게 보인다 하더라도 양해바란다.
색각 이상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요즘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진것 같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이라고도 표현되는 이 용어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장애가 있거나 혹은 없거나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아무 불편없이 이용할 수 있는 제품, 건축 등을 디자인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색각이상자들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도 당연히 고려가 되어야 한다. 지하철 노선도의 경우 일본 도쿄의 지하철 노선도와 같이 각 노선에 알파벳을 같이 표기해 준다거나, 각 노선에 특정 패턴을 넣어 준다거나하는 방식들이 제안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색각이상자건 정상 색각자이건 상관없이 누구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유니버설 디자인 원칙을 적용한 인포그래픽 디자인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색각이상자를 위해 고려해야할 것은 정보 구분 능력 뿐은 아니다. TV 나 스마트폰에서는 화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들이 들어가 있고 이러한 기술 개발을 위해 좋은 화질에 대한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연구들은 정상색각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직까지는 색각이상자들을 위한 화질에 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거실에서 가족이 모여 TV를 시청하는 경우 가족 중 일부가 색각이상자라고 할 경우 색각이상자를 위해 화질을 최적화 하면 다른 가족들이 보기에 화질이 마음에 안들 수 있다. 그렇기에 여러 명이 동시에 시청해야하는 디스플레이 화면이라면 정상색각자와 색각이상자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화질을 재현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대부분의 영상 장치들이 개인화가 되고 있다. 각자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테블릿 PC를 이용해 다양한 영상 컨텐츠들을 즐긴다. 그렇다면 자신만을 위해 최적화된 화질이 재현되는 기술 또한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현재 필자는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콘텐츠산업 기술지원 사업 중 하나인 ‘색각이상자들의 문화콘텐츠 이용편의성 확대를위한 지능형 색채변환 서비스 기술개발’ 과제에 참여 중이다. 이런 연구 결과들이 모여 머지않아 색각이상자건 정상색각인이건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최적의 화질로 문화 컨텐츠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다음
- 나노입자와 궤도 위치 2014.12.08
- 이전
-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연구 2014.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