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올

통합검색

찾기

나무의 방하착(放下着)

작성일 2014-12-03

이남숙 교수|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과

 

<단풍 드는 날>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img1

위 시는 단풍들고 낙엽 지는 가을이면 애송되는 시 중 하나이다. 위 시에서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의 방하착이나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의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시구들은 모두 나무에게 적용되는 지혜인 듯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가을만 되면 왜 나뭇잎들이 단풍들이고, 애써 만든 잎들을 왜 모두 떨구는지 나무의 속내를 알아보고자 한다.

식물에도 일생이 있다

식물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자라고 성숙하며 노화하여 죽는 일생, 즉 생활사(life cycle)을 갖는다. 예를 들어 종자로 번식하는 식물은 어린 생명체를 가진 종자로 휴면하다가 적당한 환경 조건이 되면 발아를 하여 싹을 틔우고 생장하다가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일생이 있다. 나팔꽃처럼 일생(즉, 생활사)를 일 년 안에 마치는 풀은 일년생 초본, 냉이처럼 이 년 안에 마치는 풀은 이년생 초본이라고 한다. 그리고 작약과 모란처럼 여러 해에 걸쳐 마치게 되면 다년생 식물이라고 한다. 꽃이나 잎 모양이 비슷하긴 하지만 작약은 다년생 초본이고 모란은 목본 조직을 구성하는 목질이 발달되어 일명 목단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다년생 목본이다.

다년생 목본 중 낙엽 지는 나무들의 일생을 보면 좋은 환경이 되면 잎눈을 틔워 연녹색 어린잎을 내고 생장하여 진녹색 잎이 무성하다가 어려운 환경이 다가오면 단풍이 들어 낙엽이 진다. 그 다음에 환경이 좋아지면 다시 새 잎을 만들어 내는 일을 반복한다. 용문산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1100년 정도로 추정된다하니 천 백 여 번을, 수령이 4천년 내지 4500년이라는 중국 구이양 부근의 은행나무(Li Kiawan Grand Ginkgo King)는 그 햇수만큼 잎을 내고 노란 단풍을 들여 떨구는 일을 반복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그 일을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반복해 온 은행나무의 일생이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10월 단풍(丹楓)이란?

화투장의 10월에는 단풍나무 잎이 빨갛고 노랗게 단풍이 들어 있다. 여기서 단풍(丹楓)이란 기후 변화로 식물의 잎이 붉은빛이나 누런빛으로 변하는 현상 또는 그렇게 변한 잎으로 정의된다. 나뭇잎은 나무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계절에 따라 색이 다르다. 그것은 나뭇잎에 들어있는 색소들마다 반사하는 빛의 파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식물의 성장이 활발한 봄과 여름에는 광합성을 위해 빛을 흡수하는 엽록소는 붉은색과 푸른색 파장을 흡수하고 녹색부근을 반사시켜서 녹색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일교차에 의해 광합성 효율이 떨어지면서 엽록소가 분해되고, 카로틴(carotene)과 엽황소(xanthophyll) 같은 보조색소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색소들은 물, 당류, 유기산, 단백질, 효소와 무기물질 등과 함께 식물세포의 액포(vacuole)라는 세포액 주머니 속에 들어있다. 이 액포 속에 화청소(anthocyanin)이 많이 들어있으면 붉나무와 단풍나무처럼 빨간 단풍이 들고, 엽황소가 많으면 은행나무와 계수나무 같이 노란 단풍이 들며, 카로틴이 많으면 황적색 단풍이 든다. 그리고 탄닌(tannin)이 많으면 떡갈나무와 상수리나무같이 갈색 잎으로 물든다. 단풍의 색이나 선명도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그리고 동일 수종이라도 환경과 개체에 따라서, 단풍이 들어가는 정도와 일교차에 의한 가용성 탄수화물의 양에 차이에 따라서 다양해진다.

img2 img3 img4

나무에도 갱년기 호르몬이 있다?

사람의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 갱년기 때 호르몬의 영향으로 여자들의 얼굴이 붉어지고 생식기능이 없어지듯이 나무도 식물호르몬의 변화에 의해 예정된 노화의 길을 걷게 된다. 즉, 나뭇잎이 오래되고 가을에 기온이 낮아지면 식물에서 합성되는 생장에 관여하던 옥신(auxin)의 양이 감소하여 나무줄기와 잎자루가 붙은 부분의 탈리층(떨켜층) 세포들이 노화와 관련된 호르몬인 에틸렌(ethylene)에 대해 상대적으로 더욱 민감해진다. 이 탈리층에서 에틸렌의 효과가 증가하면서 세포들은 셀룰로오스 등의 식물세포벽 구성물질을 분해하는 효소들을 합성하여 탈리층에서 낙엽이 떨어진다. 잎자루가 줄기에서 떨어지기 전에 줄기 쪽의 탈리층에는 병원균이 식물체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코르크층으로 된 보호층을 형성하여 자신을 보호한다. 아름다운 사랑도 이별의 상흔을 남기듯이 나무도 한 때 줄기에 잎이 있었다는 증거로 잎자루가 떨어진 자리인 엽흔(잎 자극(leaf scar)을 남긴다. 그 엽흔 안에는 혈관처럼 물과 양분이 지나던 유관속의 흔적인 관속흔(bundle scar)도 남게 된다.

img5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기 마련이다.

매사에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이 있듯이 낙엽이 지는 것은 나무에게 손해인 듯 해도 실은 이점을 준다. 즉, 뿌리에서 물을 흡수하기 어려운 계절이 되면 낙엽이 짐으로써 잎에서 증산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나무가 마르지 않도록 한다. 또한 떨어진 낙엽은 식물의 뿌리가 얼지 않게 이불 같은 보온 역할을 하며, 분해되면 거름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버리는 것들 중에서 재활용 물건을 모으듯이 나무도 낙엽을 떨어뜨리기 전에 죽어가는 잎에서 질소(N), 인(P), 칼륨(K) 등의 가용성 물질들을 모아 줄기의 유조직에 저장하고 다음 해에 잎을 낼 때 다시 사용하고, 나머지 불필요한 것을 체외로 배출한다. 실제로 낙엽에는 질소(N), 인(P), 칼륨(K) 등이 적게 들어있다. 반면, 칼슘(Ca), 마그네슘(Mg)과 규소(Si) 등 불용성 물질은 많이 축적되어 남아있다. 이처럼 물건을 오래 쓰기 위해 부속품을 새것으로 교체하듯이, 오래된 잎을 낙엽으로 떨구고 다음 해에 새로운 잎을 내는 것이 나무가 장수할 수 있는 지혜로운 전략의 하나인 듯하다.

가을에만, 낙엽수만 잎을 떨구는 것일까?

낙엽은 주로 생육조건이 급격하게 변동되는 가을에 떨어지기 쉽지만, 많은 경우 낙엽이 지는 시기는 일장(日長)에 의하여 결정된다. 즉, 낮의 길이가 길면 낙엽이 늦게 지고 낮의 길이가 짧으면 낙엽이 빨리 진다.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 등도 가로등이 비춰지는 쪽이 비춰지지 않는 쪽에 비해 낙엽이 늦게 지게 된다. 또한 온도도 낙엽에 영향을 미치는데, 떡갈나무의 일종은 가을이 되어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 자연 상태의 온도 하에서는 낙엽이 지지만, 온실에서 기르면 낙엽이 지지 않는다. 또한 건조지의 식물을 습한 장소로 옮겼을 때나 그 반대의 경우에도 낙엽이 지기 쉽다. 강한 빛 아래서 자란 나무가 약한 빛 아래로 옮겨졌을 때에도 낙엽이 일어나기 쉽다. 당 이외에 질소, 칼륨, 마그네슘, 황과, 아연 등의 결핍, 노숙(老熟), 병충해에 의해 잎이 손상되어도 낙엽을 유도하며, 에틸렌 등의 가스도 낙엽을 촉진시킨다.

일반적으로 낙엽활엽수에서 나타나는 낙엽현상은 상록수에서도 일어나는데 흔히 새 잎이 나오는 시기에 낙엽이 지기 쉽다. 열대에서는 연중 계속 낙엽이 떨어지는 종류와 주기적으로 낙엽이 떨어지는 종류가 있으며, 낙엽이 질 때에는 잎이 황색 또는 적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활활 타오르던 단풍과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방하착의 지혜를 새삼 깨달으며 그 동안 애지중지하던 물건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욕심을 내려놓으며 마음을 비우는 지혜를 배우고 싶다.

img6
이남숙 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 프로필
LNS-1 이남숙 (李南淑, Lee, Nam Sook)
(1988-2014 현재 : 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과/대학원 에코과학부 교수 )
2012-2014현재 : 한국난협회 회장.
2013.-2014현재 : 난문화협동조합 이사장.
『녹색우주』Green Universe, Stephen Blackmore 저, 이남숙 감수, 김지현 역, 교학사 2014.09 발행
『화분』Rob Kesseler & Madeline Harley 저, 이남숙 감수, 엄상미 역, 교학사 2014. 10 발행
『종자』Rob Kesseler & Wolfgang Stuppy 저, 이남숙 감수, 엄상미 외 역, 교학사 2014. 10 발행예정
The Science Times
과학문화바우처
사이언스 프렌즈
STEAM 융합교육
CreZone 크레존
문화포털
과학누리
교육기부
EDISON
과학기술인재 진로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