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가는 우리

원종우 대표|과학과사람들
우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할 때, 주로 종교에서 답을 구하곤 한다. 각각의종교는 나름의 세계관과 신관에 맞는 내세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고, 죽음 후의 삶이 존재한다는 주장은그 사실 여부를 떠나 고단한 삶에 큰 위안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이 오랜 믿음의 합리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과학 역시 종교처럼 직접적이진 않아도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항상 건드려 왔다. 그러나 과학이 내놓는 잠정적인 답은 종교와는 반대다. 특히 다윈의 진화론과 현대의학은우리가 다른 생물과 본질적인 면에서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죽음 이후 영혼이 여전히 ‘살아서’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사실 광막한 우주, 거대한 시공간 속에서 유독 인간 존재의 영속성만이 특별히 보장될 이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러기에 인간은 너무 하찮고 작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물론, 과학의 특정분야에서 인간 생명의 유한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없지는 않다. 특히 최근에는 사람을 다시 젊게 만드는 유전학적 접근에서부터,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 하는 기술 등 여러 각도의 연구가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다고 인간이 죽음을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질병이나 사고, 범죄, 전쟁 등은 늘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설사 기계로 된 몸을 가진다한들 말그대로 ‘영원히’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종교에 의존하지 않고 죽음의 공포와 인생의 허무함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잊어버리고 하루하루를 생활한다. 물론 그럼으로써 일상을 가치있게 산다면 그것대로의 장점이 있지만, 죽음은 모든사람에게 언젠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이 문제다. 그것이 내 앞에 나타는 순간 죽음은 가장 잔인하고도 구체적인 현실로 나와 주변을 뒤흔들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과연 특유의 무미건조한 냉정함으로 우리를 아무 가치도 없는 먼지로 격하시키고 있는 걸까? 얼핏 그래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어쩌면 현대 과학이야말로 보다 높은 차원에서 우리 존재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우주의 모든 것, 즉 ‘삼라만상’이 어디서 왔는지 물리학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우주에 가장 많은 물질은 수소다. 원자핵과 전자 하나로만들어진 가장 단순한 원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단순한 물질인 헬륨. 이두 원소가 우주 전체 물질(암흑물질 제외) 총질량의 98%를 차지한다. 정확하게는 수소가 70%, 헬륨은 28% 정도다. 태양을 포함한 모든 별, 즉 항성은 수소가 헬륨으로변하는 과정 속에 있다.
수소는 빅뱅 때 생겨났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 단 몇분동안만 일어난 핵합성을 통해 중수소, 헬륨계 동위원소, 그리고리튬계 동위원소들이 만들어졌다. 수소와 헬륨, 리튬은 순서대로 원자번호 1,2,3 이니, 우주에서 가장 단순한 물질들과 그 동위원소들이 우주탄생 극초기에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원소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들과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지구상에서 우리가 익숙한 것들은 산소, 탄소, 질소 같은 기체들과 철, 구리, 금, 은 등의 금속, 그리고 그것들로 만들어진 큰 물체들이니 말이다. 그럼 우리 주변의 구체적인 세상을 만들고 있는 이 다양한 원소들은 또 어디서 왔을까. 이것들은 모두 별이 스스로의 생명을 대가로 우리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별이 연료인 수소를 다 태워 헬륨덩어리로 바뀌면 초고온의 중심부에서 다시 핵융합이 일어나 헬륨보다 무겁고 복잡한 원소들을 하나씩 탄생시킨다. 원자번호 26인 묵직한 철까지 이렇게 별 안에서 만들어진다. 수소가 전자 하나를 갖는데 비해 철은 26개를 갖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융합이 일어났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별이 죽는 순간에는 초신성이 되면서 폭발하게 되는데, 이 순간 더욱 높은 열과 밀도 속에서 금, 은, 우라늄 등의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핵융합으로 생겨난다. 그리고는 엄청난 폭발을 통해 이 모든 물질들이 한꺼번에 주변의 우주공간으로 흩뿌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삼라만상이라고 부르는 세상 모든 것들이 실은 별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지고 퍼져 나간다. 우리가 살면서 접하는 것들 중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늘, 구름, 땅, 나무 같은 자연은 물론이고 컴퓨터나 휴대폰, TV, 자동차, 아파트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기에는 인간을 위시한 생명도 포함된다. 지구상의 생명체를 이루는 6개의 주요 원소는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이다. 원자번호 6,1,7,8,15,16 인 이것들도모두 별이 죽어가면서 그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인은 나머지 것에 비해 양이 매우 적지만 사람의 뼈와 DNA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소인데, 2013년 말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구본철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국내 연구팀이 초신성 잔해의 관측을 통해 그 기원을 증명하기도 했다. 주요 원소에 들어가지는 않지만 혈관 속을 흐르는 피 속의 철분도 별에서 왔고, 우리가 매일 먹는 영양제에 들어있는 아연, 마그네슘, 칼슘, 나트륨, 그리고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인 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우리는 수십억 년 간 엄청난 기세로 자신을 불태워 주변을 밝힌 거대한 천체들의 직접적인 후예다. 말 그대로 별의 아이들인 셈이다.
그럼 우리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될까. 흔히 썩어서 흙으로 돌아간다고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흙으로 돌아간 우리 몸의 물질들은 박테리아와 식물, 동물의 양분이 되면서 지구상에서 계속 순환한다. 그러다가 70억년쯤 지나면 새로운 상황이 벌어진다. 태양이 늙어 지금보다 훨씬 뜨겁고 거대한 적색거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태양의 열로 지구는 산도 물도 들도 없이 그저 한 덩어리의 뜨거운 구체가 된다. 우리가 알던 지구의 모습은 모두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는 마침내 태양에 흡수되면서 지구와 우리를 구성하던 모든 물질은 개별적인 원자상태로 녹아든다.
하지만 순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태양은 지구를 흡수한 후, 탄소가 주성분인 핵을 제외한 대부분의 물질을 우주공간에 다시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핵은 작은 백색왜성이 되어 천천히 식어간다.
그렇게 방출된 물질들은 오랜 세월동안 우주공간을 떠돌다가 결국 천천히 다시 뭉친다. 그래서 수십억년 후에는 어딘가에 새로운 별과 행성이 탄생하고 흙, 강, 하늘 같은 것들도 천천히 생겨나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와 비슷하거나 다른 생명체를 낳게 될 것이다.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이런 일은 우주에서 늘 일어난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도 실은 별에서 바로 온 것이아니라 이미 이런 과정을 거친 물질들에게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힌두교 경전에나 나올 법한 이런 거대한 순환이 신화나 종교가 아닌 과학적 사실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죽어서 우리를 만들어 준 별로 되돌아 간다. 그리고 다시 세상을, 새로운 삼라만상을 탄생시킨다.
이 광대한 순환의 드라마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인간적인 처연함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뿌듯한 안도감을 갖게된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용을 써 본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부자가 되고 유명인이 되고 나아가 세계를 정복한다 한들 광막한 시공간속에서는 티끌이자 찰나일 뿐이다. 은하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한들 긴 세월이 지나면 폐허로 변하고 마는 것이 바로 시간의 덧없음이다. 하지만 우리가 별에서 와서 별로 돌아가는 이 순환의 신성한 일부라는 것을, 우리를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머나먼 시공을 넘어 새로운 세상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어떤가. 그 동안 죽은 모든 사람들과 앞으로 죽을 우리들, 그리고 한때라도 우리와 비슷한 시공간 속에 존재했던 모든 생명들, 그들의 족적은 비록 잊혀질망정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처음의 허망함은 오히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절실한 소중함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사랑하는 이들이 죽음을 맞을 때 슬프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죽음이 닥쳤을 때 전적으로 초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만약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윤회가 실제로 있어서 모두 지복을 누리거나 다시 한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도 멋진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제 우리는 과학적인 증거와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우리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덧없어 보이는 것들이 실은 길고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별에서 왔고, 또 언젠가 별로 돌아가 우주 자체를 일궈 내는 소중한 존재라는 점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조금 먼저 가고 늦게 가는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 때가 오면 살아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거대한 기적의 일원으로 함께 하는 우주의 일부라는 것을 말이다. 이런 사실은 종교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우리의 짧은 생과 사에 근본적인 위안을 던져 줄 수 있지 않을까.
![]() |
원종우 대표 (과학과사람들) |
---|---|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 진행 | |
2008년 SBS 창사 특집 환경 다큐멘터리 <코난의 시대> 휴스턴 영화제 대상 수상 | |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태양계 연대기>,<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저자 |
- 다음
- 그들의 과학 <11화> 2014.10.08
- 이전
- 관찰! 과학 창의의 시작 2014.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