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회 교수의 통일벼 개발

허문회 교수의 ‘통일벼’ 개발 우리가 매일 식사하는 쌀은 벼를 찧어 껍질을 벗겨낸 것이며, 벼에는 여러 가지 품종들이 있다. 크게는 열대지역에 잘 적응하는 인디카 품종과 고위도 온대지역에 잘 적응하는 자포니카 품종으로 나눌 수 있다. 근래 우리가 밥으로 이용하는 것은 대부분 자포니카 품종이다. 세계적으로 벼의 품종은 5만여 개로 알려졌으며, 육종학자들은 더욱 우수한 벼 품종들을 개발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한 개의 벼 품종을 만드는 데에는 보통 5~10년이 소요되니, 육종학자가 일평생 만들 수 있는 벼 품종은 불과 몇 개밖에 안 된다. 쌀이 부족하던 보릿고개 시절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쌀이 간혹 남아돌아 문제지, 부족해 굶는 일이 없다. 그러나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쌀이 턱없이 모자랐다. 외화 부족으로 부족한 쌀을 수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쌀을 자급하는 일은 국가의 최우선 정책과제였다. 정부는 쌀의 소비를 줄여보고자 혼식 및 밀가루 분식을 장려했고, 심지어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사하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보릿고개’라는 말은 전년도에 수확한 쌀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이듬해 늦봄 보리가 생산되기 전 이미 식량이 바닥이 나 식량이 매우 곤궁했던 기간을 일컫는다. 그 당시 우리가 개발한 벼 품종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부 연구기관에서는 1930년대부터 벼 품종 개량을 시작해 자포니카 계열의 품종들을 여럿 개발했고, 농민들은 그 개량된 품종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품종들의 생산성은 그다지 높지 않아서 우리 국민이 필요로 하는 소비량을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생산기술을 바꾸고, 비료를 많이 주어도 생산성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허문회 교수, ‘통일벼’ 개발에 이르기까지 1960년부터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로 근무하던 허문회 교수(1927~2010)는 당시 식량부족의 해결책은 품종개량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생산성이 높은 벼 품종 개발을 계획했다. 이를 위해 1962년 필리핀에 설립된 국제미작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에서 1964년부터 2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생산성이 높은 품종 개발 연구를 시작했다.
그림 1 국제미작연구소의 온실에서 연구를 구상 중인 허문회 교수. ⓒ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당시 세계적으로는 키가 작은 반 왜성 품종의 밀과 벼가 생산성이 높다고 인정되었기에, 허문회 교수는 신품종 개량에 반 왜성 유전자를 이용하면서 인디카와 자포니카 품종의 장점을 결합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1965~1966년에 걸쳐 1개의 자포니카 품종과 2개의 인디카 품종을 교배하는 이른바 3원 교배를 실시했는데, 이 방법은 예전에 시도되지 않던 창의적인 육종방법이었다. 3원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잡종 집단으로부터 높은 생산성이 기대되는 벼들이 등장하자, 그는 이 중 우수한 벼 종자를 선발하고 교배하여 세대를 진전시켜 나갔다. 품종 육성에 걸리는 기간을 줄이기 위해 여름에는 한국에서, 겨울에는 국제미작연구소에서 벼를 재배했더니 1년에 2회 세대를 진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육종사업은 육종연구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농촌진흥청과의 협력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71년에 ‘통일벼’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고, 1972년부터는 농가에 보급되어 재배되기 시작했다. ‘통일벼’가 가져온 변화 ‘통일벼’는 당시 다른 품종들보다 30% 정도 생산성이 높은 다수확 품종이었고, 병해충에도 강한 특성이 있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통일벼’ 재배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였고 정부 차원에서 쌀을 사들이기 시작하였다. 1976년에 ‘통일벼’의 재배 면적은 전체의 44%로 확대되면서 평년보다 21.8% 증가한 521.5만 톤의 쌀을 생산해냈고, 역사상 최초로 쌀의 자급자족을 달성하게 되었다. 1977년에는 600.5만 톤의 쌀을 생산했으며, 생산성은 현미 기준으로 ha당 5.31톤으로서 세계 1위에 이르게 되었고, 쌀의 자급률은 113%를 기록했다. 드디어 쌀의 안정적인 자급자족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를 일컬어 “우리나라 녹색혁명의 완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후 ‘통일벼’는 생산성이 높은 품종의 대명사로 불리게 되었으며, 세계 벼 육종학자들은 물론 농학계 전체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림 2 통일벼를 개발하여 쌀의 자급을 이끌어낸 허문회 교수(1927~2010). ⓒ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통일벼’가 가져다준 쌀의 자급자족은 우리나라 식량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경제발전을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통일벼에 약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열대에 잘 적응하는 인디카 품종의 유전자를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온에 약했고, 맛도 자포니카 품종만 못했다. 허문회 교수를 비롯한 우리나라 육종학자들은 통일벼 품종의 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했지만, 아직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통일벼’는 쌀의 과다생산에 대한 우려와 맛이 다소 떨어진다는 약점 때문에 재배면적이 줄어들게 되었다. ‘통일벼’의 개발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을 가져다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고, 작물육종 기술을 세계수준으로 격상시키는 데에 이바지했다. 또한, 실용적인 성과로 직결되어 나라의 안정과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시대적 사명감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허문회 교수의 헌신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발전한 초석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로를 기리고자 허문회 교수는 2010년에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http://www.kast.or.kr/HALL/)에 헌정되었고, 국립과천과학관에도 그에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최근 생명공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프론티어사업, 바이오그린사업 등 생명공학 연구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과학인들이 많이 있다. 앞으로 생명공학의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일류국가로 도약시킬 제2 ? 제3의 ‘통일벼’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교육팁] 1. 볍씨 관찰하기 확대경으로 볍씨의 겉모양을 관찰해본다. 껍질을 벗겨 낸 뒤 속모양도 관찰해본다. 2. 볍씨 고르기 소금물을 만든다. 달걀을 집어넣었을 때 달걀의 윗부분이 약간 물 위쪽으로 나올 정도로 소금을 넣으면 된다. 그 소금물에 볍씨를 넣고 저어준 다음 볍씨가 어떻게 되는지 관찰해본다. 물 위에 뜨는 볍씨는 쭉정이고, 가라앉는 볍씨가 좋은 볍씨이다. 3. 벼의 한살이 관찰하기 벼는 한해살이 식물로, 벼의 한살이는 다음과 같다. 볍씨에서 싹이 튼다. → 모내기한다. → 이삭이 팬다. (벼의 잎에서 어린 이삭이 나온다.) → 꽃이 핀다. → 꽃이 핀다. → 꽃이 진 자리에 이삭이 익는다. → 이삭이 새로운 볍씨가 된다. 한 해 동안 벼를 키워본다. 벼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빛, 수분, 온도 등의 환경을 조절해 주고, 벼의 성장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해본다. [교육과정] -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3단원 식물의 한살이 -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1단원 식물의 세계 - 중학교 3학년 8단원 유전과 진화 - 고등학교 1학년 4단원 생명 글 / 고희정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교수 heejkoh@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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