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정산, 조선의 하늘을 열다

칠정산, 조선의 하늘을 열다
ⓒ 동아일보
세종 26년인 1444년은 우리나라가 중국, 이슬람과 함께 세계 3대 과학 강국으로 우뚝 선 기념비적인 해다. 세계 어느 나라의 역법보다 더 정확한 『칠정산 내·외편』이 완성됐기 때문이다. 칠정 즉 태양, 달, 오행성(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포함해 하늘에서 일어나는 모든 천변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이 역법이다. 역법 계산이야 말로 전통시대에 가장 어려운 과학이었다. 이는 현대 과학기술의 집약체인 우주과학분야와 흡사하다. 역법은 또한 경제, 정치, 국방, 사회 전반에 걸쳐 가장 기초적인 학문이기도 했다. 『칠정산 내·외편』이 완성됨으로써 우리나라는 우리 실정에 맞는 정확한 절기와 시각 체계를 갖추게 됐다. 일식과 월식 등 하늘에 일어나는 천변현상을 정확하게 예보해 구식례(하늘을 향한 제례)를 치를 수 있게 돼 정치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역서는 달력과 뭐가 다를까?
그림 1 왼쪽부터 1580년도와 2011년에 발간된 역서.
각종 천체에 관한 천문정보가 담겨있는 역서는 지금도 매년 발간되고 있다.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천문연구원
우리가 쓰는 달력에는 일수, 요일, 휴일, 그리고 음력과 절기 정도의 간단한 정보가 표기돼 있다. 요즘에는 잘 쓰이지 않지만 매일 한 장씩 뜯어 쓰는 일력에는 음력과 60간지, 그리고 때때로 이사하기 좋은 날과 같은 정보가 들어 있기도 하다. 이에 비했을 때 역서에는 달력보다 훨씬 많은 정보가 실려있다. 태양·달·행성·별의 운동, 일식과 월식, 각 지방에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각 등의 천문정보가 담겨있다. 2011년도 역서를 보면 달이 태양에 가려지는 월식이 6월 16일과 12월 10일 두 차례 일어난다. 12월 10일 월식은 달이 전부 태양에 가려지는 개기월식이며 23시 5.7분에 시작돼 26.1분간 지속된다. 이렇게 월식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태양과 달의 궤도 및 운동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위도와 경도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지금이야 컴퓨터에 있는 천문 프로그램을 이용해 금방 월식을 예측할 수 있지만, 컴퓨터가 없던 과거에는 많은 시간과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했다.
22년 연구 끝에 완성한 15세기 세계 최고의 역산서
역사적인 역법 제작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세종이 즉위 한지 4년째 되는 1422년이었다. 당시 세종은 천문과 역법을 관장하는 서운관 관원들의 역법 계산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위 행정관인 정흠지를 주축으로 역법을 교정하는 프로젝트팀을 꾸렸다. 태조 때 천문역산 전문가가 8명이었던 것에 비해 이 프로젝트에 20명의 천문역산 전문가들을 모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프로젝트팀은 중국의 역법 체계를 연구해 일·월식 등의 천변현상을 계산해 보고 계산결과가 맞는지 확인했다. 심지어 평지에서는 보이지 않는 일식의 경우에도 산 꼭대기에 올라 일식 여부를 확인했다. 하지만 세종의 열정에도 불구하고 몇 년이 흐르도록 프로젝트의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았다. 1430년 8월 일월식의 오차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서운관원을 질책해 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되기도 했다.
“역산서를 완성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여
후세로 하여금 조선이 전례에 없던 업적을 세웠음을 알게 하고자 한다.”
- 세종(1432년)
『칠정산 내·외편』이 완성된 것은 세종의 꺼지지 않는 독자적 역법 제작의 의지와 집념의 결과였다. 역법 제작 프로젝트가 중단 위기에 처해지자 세종은 전례 없는 지원을 하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1431년 3월에는 가장 총명한 외교관을 뽑아 중국의 역산법을 배워오게 했고, 6월에는 천문역산 관원 10명을 충원했다. 7월에는 능력이 떨어지고 게으른 프로젝트 담당관 대신 학식이 높은 정인지를 투입했다. 역법 계산에 뛰어난 인재는 직급에 관계 없이 관직을 줘 역법 제작에 투입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10년이 되던 해에 세종은 이제 우리나라의 역법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고 판단했다. 이제 우리나라 지역에 들어맞는 독자적인 역법 체계를 만드는 일만이 남았다. 서운관원들은 각자 임무를 나눠 맡았다. 정흠지, 정초, 정인지는 중국의 역법 체계에 기초를 둔 『칠정산 내편』을, 이순지, 김담은 이슬람의 역법 체계를 변형한 『칠정산 외편』 을 편찬하는 일을 맡았다.
독자적인 정밀 관측 데이터로 완성한 『칠정산 내·외편』
독자적인 역법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정확한 관측 데이터가 필요했다. 한양의 북극고도, 절기의 길이,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각, 일월식 시각과 위치, 오행성의 위치, 28수 별자리의 남중(하늘 가운데 위치) 시각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을 정확하게 관측하기 위해서는 정밀한 관측기구가 필수적이다. 1432년 세종은 각종 천체 관측기구 제작에 비용과 시간, 인력을 아낌없이 지원할 것을 명했다. 세종 시대의 과학기술이 조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양의 북극고도를 측정하기 위해 대간의와 소간의가 제작됐다. 세종은 매일 세자와 정초, 이천, 정인지, 김빈 등 프로젝트 팀원들과 함께 간의대에 올라 역법에 대해 논했다. 이후 1438년까지 7년간 15가지의 천문관측 기구와 시계가 완성됐다. 여기에는 혼천의(1433년), 대간의대(1434년), 규표, 소간의, 혼상, 앙부일구(1434년), 일성정시의(1437년), 소정시의, 자격루(1434년), 옥루 등이 있다. 서운관에서는 관측 규정을 마련해 매일 5명의 관원들이 돌아가며 이들 관측기구를 이용해 하늘을 관측했다.
그림 2 천문 관측 기구 ‘간의’의 구조 ⓒ 한국과학창의재단 / 작가 김화연
중국 역법을 뛰어 넘은 독자적 역법체계 『칠정산 내편』
『칠정산 내편』은 중국의 역법 중 가장 정확한 것으로 평가되는 원나라의 수시력(1281년~1367년 사용)을 한양에서 관측한 천문 데이터로 수정해 제작됐다. 『칠정산 내편』을 편찬한 정흠지, 정초, 정인지는 먼저 중국의 역법을 두루 검토해 발견된 오류를 수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우선 중국의 주요 역법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그 중 가장 정확한 수시력을 기초 자료로 선택했다. 그리고 당시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던 최신 역법인 대통력통궤(1384년~1644년 사용)와 비교해 수시력의 오차를 수정했다. 중국의 역법을 모두 통합해 가장 정밀한 데이터를 모은 것이다. 여기에 정밀 기기로 관측한 한양의 천문 데이터를 대입해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인 역법 체계를 완성했다. 『칠정산 내편』은 한양을 기준으로 한 태양?달?절기 등의 역일, 태양과 달의 운동, 태양의 입출입 시각, 일식 및 월식·오행성의 위치를 구하는 상세한 방법들로 채워졌다.
그림 3 우리나라의 독자적 역법 체계를 정리한 『칠정산 내·외편』.
내편은 중국 원나라의 수시력을, 외편은 아라비아의 회회력을 참고해 제작됐다.
ⓒ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이슬람 천문·역법을 업그레이드 한 『칠정산 외편』
그리스의 천문학 전통을 계승한 이슬람의 천문역산은 그 정확도에 있어서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다. 천동설과 기하학에 기반한 이슬람의 회회력은 특히 일·월식과 오행성의 계산 부분에서 중국의 역법보다 더 정확했다. 심지어 당시 최고 수준의 천문역산을 자랑하던 중국에서 조차 이슬람 천문학자를 초빙해 회회력법을 전수받을 정도였다.
세종은 『칠정산 내편』을 보완할 『칠정산 외편』 제작을 이순지와 김담에게 맡겼다. 이슬람의 회회력을 적용해 『칠정산 내편』을 보강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하지만 중국의 역법과는 전혀 다른 계산 체계인 회회력을 이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국과 이슬람의 역법은 각도법부터 달랐다. 당시 중국의 각도법은 원주 365.25도(°), 1°는 100분(′), 1′은 100초(″)의 단위를 사용했다. 반면 이슬람의 회회력은 그리스의 각도법인 원주 360°, 1°는 60′, 1′은 60″인 60진법을 사용했다. 단위가 다르니 회회력에 기록된 데이터를 모두 중국의 각도법에 따라 바꿔서 이해해야 했을 것이다. 이순지와 김담은 10년 넘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야 비로소 회회력을 완벽히 이해했다. 그리고 회회력의 오차까지도 보완한 『칠정산 외편』을 완성해냈다.
관상수시(觀象授時), “하늘을 세밀히 관측하여 백성들에게 그 때를 알려주다”
『칠정산 내?외편』은 세종과 서운관 학자들이 합작해 완성한 위대한 과학적 성취다. 그 의미는 단지 과학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칠정산 내·외편』이 완성되기 이전 우리나라는 중국 황제가 중국 사람들을 위해 중국 하늘을 관측해 제작한 역법을 그대로 받아 썼다. 하지만 이후에는 조선의 임금이 조선의 하늘을 관측하여 조선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독자적인 역법을 이용하게 됐다. 이는 농사가 모든 경제의 기초가 되던 전통시대에 농사 시기를 정확히 알려 국가경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을 의미했다. 또한 제사 지낼 때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도덕적인 유교 국가로 한 걸음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됐다. 『칠정산 내·외편』은 17세기 서양역법이 도입되기 전까지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 역법의 기초가 됐다.
[교육팁]
밤하늘에는 어떤 천체가 있고, 별은 어떤 운동을 하는지 조사해본다.
- 밤하늘에는 달과 행성, 별이 떠 있다.
- 달은 지구 주위를 1달에 한 바퀴씩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한다.
: 매일 밤 조금씩 다른 시간에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 달의 모양은 1달을 주기로 상현달-보름달-하현달 모양으로 바뀐다.
- 행성은 각각 서로 다른 주기에 따라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스스로 자전한다.
: 행성은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져있기 때문에 별과 같은 모양으로 보인다.
: 공전주기와 자전주기가 행성마다 다르기 때문에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행성은 시기에 따라 다르다.
- 별은 공전도 자전도 하지 않지만,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에 별은 북극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것처럼 보인다.
: 지구가 공전을 하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볼 수 있는 별자리가 달라진다.
: 봄 - 사냥개·게·사자·바다뱀·까마귀·목자·머리털·처녀·천칭 자리 등
: 여름 - 헤라클레스·전갈·뱀주인·거문고·독수리·백조·방패·궁수 자리 등
: 가을 - 염소·물병·남쪽물고기·페가수스·물고기·안드로메다·삼각형·양·고래 자리 등
: 겨울 - 페르세우스·마차부·황소·오리온·쌍둥이·작은개·큰개·고물·용골 자리 등
[교육과정]
- 초등학교 5학년 지구와 달, 태양계와 별
- 중학교 2학년 태양계, 별과 우주
- 중학교 3학년 태양계의 운동
- 고등학교 1학년 지구
글 / 남경욱 국립과천과학관 학예연구사 namkua@mes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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