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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화문석

작성일 2012-12-07

 

 

 

 

한글품명

교동 화문석

설명

화문석은 왕골을 엮어 꽃무늬를 놓아 짠 꽃돗자리를 말하며, 화문석의 생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강화도 교동이다

전문설명

화문석(花紋席)은 왕골을 엮어 꽃무늬를 놓아 짠 꽃돗자리를 말하며, 화문석의 생산지로 가장 유명한 곳은 강화도이다.<임원경제지(林苑經濟誌)>의 "서울의 지체 높은 가정이나 사랑에서는 해서, 배천, 연안의 것을 제일로 쳤으며, 경기 교동(喬桐 : 강화도 서북쪽 섬)의 것은 버금간다"는 구절로 미루어 강화도의 화문석은 근래에 널리 알려졌음을 알 수 있다.화문석은 신라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이미 화문석의 생산을 담당하는 관청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인삼과 함께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우리의 특산품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화문석의 수요가 급증해, 화문석의 조달담당을 위한 기관 장흥고(長興庫)를 두어 각 지방으로부터 필요한 수량을 거두어 들였다.화문석은 겉이 매끄럽고 기름져서 물이 잘 스미지 않고 매우 부드러운 여름철에 마루에 깔면 더위를 피할 수 있어 널리 애용되었으며 무늬 또한 아름다워 집안 장식에도 한몫을 하였다.

또 좌식생활을 해 온 우리에게 화문석은 빼놓을 수 없는 살림살이의 하나였으며, 일찍부터 중요 공산품으로 손꼽혀왔던 것도 그 때문이다.화문석의 재료가 되는 왕골은 사초과(莎草科)에 속하는 일년생 풀로, 줄기는 세모꼴이며 줄기 꼭지에서 꽃이 나와서 잔 꽃이 핀다. 8월초 부터 9월사이에 거두며 길이는 1.5-2m에 이른다. 줄기의 섬유조직은 매끄러우며 윤택이 나는데 다 자라면 누런빛으로 변한다. 화문석의 재료로는 왕골의 줄기만을 사용한다.제작 방법은 크게 완초화문석(莞草花紋席)을 만드는 노경소직법(露經疎織法)과 등메를 제작하는 은경밀직법(隱經密織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강화도 화문석은 완초화문석이므로 노경소직법을 이용한다.완초화문석은 염색한 왕골(완초)을 무늬에 따라 뜸으로 박아 엮은 꽃자리로, 만드는 법은 다음과 같다.먼저 논에서 거두어 들인 완초(왕골)는 삼각기둥을 세 가닥으로 쪼개어 찬이슬을 맞혀가며 3,4일 동안 바짝 말리고 중간 부분에 염색을 한다. 다음 하루쯤 물에 담갔다가 속을 칼로 훑어내고, 문양에 따라 뽑아 쓰기 좋도록 죽으로 엮어 건조한 곳에 걸어둔다. 완전히 준비가 되면 칫수에 따라 고드레를 골라 자리틀에 앉는다.

화문석을 매 올라가기 전에 그릇에다 물을 떠다 놓고 완초를 약간 담갔다 꺼내는데, 이는 약간 축축해져 부들부들해야 갈라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쭈글쭈글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염색한 왕골을 고드랫돌에 감아 가루장목에 늘여 놓고 자리날을 대면서 날실이 겉으로 드러나게 엮어 나간다.흔히 화문석과 등메를 혼동하지만 등메는 한올씩 가마니를 만드는 것처럼 바디로 다져서 짜며 무늬도 물들인 골로 수놓듯 짜는 것이다. 재료 또한 달라서 등메에 드는 참골은 줄기가 둥글고 가늘다.화문석의 형태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이며, 문양으로는 용(龍) 문양, 호랑이 문양, 원앙과 봉황 문양, 학(鶴) 문양, 매화, 모란, 문자 문양 등이 있고 근래에는 주로 거북, 사슴, 학 등 장생(長生)동물과 수복강녕(壽福康寧), 만수무강(萬壽無疆), 구름, 소나무 등이 도안된다.

참고문헌

ㆍ고대민족문화연구소, 『한국민속대관, 5 - 민족예술, 생업기술』, 1982ㆍ이종석, 『한국의 전통공예』, 열화당, 1994ㆍ한국 민속사전편찬위원회, 『한국 민속대사전』, 1994ㆍ한국 정신문화연구원, 『한국 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1

 

자료제공 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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