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거리 저격의 비밀

글|이우상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미국의 전설적인 저격수 고(故)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해군특전단(네이비실)에 복무하는 동안 이라크전에 참전해 미 국방부 공식 기록으로만 160명을 사살하며 아군에겐 ‘레전드(전설)’로 통했지만 적군에겐 ‘라마디의 악마(The Devil of Ramadi)’로 불렸다. 카일의 최장 저격 기록은 2008년 세운 1.92km였다.
세계 최장거리 저격 기록은 영국군 저격수 크레이그 해리슨 상병이 보유 중이다.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중이던 2009년 11월 그는 2475m 거리에서의 저격에 성공했다. 그가 발사한 탄환은 2.64초를 날아가 표적에 명중했다. 저격에 성공한 해리슨 상병은 “바람, 날씨, 시야,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군사적으로 저격은 ‘1km 이상의 먼 거리에서 하는 정밀한 사격’을 뜻한다. 컴퓨터 게임에서는 마우스 클릭(우클릭-좌클릭)만 하면 되지만, 실제 저격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총구를 떠난 탄환은 어떤 오차 수정도 없이 1km가 넘는 먼 거리를 홀로 날아가야만 한다. 탄환이 지나는 길인 탄도는 지구의 중력은 물론 바람과 습도가 지배하는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이 때문에 강인한 정신력과 집중력 외에도 물리학 지식 또한 저격수에게 중요하다.
발사 1초 뒤 4.9m 아래로 곤두박질
총구를 떠난 탄환은 ‘중력’이라는, 물체를 지구 중심으로 잡아끄는 힘 때문에 결코 직선운동을 하는 법이 없다. 정확히 수평으로 발사된 탄환은 중력에 의해 총구를 떠난 지 단 1초만에 4.9m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사람의 키를 감안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오차다. 거리가 멀어지고 탄환이 날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차는 점점 더 커진다. 그래서 저격수는 멀리 있는 목표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미리 발사 각도를 높인다. 이런 정밀 작업을 어림짐작으로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조준경(스코프)이라는 특수 조준장비를 달아 사용한다.
조준경 안에는 십자선(cross hair)이 있다. 십자선은 K2나 M16 자동소총에서 표적을 조준하는 데 쓰는 가늠자, 가늠쇠 역할을 한다. 십자선은 처음 영점(기준)을 잡은 거리에 있는 표적에 정확히 맞도록 돼 있다. 우리나라 해병대는 300m, 미 육군은 900m를 기준으로 영점을 잡는다. 만약 표적과 거리가 더 멀다면 살짝 표적의 위쪽을 겨냥해 쏘거나 스코프 상단의 크리크를 조절한다.

정확한 사격을 위해선 그만큼 표적까지의 거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엔 보통 레이저 거리측정기로 거리를 측정한다. 발사한 레이저가 표적에 닿았다가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을 이용해 거리를 알아낸다. 만약 레이저 측정기가 없다면 지도를 보고 거리를 계산하거나, 조준경 안의 눈금을 이용한다. 눈금의 길이와 눈에 보이는 사람의 평균키를 이용해 비례식을 세우면 거리를 구할 수 있다.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하는 것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주인공 남이(박해일)는 이렇게 말하며 활시위를 놓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저격수는 바람을 철저히 계산해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중력은 지구 어디서나 비슷하지만, 바람은 시시때때로 바뀐다. 때문에 저격수에게는 훨씬 더 골치인 물리변수다. 피부에 가까스로 느껴지는 세기의 남실바람(초속 1.6m)이 불면 탄환은 어떻게 될까. 1km를 날아갔을 때 표적에서 무려 70cm 이상 벗어나게 된다. 탄도를 바람에 맞게 수정하기 위해서는 바람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저격수는 표적 근처에서 휘날리는 깃발과 깃대 사이의 각도를 이용해 바람의 세기를 계산하곤 한다. 나뭇가지의 흔들림, 아지랑이의 방향 등도 바람의 세기를 가늠하는 지표가 된다. 가령 바람이 없으면 아지랑이가 수직으로 올라가지만, 바람이 강해질수록 바람의 방향을 따라 아지랑이가 기울고, 초속 4m 이상 산들바람이 불면 아지랑이가 거의 수평으로 움직인다.
이는 스포츠의 양궁도 마찬가지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마치 물고기가 허공에서 헤엄치듯 구불구불하게 움직이며 과녁까지 날아간다. 여기에 바람까지 불면 70m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지름 12.2㎝의 10점 과녁을 맞히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양궁 선수들은 풍속과 풍향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오조준을 하고 시위를 놓는다.
공기의 저항 “눈에 보이지 않는 푸딩을 뚫어라”
공기는 고도와 온도에 따라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때론 질겨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푸딩이다. 고도와 온도에 따라 공기의 밀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고도와 온도가 높아지면 공기의 밀도는 낮아진다. 반대로 고도와 온도가 낮아지면 밀도는 높아진다. 공기의 밀도가 높을수록 날아가는 탄환이 받는 공기의 저항은 커진다. 따라서 공기의 밀도에 따라 탄환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가 길어지거나 짧아진다. 해발 0m에서 영점을 잡은 총으로 해발 1.5km의 태백산 정상에서 1km 떨어진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 목표 지점에서 1m 정도 벗어난다.

다른 변수는 공기 중에 퍼져있는 물, 즉 습도다. 공기 중의 수분은 탄환의 회전을 더디게 해 탄환의 진행을 방해한다. 처음 영점을 잡았던 환경에서 약 20% 정도 습도가 변할 때마다 1분(각도의 단위, 60분의 1도) 정도의 각도 오차가 생긴다. 나뭇가지의 움직임이나 아지랑이를 통해 바람을 보듯 저격수는 습도 또한 눈으로 볼 수 있다. 조준경을 통해 먼 거리에 있는 표적을 볼 때 뿌옇게 보일수록 습도가 높다. 습도가 100%가 되면 짙은 안개가 낀 상황이기 때문에 아예 저격을 할 수 없게 된다.
저격 거리가 2km가 넘어가면 지구의 자전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탄환이 날아가는 동안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좌우로 휠 수 있는데 이를 코리올리 효과(전향력)라고 부른다.

필자 소개 / 이우상
이우상은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대학을 졸업하고 2011년부터 과학전문매체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기자로 일하고 있다. 줄기세포, 바이러스, 뇌 과학 분야 등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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