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스테이크 굽는 법

글|이정아
갈색으로 살짝 그을린 표면은 바삭하게, 피가 살짝 배어 있는 안쪽은 촉촉~. 오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한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슥슥 썰어 입에 쏙 넣으면 입 안 가득 육즙과 함께 구수한 향기가 퍼진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스테이크는 왜 집에서 굽는 것보다 훨씬 맛있는 것일까? 쉐프의 요리 비법 안에 과학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키위와 파인애플 만난 고기가 연한 비밀
먼저 ‘맛있는 스테이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고기가 질기다면 근섬유나 결합조직이 단단해 잘 끊어지지 않아 불쾌감을 준다. 고기가 연하더라도 지방질이 너무 적으면 삼킬 때 퍽퍽한 느낌이 든다.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고기는 하얀 지방조직(마블링)이 여기저기 박혀 있어 부드럽고 육즙이 많다. 육질이 부드러우면 깨물었을 때 치아가 쑥 들어갈 만큼 촉촉하고, 처음엔 잘 씹히지 않지만 곧 연하게 씹히면서 풍미가 느껴진다.
그런데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비법이 있다. 바로 재료다. 실험으로 알아보자. 쇠고기 양지머리(소의 앞가슴에서 배 아래쪽까지 부위)를 100g씩 일곱 덩어리 준비한 다음, 하나는 그냥 놔두고(대조군), 나머지에는 키위와 생파인애플, 통조림 파인애플, 콜라, 그리고 사과와 양파를 즙으로 내어 각각 22g씩 넣는다. 그리고 30분 동안 고기를 재운 뒤 170℃로 예열한 오븐에 넣어 약 13분 동안 굽는다. 오븐 문을 여니 구수하고 향긋한 고기 냄새가 뭉게뭉게 퍼졌다. 꿀꺽 침을 넘기며 고기를 꺼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동일한 고깃덩어리인데 생김새가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 처리를 하지 않은 고기를 포함해 대부분의 고기들은 형태가 거의 변하지 않아 집게로 집어 그릇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런데 키위와 파인애플 즙을 넣은 고기는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집어야 했다. 고기가 연해지다 못해 부스러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통조림 파인애플 즙을 넣은 고기는 부스러지지 않고 비교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엔 직접 먹어보면서 육질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역시나 키위와 파인애플 즙을 넣은 고기는 입에 넣자마자 녹아버렸다. 육질이 무척 부드럽고 달콤했다. 통조림 파인애플과 사과 즙을 넣은 고기도 연해져서 먹을 만했다. 하지만 콜라나 양파 즙을 넣은 고기는 아무 처리를 하지 않은 고기처럼 질겅질겅 씹어야 했다. 도대체 고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질긴 고기가 연해진 비결은 효소 덕분이다. 키위에는 액티니딘, 파인애플에는 브로멜라인이라는 단백질 소화효소가 들어 있다. 이 효소들은 고기를 단단하게 만드는 단백질을 잘게 부숴 연하게 만든다. 상온에서는 느리게 활동하지만 60~70℃에서는 5배가량 빨라진다. 그래서 고기는 양념에서 재울 때보다 오븐에서 조리하는 동안 급격히 연해진다. 너무 많이 넣으면 오히려 씹는 맛을 줄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고기는 씹는 맛이 제 맛이니까!
실험으로 알아낸 것처럼 통조림 파인애플은 단백질 분해효과가 비교적 떨어진다. 통조림을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파인애플을 열처리하는 동안 과일 안에 들어 있던 효소가 파괴됐기 때문이다. 파파야, 무화과, 생강에도 고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효소가 들어 있다. 이것들을 갈아서 고기에 조금 넣으면 마찬가지로 고기를 부드럽고 연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주방에 이런 재료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방향으로 결이 나 있다. 이 고깃결과 직각 방향으로 자르면 근섬유가 짧아져 씹기가 쉬워진다. 칼집을 살짝 내거나 칼 등으로 고기를 두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기를 질기게 하는 힘줄이 끊어져 연해지기 때문이다.
구수한 육즙을 지켜라!
고기 맛을 진정 아는 사람은 웰던(well done) 보다는 미디엄(medium), 미디엄 보다는 레어(rare)를 찾는 법! 고기를 너무 오랫동안 구으면 육즙이 바깥으로 모두 빠져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육즙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고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워보자.

먼저 차가운 프라이팬에 고기를 넣고 뚜껑을 닫아 약한 불에 굽거나, 뜨겁게 달군 프라이팬에 고기를 넣어 구웠다. 차가운 팬에 구운 고기는 겉이 까맣게 그을려서 왠지 뻑뻑해보였다. 실제로 고기가 질기고 안쪽까지 바싹 익어서 말라붙은 나무껍질처럼 퍽퍽했다. 미리 예열한 팬에 구운 고기는 겉이 갈색으로 그을리고 향긋한 내가 났다. 고기를 한입 무는 순간, 입 안 가득 육즙이 퍼졌다. 센 불로 고기를 짧은 시간 동안 구워 육즙을 지켰기 때문이다.
적당히 익은 고기보다 겉이 살짝 그을려 갈색의 윤기가 나는 고기가 더 맛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기를 가열하면 표면에 있는 단백질과 당분이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켜 고기의 표면이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변하면서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맛과 향을 내기 때문이다. 마이야르 반응이란 당분과 아미노산이 만나 갈색을 띠는 멜라노이딘을 만드는 현상이다. 고기를 구울 때 나는 특유의 구수한 냄새도 마이야르 반응으로 생긴 것이다.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는 음식에는 구운 고기를 비롯해 간장과 된장, 빵, 쿠키, 커피 등이 있다.
고기를 불에 구우면 중심부까지 열이 전달되는 동안 겉 부분은 너무 익어 질겨질 수 있다. 만약 고기 전체를 일정한 온도로 천천히 익히면 어떻게 될까? 서양 요리사들은 스테이크를 내열성 진공 비닐팩에 밀봉하고 물에 넣어 낮은 온도(60~75℃)로 긴 시간 동안 익히는 진공저온요리법 ‘수비드(sous vide)’에 주목하고 있다. 수비드란 진공상태를 뜻하는 프랑스어다. 수비드로 조리한 스테이크는 직접 구운 고기보다 훨씬 부드럽고 풍부한 맛과 향이 난다. 육즙이 바깥으로 흘러나가지 않고 고기 조직만 변해 전체가 고루 익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비드로 조리한 스테이크는 겉이 말랑말랑하다. 바삭바삭하게 구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입맛에는 부족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레스토랑에서는 수비드로 익힌 스테이크를 그릴에 얹어 겉만 살짝 익히기도 한다. 고기 겉을 캐러멜 형태로 만들어 바삭하면서도 달콤한 맛과 향을 내기 위해서다. 스테이크 같은 양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요리에서도 수비드를 활용해 보면 어떨까? 갈비찜이나 족발을 수비드로 요리하면 맛과 향이 훨씬 풍부해지지 않을까?
필자 소개 / 이정아
김상연은 과학동아 편집장을 지낸 뒤 현재 동아사이언스 전문기자로 있다. 개그콘서트와 무한도전보다 더 재미있는 과학기사를 꿈꾸며 20년 간 과학기자를 해왔다. 과학이 그저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지만 과학을 알면 좀더 즐겁고 올바르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과학과 함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이야기를 참 좋아한다. <우리 옆집 과학자> <줄기세포> <과학이슈11> 등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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