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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조종사들의 또다른 적, 중력가속도

작성일 2012-03-26

전투 조종사들의 또다른 적, 중력가속도

 

꽤 사실적인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보신 분들이라면, 기체를 좌, 또는 우로 기울인 후 조종간을 당겨 급선회를 하거나, 조종간을 계속 잡아당기는 루프 기동시 화면이 검어지는 현상을 경험하셨을 것이다. 이는 절대 ‘불량’이 아니다. 항공기 급기동시 높은 중력가속도를 받은 조종사들의 시야를 현실적으로 재현한 것이다.

 

사실 편의상 ‘중력가속도’라고는 부르지만, 그 실체를 알고보면 ‘원심력’에 더 가깝다. 원심력은 원운동을 하는 물체를 밖으로 밀어내려는 힘이다. 일상생활에서 원심력의 실제와 그 힘을 느끼고 싶다면 각 가정마다 하나씩 비치되어 있는 세탁기를 보면 된다. 세탁이 끝난 후에 세탁물을 보게 되면 하나같이 세탁조 가장자리 벽에 찰싹 붙어 있다. 세탁조 내부의 물이 회전, 즉 원운동을 하면서 원심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NASA에서 우주비행사 중력가속도 대응 훈련용으로 사용하는 원심분리기.

공군에서 사용하는 것도 이와 대동소이 하다.

 

급선회를 하는 전투기도 엄연히 원운동을 하는 물체이므로 원심력을 받는다. 원심력은 원운동을 하는 물체의 속도가 빠를수록 크게 나타나므로, 전투기가 받는 원심력은 지구 중력을 기본단위로 따져도 몇 배나 될만큼 크다. 때문에 중력가속도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력가속도는 선회하는 항공기의 기체와, 그 속에 타고 있는 조종사의 인체에 모두 동일하게 작용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중력가속도를 재는 단위는 지구 중력인데, 중력(Gravity)의 약자인 G라는 단위기호를 사용해 표기한다. 이 앞에 붙는 숫자를 보면 지구 중력의 몇 배에 해당하는 힘을 받는지를 알 수 있다. 예컨대 3G는 지구 중력의 3배에 해당하는 힘이다. 즉 항공기와 조종사는 자신의 몸무게의 3배에 달하는 힘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조종사 체내의 체액에도 동일하게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두뇌와 안구가 위치한 머리에서 피가 빠져나가 하반신으로 몰려가게 된다.

 

G가 계속 높아져 이러한 상태가 심화되면 어떻게 될까? 머리에 혈액이 빠져나오면 두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게 되므로, 우선 시야가 회색빛으로 흐려지는 그레이 아웃 현상이 나타난다. 그 다음에는 시야가 좁아지는 터널 시야 현상이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눈 앞이 보이지 않게 되는 블랙 아웃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완전히 의식을 잃게 된다. 이를 G-LOC(영미권에서는 보통 지-록이라고 발음한다)라고 한다.

 

반대로 조종간을 앞으로 기울여 하강할 때는 항공기가 등 부분을 바깥으로 원운동을 하게 되므로, 원심력이 급선회 및 루프 때와는 반대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따라서 중력가속도도 반대방향으로 작용하는데, 이를 -G라고 한다. 이 때는 조종실 내의 물건이 떠오르는 것은 물론 조종사 체내의 혈액도 머리쪽으로 몰리게 된다. 따라서 과도한 혈액이 몰린 조종사의 안구에 비친 물건은 모두 빨갛게 보이다가, 상태가 심해지면 역시 눈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 상태를 레드 아웃이라고 한다.

 

원심분리기 안에서 중력가속도를 견디는 상황이 되면 누구나 이런 바보같은 표정을 짓게 된다.

격렬한 급기동과 높은 중력가속도가 이어지는 공중전 중에서, G로 인한 시야 상실 및 의식 상실은 조종불능 상태로 이어져, 결국 귀중한 항공기와 조종사를 상실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각국의 공군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고자, 전투조종사에게 G에 대처하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호흡법이다. 마치 역기를 들 때처럼 온 몸의 근육을 바싹 긴장시키고, 성문을 닫아 피가 머리에서 빠져나갈 여지를 최대한 줄인 다음, 매우 짧고 빠르게 호흡을 계속하는 방법이다.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 일명 ‘곤돌라’라고 불리우는 원심분리기에 탑승,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9G의 중력가속도를 호흡법만으로 30초간 버텨야 한다.

 

또한 조종복 위 조종사의 아랫배와 다리 부분에 G수트라는 중력가속도 보호복도 착용하게 되는데, 이 보호복이 중력가속도를 막아내는 원리는 사실 알고보면 매우 단순무식하다. 보호복에 달린 튜브를 항공기의 기압장치에 연결하면, 항공기가 급선회를 할 때마다 기압장치가 공기를 G수트 내의 공기주머니에 공급, 조종사의 하체를 강하게 압박함으로서 조종사 머리에서 혈액이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하지만 이 G수트의 성능은 의외로 미약하다. 중력가속도에 대한 내성을 1G 정도밖에 높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호흡법이 중력가속도를 이기는 왕도라고 할 수 있다. 그 좋은 사례로 미 해군 곡예비행대 블루엔젤스의 조종사들은 섬세한 비행조작에 방해가 된다고 G수트를 착용하지 않지만, 그래도 각종 곡예비행을 잘만 해 낸다.

 

G수트. 조종사의 아랫배와 다리를 압박해, 혈액이 하반신으로 흐르는 것을 차단하는 구조이다.

참고로 인간은 역시 중력을 아래쪽으로 받는 상태에서 살아온지라, -G보다는 +G에 더욱 강하다. 9G까지 버티는 사람이라도 -3G 이상을 버티기는 힘들다고 한다. 항공기 역시 그런 인간의 특성을 감안해 +G에 더욱 강한 내구성을 갖도록 설계된다.

 

글: 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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