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차 무한궤도 속의 비밀

전차 무한궤도 속의 비밀
보통 이걸 만든 회사 이름을 따서 캐터필러라고도 많이 불리는 무한궤도는, 전차를 비롯한 이런저런 특수차량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다. 일반적인 차량은 바퀴를 사용하는데, 특수차량은 무한궤도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다른 차량도 마찬가지이지만, 전차에서 무한궤도를 사용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바로 접지압의 감소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주력전차는 자중이 50톤 이상 나가기 때문에, 일반적인 차량처럼 바퀴만으로 차량의 무게를 지탱하다가는 지면의 상태에 따라서는 오히려 바퀴를 지면에 잘 박아버릴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전차는 무한궤도라는 ‘전용 도로’를 가지고 다니며 바퀴 밑에 깔아 씀으로써, 일반 차량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 차체 중량을 분산시키고 접지압을 낮춰, 땅이 좋지 않은 곳(늪지나 논밭 등 지반이 약한 곳)에서도 원활하게 기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차의 경우 접지압을 구하는 식은 p(접지압)=차량 중량 W(kgf)/2×접지 길이L(cm)×궤도 폭B(cm)이다. 간단히 말해 차량 중량/접지 면적이 접지압이 되는 식이다. 이론상으로는 전차의 접지압이 노면의 허용 접지압보다 작으면 가지 못할 곳은 없다.
전차는 상당히 무거운 차량이지만, 뜻밖에 접지압은 승용차보다도 낮다. 보통 전차의 접지압은 0.8~1.2kgf/cm2 . 승용차는 1.5~2.5kgf/cm2 다. 인간은 0.5kgf/cm2 정도이고, 장갑차는 인간과 비슷한 0.4~0.6kgf/cm2 정도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접지압은 차체 중량에 비례하고 접지 면적에 반비례하므로, 무한궤도만 유심히 봐도 차량의 접지압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보통 무거운 차량일수록 접지압을 낮추기 위해 무한궤도의 폭을 넓히게 된다. 심지어 독일의 티거나 판터 전차가 여러 개의 보기륜을 서로 겹쳐 배열하는 오버랩식 보기륜을 사용한 것도 접지압을 될 수 있으면 낮추고 접지 면적에 균등하게 배분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반면 가벼운 차량은 굳이 폭넓은 무한궤도를 쓰지 않아도 접지압이 낮으므로 폭이 좁은 무한궤도를 쓰게 된다.
M-4 셔먼 전차의 궤도
여기까지 읽으면 접지압을 무조건 낮추는 것이 기동성을 높이는 데 바람직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승용차의 경우만 봐도 타이어에 바람이 빠지면 접지면적이 많이 늘어나 접지압은 낮아지지만, 대신 정지마찰력도 줄어들어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전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무한궤도의 폭은 접지압과 마찰력 사이의 균형을 얻기 위해 조정되어 있다. 적절한 마찰력을 확보하는 것은 경사로를 오르는 등판 성능을 내는 데도 중요한 요소이다.
무한궤도의 표면에 복잡한 요철, 특히 팔(八)자 무늬가 양각으로 새겨진 것이 많은데, 이 역시 마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접지압은 접지 면적 전체에 골고루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궤도가 도드라진 곳에 강하게, 오목한 곳에 약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티거 전차는 전기형 궤도에는 팔자 무늬가 없었으나 후기형 궤도에는 팔자 무늬가 생겼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등판 성능을 높이려는 조치이다. 그러나 미국의 M1 전차는 전기형 궤도에는 팔자무늬가 있었으나, 후기형 궤도에는 팔자무늬가 사라졌다. 높은 등판성능이 필요 없다는 뜻일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M1 전차는 전기형의 차체 중량은 55.7톤이지만 후기형의 중량은 63톤으로 많이 늘어났다. 그에 반해 전차의 접지면적은 단 1cm2도 늘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접지압을 더욱 균등하게 분산하기 위해서는 민짜 궤도가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 무게가 늘어난 후기형에는 민짜 궤도를 장착하는 것이다.
사람이 겨울철에 미끄럼 방지를 위해 신발에 아이젠을 다는 것처럼, 전차도 눈밭이나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달리기 위해서는 방활구를 부착하기도 한다. 방활구는 궤도 자체의 요철보다 더욱 많이 튀어나와 있다. 미국제 전차는 일정 간격의 궤도 가이드 티를 뒤집어 닮으로써 방활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독일제 레오파르트 전차 등 별도 부품으로 되어 있는 일도 있다. 레오파르트 전차의 겉면에 매달린 X자형 부품이 바로 이 방활구이다.
또한, 전차 궤도는 고무패드가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는데, 고무패드가 달린 궤도가 더욱 승차감도 좋고, 포장도로를 상하게 하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정비 소요는 그만큼 많다(닳아버린 고무패드를 제때 갈아 줘야 제 성능이 나오므로). 반면 고무 패드 없는 전 금속제 궤도는 그만큼 더 튼튼하고, 험지 돌파력이 우수하지만, 승차감이나 포장도로 보호 면에서는 뒤진다.
전차 궤도는 유동륜의 위치를 조절함으로써 장력(팽팽한 정도) 조절도 가능하다. 보통 노면 상태가 양호할수록 장력을 느슨하게, 진흙밭이나 눈밭 등 노면 상태가 불량할수록 장력을 팽팽하게 조정하게 되는데, 이유는 양호한 노면에서 장력이 너무 팽팽하면 궤도와 지면 간의 마찰력이 커져 동력손실 및 궤도 과다 마모, 심지어는 파손의 위험까지도 따르고, 불량한 노면에서 장력이 느슨하면 견인력이 낮아지고, 기동륜, 또는 유동륜과 궤도 사이에 이물질이 끼어들어 가면서 궤도가 이탈되기 때문이다. 모형 전차를 많이 가지고 노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차는 궤도가 이탈되면 기동력은 없어진다. 다시 끼워주기 전까지는. 따라서 최신형 전차에서는 전차가 센서를 통해 노면상태를 탐지하고, 최적의 장력을 스스로 조절하는 동적 궤도 장력 조절 시스템이 들어 있다.
글: 이동훈(과학 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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