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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셀 위장복의 과학적 효과

작성일 2011-11-03

픽셀 위장복의 과학적 효과

 

2011년 10월부터 국군의 위장복이 픽셀 위장복(부르는 사람에 따라서는 디지털 위장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으로 바뀌어 지급될 예정이라고 한다.

 

픽셀 위장복의 채용은 현재 전 세계적인 대세이다. 패권국인 미국은 물론, 그 영향권 내에 놓인 나라들도 현재 픽셀 위장 패턴을 채용했거나 픽셀 패턴으로 바꿀 예정이다. 심지어는 미국의 영향권 밖인 동유럽의 구공산권 국가들이나 인도 등의 제3세계 국가, 중국 등의 공산 국가에서도 픽셀 위장 패턴을 사용하고 있다.

 

픽셀 위장복을 입은 미 해병대원(왼쪽)과 구형 우드랜드 위장복을 입은 한국 해병대원(오른쪽).

위장효과의 차이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픽셀 위장 패턴은 왜 이렇게 엄청난 ‘대세’를 이룬 것일까? 그것을 알려면 1930년대의 독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계 최초로 위장무늬 원단을 발명한 나라는 이탈리아였지만, 위장무늬 이론의 체계화, 과학화에 성공한 것은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마나 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군대에서 위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착용자가 적의 시각 관측에 포착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설령 적의 시각 관측에 포착되었더라도, 적이 제대로 조준을 하지 못하게 해서 착용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때문에, 위장에 사용되는 색상은 될 수 있는 대로 현지의 지형지물과 유사한 색상이어야 한다. 그리고 기왕이면 단색 위장보다는, 2가지 이상의 색을 사용해 ‘위장무늬’를 만들어 위장하는 것이 더욱 높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원래 전투가 일어나는 야외는 어디를 봐도 한 가지 색으로 전체가 같은 환경은 드물어서 당연한 얘기다.

 

그리고 기왕이면 같은 위장무늬더라도, 붓으로 찍어 발라 색상 간의 경계가 또렷한 위장무늬보다는, 점묘 방식으로 프린팅되어 색상 간의 경계가 매우 희미한 위장무늬가 더욱 위장 효과가 우수하다. 이른바 베졸트 효과 때문이다. 베졸트 효과란 위장 색이 칠해진 면적이 매우 작거나 그 무늬가 매우 가늘 경우, 배경과 줄무늬가 혼합되어 보이거나 색의 색상, 명도, 채도가 본래의 색과는 다르게 지각되는 효과를 말한다. 사실 아무리 좋은 위장 원단이라고 해도 아직 카멜레온이나 개구리의 가죽처럼 환경에 따라 색상 자체가 변하는 원단은 실용화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처음에 정해진 색상을 가지고도 될 수 있으면 주변 환경에 동화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 방법이 바로 위장무늬를 최대한 자잘하게 만들어 베졸트 효과를 얻는 것이다.

 

1930년대 독일의 과학자 요한 게오르그 오토 쉬크 박사는 이미 이러한 위장무늬의 이론을 확립하고, 이러한 이론을 적용한 점무늬 패턴 위장복을 만들어 독일의 무장친위대에 납품했다. 사실 이 시점에서 위장무늬의 이론은 이미 확립된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미국이 쉬크 박사가 확립한 이론을 바탕으로 점무늬 패턴 계열인 덕헌터 위장복을 만들어 자국 군대에 입한 것이나, 전쟁 이후 독일을 위시한 유럽 여러 나라 국가들, 심지어는 바로 이웃 나라인 일본 자위대도 점무늬 위장복을 채용한 것만 봐도 그 우수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점무늬 위장 원단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바로 가장 적합한 효율을 가진 위장 패턴을 뽑아내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점무늬 위장복을 입은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 군인 인형을 칠해 보신 분들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붓으로 그 위장 패턴을 따라 그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이다. 그것은 실물의 원단 나염용 스크린을 만드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고민거리로 찾아오는 일이다.

게다가 과거에는 요즘처럼 나염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요즘보다 훨씬 비효율적이고 힘든 제조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위장 원단의 단가는 현대의 그것에 비해 엄청나게 비쌌다. 때문에 병력 수가 많은 전군에 위장복을 보급하고 싶었던 군사 대국들은 점무늬 위장 패턴을 포기하고, 붓으로 그린 모양의 손쉬운 위장 패턴에 매달렸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얘기는 바뀌었다. 하루가 갈수록 진화하는 컴퓨터 기술이 점점 위장 원단 제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었다. 이미 1980년대 초반에 나온 미국의 우드랜드 위장 원단부터가 컴퓨터를 이용해 배색한 제품이었다. 그 이후로도 컴퓨터 기술은 진화를 거듭해, 드디어 위장 패턴을 정하는 데에도 컴퓨터의 힘이 들어갔다. 컴퓨터는 사람이 손으로 그릴 수 없을 만큼 매우 복잡한 위장무늬도 자체적으로 생성해낼 수 있을 만큼 발전한 것이다. 심지어 2010년대 초반인 요즘은 픽셀 패턴을 만들어주는 소프트웨어도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점의 크기를 매우 작게 해 점무늬 위장패턴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컴퓨터의 인식 및 스크린 제작이 쉬운 픽셀 무늬의 위장 원단이 캐나다에서 첫선을 보였다. 1988년부터 연구가 시작된 이래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1997년의 일이었다. 이후 캐나다군은 2001년에 전군의 위장복을 이 픽셀 무늬로 바꾸게 되었고, 이후 미군도 그 뒤를 따르게 된다.

 

픽셀 패턴 위장복의 우수성은 실험을 통해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다. 미 육군 퇴역 중령 티모시 R. 오닐 박사의 실험 결과, 평균 피탐지 시간, 즉 군복을 입은 사람의 존재를 관측자가 탐지해내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에서 단색군복은 0.8초, 우드랜드 군복은 1.1초가 걸렸지만, 픽셀 위장복은 2.5초가 걸렸다. 그리고 평균 인식 시간, 즉 탐지된 물체가 군복을 입은 사람이라는 점을 관측자가 인지하는 데 걸리는 시간 면에서는 단색군복은 0.8초, 우드랜드 군복은 1.6초가 걸렸지만, 픽셀 위장복은 1.9초가 걸렸다. 탐지에서 인식까지 걸리는 시간 면에서 볼 때, 단색군복의 2.75배, 우드랜드 군복의 1.57배의 시간이 더 소요된 것이다. 자, 이만하면 픽셀 위장복의 우수성을 충분히 실감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픽셀 위장복은 또한 위장복 업계에서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난제, 즉 도시에서의 효율적 위장이라는 숙제를 해결해 준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사실 어느 전쟁에서나 시가전은 빠진 적이 없었고, 앞으로 도시 거주 인구가 늘어나면서 미래전쟁에서의 시가전의 비중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그러나 시가전에 어울리는 위장복은 좀처럼 쉽게 나오지 않았는데, 그것은 도시라는 환경이 야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다채로운 색상과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기존 우드랜드 패턴 같은 곡선형 위장무늬로는 아무래도 녹아들기가 쉽지 않은 환경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점무늬 위장패턴의 효과를 극대화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모두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는 픽셀 위장복이라면 도시의 환경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 육군의 ACU는 모두 회색 계열 색상, 즉 주변환경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보일 여지가 높은 무채색 계열 색상의 픽셀 위장패턴을 채용, 시가전에서 최적의 위장 효과를 제공하고, 피탐지된 경우라도 적으로 인식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최대한 늘려주고 있다. 아마 용산 같은 데서 ACU를 입은 미군들을 보신 분이라면 이 말이 십분 공감이 가실 것이다. 모자를 쓴 머리만 하늘에 둥둥 떠가는 듯한 그 모습을 보셨다면.

 

 미 육군이 채택한 픽셀 위장복인 ACU 패턴은 시가전에서의 위장 효과가 매우 월등하다.

 

 

글: 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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