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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의 수직 장갑 VS 경사 장갑 그 끝나지 않는 논쟁

전차의 수직 장갑 VS 경사장갑 그 끝나지 않는 논쟁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가 처음 출현한 이래, 전차의 전통적인 장갑은 수직 장갑, 그러니까 지면과의 각도가 90도 또는 그에 가까운 장갑이었다.
독일의 티거 전차는 수직 장갑을 채용, 여유로운 내부공간을 자랑하지만, 방어력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장갑 두께를 늘린 결과 무게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졌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수직 장갑을 사용하면 전차의 내부용적을 극대화할 수 있다. 군에서 전차병으로 복무해 본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전차 안에는 사람 말고도 들어가야 할 것이 한 가득이다. 우선 차체만 보더라도 거의 절반 정도가 엔진실로 쓰이는데다, 차폭의 절반~1/3 가까이 궤도와 주행기구를 담는 데 쓰인다. 포탑도 상황은 그리 나을 것이 없어서 포탑 내부로 거대한 포미 장전부가 불쑥 튀어나와 있다.
그 외에도 전차의 운용에 필요한 연료와 탄약, 수리공구, 무전기, 전차병들의 생활용품 등등을 싣고 나면, 거짓말 좀 보태서 손발 하나 마음대로 까딱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수직 장갑을 사용해서 전차의 내부용적을 극대화하면, 그만큼 더 많은 물품을 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승무원들에게도 더욱 여유 있는 개인 공간을 허락, 승차감을 향상해 궁극적으로 전투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까지 대부분의 각국 전차는 대부분 수직 장갑을 채용한 ‘상자 갑’형 디자인이 많았다. 그런데 이 수직장갑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방탄 효과가 낮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두께 100mm의 철판으로 수직 장갑을 만들면 방탄 효과는 너무나도 정직하게 ‘두께 100mm의 철판’ 수준을 절대 넘을 수 없다.
따라서 수직 장갑을 채용한 전차의 방어력을 늘리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바로 장갑을 더욱 튼튼하고 두텁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장갑이 두꺼워질수록 전차의 무게가 증가, 기동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명전차 티거 전차는 수직 장갑형 전차의 가능성과 한계를 모두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전차는 거대한 88mm 주포와 700마력급 마이바흐 HL230-P45 엔진 이외에도 92발의 전차 포탄과 4,800발의 기관총탄, 534리터의 가솔린 연료를 실었다. 이러고도 공간이 남아서, 현재의 레오파르트 전차보다도 승무원의 승차감이 훨씬 편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장갑 두께를 최대 120mm까지 늘인 결과, 이 전차의 중량은 무려 56톤으로 불어났다. 21세기 현대의 한국에조차 통과하중이 30톤이 채 안 되는 교량이 부지기수인 것을 고려하면, 당시 이 전차의 전략 기동성 및 전술 기동성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련의 T-34 전차는 경사 장갑을 채용, 가벼운 무게에도 엄청난 방어력을 자랑하지만, 그만큼 내부가 비좁다.
그렇기에, 비교적 얇은 두께와 가벼운 무게의 장갑으로도 훨씬 두꺼운 장갑과 버금가는 방탄효과를 얻기 위해 경사 장갑이 등장했다. 경사진 장갑판은 수평으로 날아오는 포탄에 대해 실질적인 두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mm 두께의 장갑판을 수직으로 세울 경우, 수평으로 날아오는 포탄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방탄 효과는 100mm 두께의 장갑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장갑판을 30도 기울이면 수평으로 날아오는 포탄에 대한 장갑판의 실질 두께는 120mm로, 60도로 기울이면 200mm로 늘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사용한 T-34 전차는 이와 같은 경사 장갑을 이용해 성공한 경우다. 이 전차의 중량은 불과 27톤, 전면장갑 두께도 47mm에 불과했지만, 이 장갑이 무려 60도 각도의 경사 장갑이었던 탓에, 수평으로 날아오는 포탄에 대한 실질 방어력은 무려 100mm 두께의 수직 장갑에 맞먹었던 것이다.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은 가지고 있던 37mm, 50mm 구경 대전차포로는 이 전차를 거의 격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이후 독일군도 판터, 쾨니히스티거 등의 신예 전차에서는 전통적인 수직 장갑을 버리고 경사 장갑을 채용, 경사 장갑의 우수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경사 장갑도 단점은 있었다. 우선 차체 크기가 같을 경우, 수직 장갑을 채용한 전차에 비해 내부 용적이 줄어든다. 이는 탑재량 감소 및 승무원의 승차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전차 포탄의 진화는 경사 장갑의 이점을 상쇄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현대에 들어와 개발된 전차포용 철갑탄 중 APFSDS(날개 안정식 장탄 통 분리 철갑탄)은 무려 초속 1,400~1,700m에 달하는 엄청난 포구초속을 낸다. HEAT 탄의 포구초속이 보통 초속 1,000m 대 초반이니까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는 운동에너지 공식에 대비해 보면 벌써 운동에너지에서 최대 3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이미 경사 장갑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재미를 톡톡히 본 소련은 전후 생산한 거의 모든 전차에 경사 장갑의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반구형 포탑을 장착했다. 그러나 걸프 전쟁 당시 미군의 전차가 발사한 APFSDS는 이라크군의 소련제 전차 포탑 표면과의 각도가 거의 수평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압도적인 운동에너지로 거뜬히 관통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사용하는 최신예 전차 설계에서는 더는 경사 장갑에 연연하지 않고, 차라리 많은 탑재량과 편안한 승차감을 보장하는 수직 장갑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수직 장갑을 쓰다가 나중에 다시 경사 장갑을 장착한 독일의 레오파르트 2 전차와 같은 다소 예외적 경우도 있다. 전차라고 언제나 APFSDS를 날려대는 적전 차만 상대하는 것은 아니며, HEAT 탄을 쓰는 보병의 대전차 무기의 공격에도 견뎌야 한다. 그런 무기의 공격을 받을 때라면 경사 장갑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짜장면 짬뽕 논쟁과 마찬가지로, 수직 장갑과 경사 장갑 논쟁도 아마 전차라는 장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끝없이 계속될 것 같다. |
글: 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