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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연구실] 나치 부역자의 면죄부, 베르너 폰 브라운

작성일 2013-09-14

2차대전 말, 독일의 로켓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과 V2 로켓 개발 책임자인 발터 도룬베르거를 위시한 일군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몰래 독일군의 감시망을 빠져나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V2 탄도미사일을 만들던 그들이 ‘아군’의 눈을 피해야 했던 까닭은 히틀러에게 광신적인 친위대(SS, SchutzStaffel) 때문이었다.

 

 

날아오르는 V2 로켓과 로켓으로 피해를 입은 런던 시가지. 독일은 전쟁기간 중에 기술력으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려 신무기 개발에 집중했다.

 

패전이 임박하자 희망없는 저항을 하던 나치는 그간 개발한 과학기술을 ‘소멸’시킬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경제력이나 생산력, 동원력이 연합군에 비해 턱없이 열세였던 나치 독일은 기발한 신무기로 전력을 차이를 극복하려 했으며, 그 결과 실제로도 적지 않은 성과를 내던 참이었다. 문제는 패전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러한 기술이나 관련 인력들이 연합군에 넘어가면 안 그래도 나쁜 전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치 중 일부는 연구시설을 완전히 파괴하고 과학자들은 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정식 작전 명령이라기보다 급박한 전장에서 즉흥적으로 결정된 임기응변에 가깝기는 했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중대한 위협이었다.

 

연합군은 이러한 움직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마무리되자마자 미국 정보부(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은 나치의 과학자들을 흡수하려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오버캐스트 작전(Operation Overcast), 또는 종이클립 프로젝트(Paperclip Project)라고 불리는 ‘독일 과학자 이주’ 계획이었다.

 

독일의 신무기 개발 정책과 19세기부터 급격히 발전한 독일의 과학기술 덕분에 전쟁기간 동안 수많은 과학자들이 배출됐다. 직접 개발한 로켓을 조수와 들고 있는 폰 브라운.

 

이름이 암시하듯 이 계획은 단순히 주요 독일 과학자 명단을 종이클립으로 표시해놓는 아주 간단한 작전이었다. 사전에 분류해 둔 과학자들은 합동첩보목표국(JIOA, Joint Intelligence Objectives Agency) 요원들이 은밀히 미국으로 이주시켰다.

 

애초에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나치 전적이 있는 사람들은 배제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이 작전을 승인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나치 전적을 일일이 조회할 여유도 없는데다 나치 부역자를 철저히 가려낼 경우에는 독일 과학자의 66% 정도는 데려올 수 없었다.

 

JIOA의 선택은 바로 '은폐'였다. 나치에 협력한 주요 과학자들의 당이나 친위대 활동 이력은 삭제됐다. 소련과도 독일 출신 인재를 확보하는 데 경쟁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력이 어떻건 한 명이라도 더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폰 브라운은 미국 로켓 기술의 핵심 인물이다. 아폴로 계획을 성공시킨 새턴-V 로켓을 배경으로 한 폰 브라운의 사진.

 

미국 로켓 기술의 주역이자 아폴로 프로젝트의 핵심인물인 베르너 폰 브라운은 바로 종이클립 프로젝트의 수혜자였다. 폰 브라운과 120여명의 그의 동료들은 오스트리아의 미군 점령지역에 도달해서 JIOA 요원들에게 항복했다. 종이클립 프로젝트 덕분에 나치 당원인데다 친위대의 일원이었던 폰 브라운은 과거 경력이 불문에 붙여진 채 미국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만약 과학자를 따로 우대하는 정책적인 배려가 없었다면 그는 꼼짝없이 전범재판에 회부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치 활동 이력은 그리 쉽게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국 시민권을 얻고 국가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냈지만, 폰 브라운에게는 나치 활동과 관련된 루머나 의혹이 늘 따라다녔고 가끔 곤혹스런 질문에도 시달렸다. 폰 브라운은 그에 대해 침묵했지만 친위대 시절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이를 기회주의적이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만, 그의 친위대 활동 이력이 그리 적극적인 것도 아니었고 V2 생산공장에서 자행된 잔학행위에 폰 브라운의 직접적인 책임도 없었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김택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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