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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화의 만남] 영화 속 로봇과 인간, 누가 더 인간적인가

작성일 2013-09-14

사람도 닮고 기계도 닮았으면서 무거운 물건도 척척 나르고 복잡한 계산도 순식간에 하는 존재는? 누군가 수수께끼를 낸다면 정답을 쉽게 맞출 것이다. “로봇!” 그러나 로봇 중에는 너무 작아서 물건을 나르지 못하는 종류도 있고, 두뇌가 좋지 않아 사람의 암산보다 느리게 숫자를 계산하는 종류도 있다. 공장이나 산업현장에서 쓰이는 로봇의 대부분은 인간의 형태를 갖추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로봇이 사람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로봇(robot)이라는 단어는 1920년에 만들어졌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발표한 ‘로숨 박사의 만능 로봇’이라는 제목의 희곡에 처음 나타났다. ‘노동’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로보타(robota)가 변형되어 ‘노동을 하는 인조인간’이라는 새로운 의미가 탄생한 것이다. 차페크의 희곡에서는 사람보다 힘이 세지만 정신이나 영혼이 담겨 있지 않은 무서운 존재로 로봇이 묘사된다. 이후 1927년 최초의 SF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는 기계로 만든 사람 형태의 로봇 ‘마리아’가 등장한다. 1928년에는 ‘에릭’이라는 이름의 로봇이 대중들 앞에 선보이기도 했다.

 

체코의 극작가, 차페크가 처음 선보인 로봇. 인간 형태의 기계로 '골렘'의 현대판이라 할만하다.

 

인조인간이라는 개념은 수천 년 전부터 여러 나라의 신화 속에 담겨 있었다. 힘든 노동을 시키기 위해서 신이 인간을 로봇처럼 만들어냈다는 내용이 있다. 이후 그리스 신화에서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청동으로 탈로스(Talos)라는 로봇을 만들었다. 유태인 전통에서는 진흙 로봇 골렘(Golem)이 동네를 다니며 궂은 일을 대신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고대 중국의 주나라에는 사람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기계인형이 있었다 한다.

 

이처럼 로봇에 대한 이야기는 지구촌 곳곳에서 발견된다. 사람처럼 생기고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인간은 자신과 닮은 존재를 좋아하는 소통의 본능이 있다. 인형이든 사람이든 자신과 비슷한 점이 느껴지면 괜스레 애착이 가게 된다. 천으로 만들어 힘없이 쳐져 있는 봉제인형과 다르게 로봇은 팔다리를 움직이고 말까지 하기 때문에 더욱 친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로봇의 생김새에 따라, 행동에 따라 친숙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휴먼 드라마나 코미디의 로봇들은 인간을 닮기보다 누가 보아도 기계임을 알아볼 수 있지만 장난감과 비슷한 느낌으로 등장한다. 노인과 로봇간의 '우정'을 그린 로봇 앤 프랭크. ⓒPark Pictures

 

이 때문에 대부분의 SF 영화에는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로봇들이 등장한다. 사람을 닮은 로봇도 여러 종류로 나뉜다. 인간과 유사한 형태를 가진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은 안드로이드(android), 생물체와 기계를 결합시킨 사이보그(cyborg) 등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시리즈와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에 나오는 로봇이 휴머노이드 계열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에이아이’에 등장하는 인간과 똑같은 로봇은 안드로이드라 부른다. 영화 ‘로보캅’은 사람의 머리에 로봇의 몸을 부착시킨 사이보그가 주인공이다. ‘스타워즈’의 악역 다스베이더도 사람이 기계에 의존해 살아가는 사이보그다.

 

요즘에는 사람의 몸 바깥에 갑옷처럼 부착되는 외골격 형태의 로봇도 등장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처럼 사람이 내부로 들어가 조종하고 움직이는 기관총 로봇은 엑소스켈레톤(exoskeleton)이라 한다. 가슴과 손에서 고충전 에너지가 발사되는 ‘아이언맨’ 시리즈 속 로봇은 옷처럼 입기 때문에 파워드 슈트(powored-suit)라 불린다.

 

그러나 인간과 닮았다고 해서 무조건 호감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너무 비슷해지면 오히려 경쟁 상대로 오인되기도 한다. SF소설의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을 보자.  주인공 로봇 앤드류는 인간을 사랑해 인간을 닮고자 노력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지나치게 닮은 것이 오히려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로봇공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라 부른다. 우리 말로 하면 ‘섬뜩한 계곡’이라는 뜻이다. 사람과 닮을수록 호감도가 점점 높아지다가 정말 비슷해지면 갑자기 소름이 끼치며 호감이 뚝 떨어진다. 그러나 실제 인간과 구별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정교해지면 호감도가 다시 높아져 계곡 모양의 그래프가 된다.

 

언캐니 밸리 현상은 긴장을 유발하는 영화에서 자주 사용한다. 영화 ‘터미네이터’에는 사람처럼 생긴 적군 로봇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을 집요하게 쫓아오는 과정에서 팔이 잘리고 몸이 조각나면서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공포감을 느낄 만하다.

 

그렇다면 로봇에 대한 호감을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첫째로, 겉모습은 기계이지만 행동이나 반응이 사람과 비슷하면 공포감이 줄어든다. 애니메이션 ‘월-E’에 등장하는 로봇은 누가 봐도 기계이지만 하는 짓을 살펴보면 어린아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람과 크게 닮지 않았기 때문에 언캐니 밸리 현상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영화 ‘트랜스포머’에 등장하는 거대 로봇들은 자동차, 비행기 등 각종 기계로 변신하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싸움을 할 때는 사람과 행동이 비슷하다. 할아버지, 아저씨, 남동생 같은 느낌이다.

 

 

영화, '로보캅'의 주인공인 로보캅은 질서와 약자를 수호하는 경찰관이지만 사람들에게서 배척받는 일이 많다. 인간의 의지와 관계 없이 독립적인 존재,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없는 존재기 때문이다. ⓒOrion Pictures Corporation

 

둘째로, 덩치가 크고 힘이 세지만 사람이 조종을 하면 호감이 높아진다. 1976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로보트 태권 V’부터 시작해서 최근 개봉한 영화 ‘퍼시픽 림’까지 영화나 만화영화 속 대부분의 로봇이 이런 식이다. 사람이 탑승하지 않으면 스스로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않으며, 원격조종은 가능하지만 스스로 말을 하거나 감정을 내보이지 않는다. 휴 잭맨이 주연을 맡은 영화 ‘리얼 스틸’에서는 사람의 조종에 따라 링 위에서 움직이는 권투 로봇이 등장한다.

 

셋째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해도 애완동물처럼 온순하거나 친구처럼 교감을 하면 애착이 간다. 영화 ‘로봇 앤 프랭크’에는 무뚝뚝한 노인 프랭크의 수발을 드는 의료보조용 로봇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던 프랭크도 고문고문하고 똑똑한 로봇의 도움을 받으면서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마지막에는 주인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메모리를 지우겠다는 로봇의 제안에 프랭크는 마치 오랜 친구를 잃는 듯 슬퍼하기도 한다.

 

인간과 닮았지만 인간은 아닌, 때로는 실제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로봇은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기계적인 발전도 좋지만 인간과 로봇이 호감을 유지하며 친숙하게 지낼 방법도 고민해야 할 때다.

 

 

임동욱 사이언스타임즈 기자

The Scienc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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