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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문화의 만남] 사람과 닮을수록 더 무서운 ‘언캐니 밸리’

작성일 2013-09-14

남한 면적의 3분의1도 되지 않는 유럽의 작은 나라 벨기에는 만화의 천국이다. 수도 브뤼셀에는 골목마다 만화 가게가 늘어서 있고 ‘벨기에 만화 센터’나 지역의 도서관을 찾아가면 누구나 마음껏 만화책을 골라 읽을 수 있다. 도시 곳곳에는 만화 캐릭터들이 벽면과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

 

이처럼 벨기에가 만화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페요(Peyo)와 에르제(Herg?)라는 두 만화가 덕분이다. 페요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파란 요정 ‘스머프’의 작가다. 1958년 처음으로 잡지에 연재를 시작했으며 1981년에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로도 탄생해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파파 스머프, 똘똘이 스머프, 가가멜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에르제는 벨기에의 국민 캐릭터 ‘틴틴’을 만들었다. 1929년 연재를 시작해 이듬해 첫 단행본이 출시됐으니 스머프보다 30살은 더 나이가 들었다. 소년 탐정 틴틴이 강아지 밀루와 함께 박진감 넘치는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만화책으로 출발해 애니메이션, 영화, 연극, 라디오드라마, 게임 등 갖가지 장르로 재탄생했다.

 

스머프와 틴틴의 공통점은 또 있다. 만화책만 해도 수십 년 동안 수억 권이 팔려나갔고 지난 2011년에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발전 덕분에 ‘3D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흥행수익은 큰 차이가 난다. 스머프는 1억1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5억 6천만 달러를 벌어들인 반면, 틴틴은 1억3천만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수익은 3억 7천만 달러에 그쳤다. 특히나 틴틴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았음에도 북미 대륙에서 2천만 달러밖에 벌어들이지 못해 “망신을 당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세계적 인기를 얻은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했지만, 틴틴은 흥행에 실패했다. 그 이유를 언캐니 밸리 때문이라고 분석한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Columbia Pictures

 

둘 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만화 캐릭터인데 왜 3D 애니메이션에서는 차이가 발생했을까. 여러 가지 원인 중에서도 ‘언캐니 밸리 현상’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는 우리말로 하면 ‘으스스한 골짜기’라는 뜻이다. 괴상하고 기이해서 반감이나 혐오감이 생길 때 우리는 ‘으스스하다’는 말을 쓴다. 마찬가지로 3D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인물을 보고 으스스한 기분이 드는 현상을 가리켜 ‘언캐니 밸리’라 한다.

 

‘골짜기’라는 말은 왜 들어갔을까. 일본의 로봇공학자 마사히로 모리가 1970년에 발표한 이론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주변 사물이나 동물을 볼 때 인간의 형태에 빗대어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보고 “눈매가 날카롭다”고 한다거나 강아지가 앞발을 내밀게 훈련하면서 “손을 내밀어라”고 하는 식이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모습이나 행동과 비슷할수록 호감이 커진다. 뱀이나 거미처럼 생긴 로봇은 혐오감이 들고 괜히 무섭게 느껴진다.

 

그럼 로봇이 사람과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인기와 호감도 높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탄생한 것이 사람처럼 옷을 입고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형 로봇이다. 관람객을 향해 손을 흔들고 두 발로 걷기도 하며 얼굴 표정도 다양하게 변한다. 그러나 로봇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났다.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심하게는 좀비처럼 느껴진다는 사람도 있다.

 

3D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실제 사람을 촬영한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3D 캐릭터를 정교하게 만든다 해도 조금만 부자연스러우면 갑자기 거부감이 들게 된다. 인형이나 요정처럼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를 3D로 나타내면 약간 어색하고 낯설어도 관객들은 큰 반감 없이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머프와 틴틴의 흥행이 서로 다른 길을 간 것도 마찬가지다. 스머프는 사람이 아니니 약간 어설프고 비율이 과장된 3D 캐릭터로 등장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틴틴은 사람이기 때문에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 좋지 못한 평가를 받게 된다. 감정을 나타내는 얼굴의 표정이 실제와 조금만 달라도 관객들은 어색함을 느낀다.

 

2005년 개봉한 3D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실제 배우의 동작과 표정까지 따내는 ‘모션 캡처’ 시스템 덕분에 기존의 애니메이션을 뛰어넘는 그래픽을 선보였다. 수염이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생생하게 묘사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벌였다. 그러나 평가는 가혹했다. 시체가 걸어 다니는 것 같다거나 가면을 쓴 것 같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로봇이나 3D 애니메이션은 완벽할 정도로 사람과 비슷하게 만들어야만 호평을 받을 수 있다.

 

수평선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인간과 닮은 정도가 높아지고, 수직선의 위로 갈수록 호감도가 높아진다. 사람들은 로봇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혐오감을 느끼는 데, 인간과 호감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오른쪽 위로 점점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급격히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며 깊은 골짜기 모양을 그린다. 이것을 언캐니 밸리라고 한다.

 

이 현상을 그래프로 그려보자. 우선 수평선과 수직선을 긋는다. 수평선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인간과 닮은 정도가 높아지고, 수직선의 위로 갈수록 호감도가 높아진다. 인간과 닮은 구석이 없는 로봇은 호감을 얻기도 어렵다. 인간의 모습이나 행동과 비슷해질수록 관심을 끌고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로봇이 인간과 아주 비슷해지는 순간 으스스한 느낌이 들며 호감이 뚝 떨어진다. 인간의 표정, 모습, 행동을 완벽한 수준으로 따라해야만 호감이 다시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호감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오른쪽 위로 점점 올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급격히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며 깊은 골짜기 모양을 그리는 것이다. 이것이 ‘으스스한 골짜기’ 즉 ‘언캐니 밸리’다.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도 ‘틴틴의 모험’도 언캐니 밸리를 극복하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다.

 

공포의 골짜기를 뛰어넘은 애니메이션도 있다. 2009년 만들어진 영화 ‘아바타’가 주인공이다. 모션 캡처 기법을 사용했고 실제 사람과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동시에 등장하지만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영화 속 나비족은 인간이 아닌 외계종족이기 때문에 피부 질감이나 동작이 낯설어도 거부감이 들지 않은 것이 이유다.

 

이렇게 보면 사람을 표현한 3D 애니메이션이나 로봇 중에서 ‘언캐니 밸리’를 극복한 사례는 아직 없는 셈이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으로 현실 같은 가짜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등장하지만 아직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의 눈을 속이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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