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뒷이야기 ③] 한 번도 받기 힘든 상을 두 번씩이나 …

여성 과학자들의 롤 모델로 존경받는 퀴리 부인은 노벨상과 관련해 ‘첫 여성 수상자’ ‘최초 2회 수상자’ 등 다양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퀴리 부인의 가족도 과학자로 명성을 떨쳤다. 퀴리 부인과 남편, 딸, 사위 등 4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이처럼 노벨상을 한 번도 아니고 2번이나 수상한 과학자들이 있다. 마리퀴리, 라이너스 폴링, 존바딘, 프레데릭 상가가 그들이다.
1867년 뱌르샤뱌에서 태어난 마리 퀴리(Maria S. Curie, 1867년 11월 7일 ~1934년 7월 4일)는 우리에게 ‘퀴리 부인(Madame Curie)’으로 더 익숙하다. 프랑스의 소르본느 대학을 졸업. 남편 피에르·퀴리와 함께 라듐과 폴로늄(Polonium)을 정제, 발견했다. 그녀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에 이어 1911년 노벨 화학상을 거머쥐었다.
마리 퀴리
퀴리 부인의 첫 번째 노벨상은 1903년 남편인 피에르 퀴리,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과 함께 방사능을 발견한 공로로 받은 물리학상이다.
퀴리 부인이 이 상을 받음으로써 ‘최초의 여성 수상자’라는 영예와 함께 부부가 노벨상을 받은 첫 사례로 기록됐다. 1911년 퀴리 부인은 두 번째 노벨상을 받았다. 그는 다양한 광물의 방사능을 측정하다가 우라늄보다 방사능이 훨씬 강력한 시료를 발견했다.
1898년 논문에서 그는 새로운 원소 두 가지가 있다고 추정하고 각각 ‘폴로늄’과 ‘라듐’이라고 명명했다. 그 뒤 라듐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퀴리 부인은 우라늄 찌꺼기 수 t에서 라듐염 0.1g을 추출했다. 1902년 퀴리 부인은 마침내 라듐의 원자량이 ‘225’라고 발표했는데 이 공로로 1911년 12월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 상으로 퀴리 부인은 분야가 다른 과학 부문에서 수상한 유일한 과학자로 기록됐다.
퀴리 부인은 최초의 모녀 수상이라는 진기록도 갖고 있다. 1934년 1월 퀴리 부인의 첫째 딸과 사위인 졸리오퀴리 부부는 폴로늄에서 나오는 강력한 알파입자(헬륨의 원자핵)를 알루미늄에 충돌시켜 알루미늄을 방사성 인으로 바꾸는 데 성공해 이듬해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미국의 양자(量子)화학자, 생화학자인 라이너스 폴링(Linus Carl Pauling, 1901, 2, 28,~1994, 8, 19)은 20 세기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화학자로 칭송받고 있다.
라이너스 폴링
화학 결합의 본성을 기술한 실적에 의해 1954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으며 이어, 결정 구조 결정이나 단백질 구조 결정에 중요한 실적을 남겨, 분자생물학의 거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54년 노벨화학상에 이어 196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08년 미국에서 태어난 존 바딘(John Bardeen, 1908년 5월 23일-1991년 1월 30일)은 노벨 물리학상을 2번이나 수상했다. 노벨 물리학상을 2번 수상한 것은 현재 ‘존 바딘’뿐이다.
그는 1923년에 위스콘신 대학에 입학해 1928년 전기 공학과를 졸업한 후, 프린스턴 대학 등에서 수학, 물리학을 연구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 해군 병기 연구소(Naval Ordnance Laboratory)에 4년간 근무한 바 있다.
1945년 10월부터 벨(Bell)연구소에 들어가, 1948년 손크레이 등과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개발에 성공했다. 1956년 그 공로로 첫 번째 노벨상을 수상했다. 1957년 레옹·쿠퍼등과 초전도의 표준 이론인 ‘BCS이론’을 도출했다. 이 공로로 그는 1972년 생애 두 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마지막으로 영국에서 태어난 프리데릭 생어(Frederick Sanger, 1918년 8월 13일 )다. 영국출신의 생화학자로서 캠브리지 대학졸업했다.
프리데릭 생어
그는 펩티드의 말단 아미노기에 ‘디-니트로페닐기’를 결합시키면 노랗게 착색하는 것을 이용해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을 결정하는 방법을 확립했다.
이 방법을 이용해 인슐린의 일차 구조의 결정에 처음으로 성공해, 단백질이 아미노산의 연결한 것인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 이 공로로 그는 1958년의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1980년에는 ‘Di-deoxy-nucleotide’ 을 이용한 DNA의 염기 배열의 결정법을 발명해 두 번째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노벨 화학상을 2번 수상한 것 역시 생어뿐이다. 또한 그는 RNA의 배열 결정법도 개발해 사상최초로 노벨상 3회 수상 후보자가 되기도 했다.
윤수영 사이언스올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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