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달 특별 칼럼] “입자물리학과 가속기. 수렵에서 채집으로 (하)”

박인규 교수|서울시립대 물리학과
전자총은 그 모양으로 이야기하면 선형 가속기에 해당된다. 전자총을 사용하여 큰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하려면 높은 전위차가 필요할 뿐 아니라 전자총 자체도 매우 길게 설계되어야 한다. 에너지가 높아질수록 입자들은 더욱 빨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총이나 반데그라프로 입자를 고에너지로 가속하는 데는 한계가 따른다. 반면 사이클로트론은 자기장을 통해 입자를 원운동 시킴으로써 전자총이 할 수 없었던 긴 거리의 입자운동을 가능케 한다. 사이클로트론 내의 입자는 에너지를 얻어가면서 점점 빨라지지만 거기에 맞추어 더 큰 원운동을 하게 되므로 사이클로트론만 크게 만들 수 있다면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겠다. (그림1 참조) 사이클로트론으로 얻을 수 있는 입자의 에너지는 궤도 반지름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크기를 2배 늘리면 에너지는 4배로 늘릴 수 있다. 10배 큰 가속기를 만들면 100배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이 말은 사실이 아니다. 사이클로트론은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입자의 에너지를 마음껏 올리는 데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는 바로 사이클로트론 복사라 불리는 현상이다.

<그림1> 사이클로트론의 장점
모든 하전입자는 가속운동을 하면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면 크룩스관 내에서 고속으로 달리던 음극선 전자가 금속에 부딪히면서 발생하는 X선은 알고 보면 전자의 급격한 감속에 의해 발생하는 전자기파인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발생하는 전자기파를 특별히 “제동복사”라 부른다. 원운동은 가속운동의 일종이므로, 사이클로트론 안에서 원운동을 하는 하전입자는 당연히 제동복사와 같이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즉 하전입자가 회전운동을 하게 되면 전자기파를 내고 그만큼 계속해서 에너지를 잃게 된다는 말이 된다. 이는 마치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커브를 틀 때 끼릭릭하는 소음을 내는 현상과 비슷하다. 회전운동을 하기 위해 자동차 타이어가 지면과의 마찰을 이용해 방향을 틀고 그때 일부의 에너지가 소리에너지로 변화되어 듣기 싫은 소리를 내는 것이다. 당연히 자동차는 회전할 때가 직선운동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그림2 참조) 이와 유사하게 원형 가속기에서도 사이클로트론 복사로 잃어버리는 에너지를 고려하면 입자를 가속하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로 하게 된다.
제동복사는 가벼운 입자일수록 더 크게 나온다. 그것도 질량에 4제곱에 반비례한다. 예를 들면 전자는 양성자보다 2000배나 가벼우므로, 전자가 제동복사로 잃는 에너지는 양성자의 2000배의 4제곱으로 16조배나 더 크다. 한마디로 전자를 사이클로트론으로 가속시키기에는 제동복사에 의한 에너지 손실이 너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사이클로트론이 주로 양성자나 중이온의 가속에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림2> 제동복사의 원리
사이클로트론 복사에 의한 에너지 손실을 없애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작은 선형가속기를 직선으로 길게 연결해 쓰는 것이다. 1962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프로젝트 M을 추진한다. 프로젝트 M은 괴물프로젝트 (Project Monster)라 종종 불렸는데, 바로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보자는 거대한 가속기 건설 사업이었던 것이다. 빛의 속도로 가속한 전자를 원자핵에 충돌시켜 원자핵, 더 엄밀하게는 양성자를 부셔보고자 했던 것이다. 당연히 전자의 가속을 위해서 선형가속기가 설계되었고 그 길이가 3.2km에 달해 아직까지도 인간이 만든 최대 길이의 직선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림3 참조) 물론 몽블랑 터널 등 10km가 넘는 많은 터널들이 있지만 터널들은 구조상 직선이 아니기 때문에 이 주장은 유효하다고 하겠다.

<그림3> 스탠포드 선형가속기 연구소 (SLAC)의 항공사진. 직선 3.2km에 달하는 선형가속기가 설치되어 있다.
실험은 대 성공이었다. 고에너지 전자는 무난히 양성자를 파괴할 만큼 충분한 운동량을 가질 수 있었고, 이로부터 양성자가 내부구조가 없는 기본입자가 아니라 또다시 무언가로 구성된 복합입자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양성자를 구성하고 있는 입자를 당시 과학자들은 파톤(부분자)라 불렀고, 이는 곧 겔만이 주장하던 쿼크이론 (양성자가 3개의 쿼크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값진 실험결과가 되었다. 이 실험결과로 제롬 프리드만, 헨리 켄달, 리챠드 테일러 세 사람이 노벨상을 수상한다. 양성자의 구조를 알아낸 이후로도 SLAC은 J/Ψ 중간자, 타우 경입자를 발견하여 두 개의 노벨상을 더 추가한다. 가속기 연구소가 노벨상 제조기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선형가속기의 단점은 입자를 한 번에 가속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단 최고에너지로 가속된 입자는 추가로 더 가속시킬 방법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가로 다른 선형 가속기를 덧붙여 사용해야 하는데, 이 또한 건설비용 면에서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작은 선형가속기를 조금씩 방향을 꺾어 여러 개를 연달아 붙여 순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어떨까? 이것은 정말로 좋은 아이디어임에 틀림없다. 물론 빔의 방향을 조금씩 꺾을 때 마다, 제동복사에 의한 에너지 손실은 있겠지만, 어쨌든 한 바퀴 돌고 온 빔을 다시 재 가속 할 수 있다면 잘 만 조절하면 빔을 계속해서 돌릴 수도 있고 또 가속시킬 수도 있다. 이런 원리를 구현한 것이 바로 싱크로트론이다. (그림4 참조) 빔의 방향을 꺾기 위해 사용되는 쌍극자석과 선형가속기만 많이 설치하면 원하는 만큼 큰 가속기를 만들 수 있어 매우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림4> 싱크로트론의 개요
이렇게 만들어진 싱크로트론 가속기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 CERN에 설치된 거대강입자가속기(Large Hadron Collider) LHC이다. LHC는 그 크기가 엄청나 가속기의 둘레만도 27km에 달한다. 그야말로 인간이 만든 최대 크기의 구조물이고, 당분간 그 기록이 깨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LHC는 또 현대의 7대 경이(Seven Wonders)에 선정되기도 했는데, 이는 LHC와 같은 복잡한 기계가 작동되는 것 자체가 신비스러운 일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LHC역시 매우 큰 발견을 가져다주었다. 물리학자들은 LHC를 활용하여 양성자와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이들을 서로 충돌시키는 실험을 2010년부터 시작하였다. 이 LHC실험이 수행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물리학자들은 그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아 왔던 힉스입자를 마침내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13년 힉스입자의 발견으로 영국의 피터 힉스와 벨기에의 프랑스와 앙글레르 박사가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CERN은 이전에도 W입자와 Z입자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만들어 내고, 이후 인류의 문명을 통째로 바꾼 월드와이드왭(WWW)을 발명해 내는 등 현대문명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림5> LHC가속기의 모습. 총 길이가 27km에 달한다.
물리학자들은 왜 더 큰 가속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더 큰 가속기는 더 큰 에너지를 만들 수 있고, 더 큰 에너지는 E=mc2의 공식에서 알 수 있듯이 더 큰 질량을 가진 입자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힉스입자와 같이 무거운 입자(양성자 질량의 130배에 달한다.)를 만들어 내기 위해 LHC와 같이 거대한 가속기를 건설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입자물리학은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선(cosmic ray)을 연구하면서 급격히 발달하였다. 뮤온입자의 발견, 중간자의 발견 등이 모두 우주선 검출실험을 통해 이루어졌다. 여전히 인간이 만든 가속기보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우주선이 훨씬 더 에너지가 크다. 아마도 인간이 아무리 큰 가속기를 건설하여도 우주선의 에너지를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속기는 원하는 에너지로 입자를 가속할 수 있고, 원하는 위치에 입자를 충돌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과거 입자물리학자들이 검출기를 기구에 실어 하늘로 띄워 보내 언제 나타날지 모를 희귀한 우주선 입자를 채집하는 수렵 생활을 하였다면, 이제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은 가속기로 직접 입자들을 충돌시켜 미지의 입자들을 생산해내는 농경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울 따름이다.
- 다음
- [과학의 달 특별 칼럼] 지도의 재발견_카토그램 2015.04.26
- 이전
- [과학의 달 특별 칼럼] 과학으로 인터스텔라 다시보기, 흙 속에 우주가 있다. 201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