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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달 특별 칼럼] 과학으로 인터스텔라 다시보기, 흙에서 비롯된 문명의 위기

작성일 2015-04-15

이준호 교사|인천부현동초등학교

 

먼지폭풍이 불어 닥쳐 한치 앞이 안보이고 수건으로 창틈을 막아도 집안에는 온통 먼지투성이이며 사람들은 먼지로 인한 폐질환으로 콜록 거린다. 영화 인터스텔라 속 미래 지구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장면은 영화적 상상력으로 꾸며낸 일이 아니라 과거 미국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을 모티브로 만들어 진 것이다.

1800년대 후반 미국 오클라호마, 캔자스등 중부지방에 도착한 미국 이주민들은 광활한 푸른 대지에 매료된다. 그들에게는 그 넓은 땅이 풍요를 낳는 농토로 보였던 것이다. 개간이 시작됐고 엄청난 넓이의 초원이 농토로 바뀌었다. 농사는 잘 되었고 이주민들은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 그곳은 건조한 지역이라 농사짓기엔 적합하지 않은 곳이었다. 캐나다쪽에서 불어오는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기후를 건조하게 만들기도 하고 이 바람이 미국남부의 따뜻한 공기와 부딪히면서 강력한 폭풍과 초대형 토네이도를 일이키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악조건 때문에 원래는 기껏해야 소를 방목할 수 있을 정도의 초원이었지만 이주민들이 정착할 때쯤 기후가 약간 변하면서 비가 이례적으로 많이 왔었다. 그래서 이주민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후는 몇십년 뒤 원래대로 되돌아갔고 가뭄이 계속되면서 1933년 11월 본격적인 재앙이 시작된다. 강력한 먼지폭풍이 일어나면서 대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웠고 흙먼지는 집안으로 집요하게 스며들었다. 먼지는 기관지로 들어가 어린이와 노인들은 호흡곤란에 시달렸다. 오클라호마, 뉴멕시코, 콜로라도, 캔자스 등 미국 중남부 지역은 이른바 '흙먼지 구덩이(Dust Bowl)'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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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텍사스 스트랫포드에서 찍은 먼지폭풍의 모습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표토가 사라진 것이었다. 표토는 흙 중에서 표면을 덮고 있는 흙으로 미생물과 유기물질 같은 영양분이 많아서 식물의 성장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색깔은 검정색이어서 표토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심토와 구분이 된다. 표토의 깊이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개 10cm 정도 되는데 우리가 기름진 땅, 비옥한 땅이라고 부르는 곳은 표토가 두껍고 검정색이 진한 곳이다. 유명한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 흑토지대는 표토가 거의 1m 가량이나 되며 너무 비옥해서 화학비료가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러나 10cm가 안되는 곳도 많고 5cm도 안되는 얇은 곳도 있다. 그래서 표토두께는 평균 11cm로 알려져 있으며 인류의 농업은 이 한뼘도 안되는 얇은 표토층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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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A 부분이 표토

그런데 농사를 짓기 위해 개간을 하면 표토를 보호하는 숲이 사라져 맨땅이 노출되고 거기다 가뭄까지 들면 흙이 건조해져서 바람에 잘 날리게 된다. 그 상태에서 강력한 폭풍이 계속되면 얇은 표토층이 바람에 벗겨져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중국에 가뭄이 심하면 바람에 막대한 양의 흙이 바람에 날려 황사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이런 일이 미국 중남부에서 일어났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경작지는 텅 비어 있었고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은 농토를 할퀴고 지나가면서 표토를 날려버렸다. 4000만ha에 해당하는 비옥한 경작지가 바람에 날아갔다. 심각한 토양침식이 일어나면서 중남부를 개척한 이주민들의 꿈은 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30년대는 안그래도 힘든 시기였다. 바로 1929년에 터진 대공황 때문이다. 농산물 가격은 폭락하고 농민들 대출을 받아 근근이 연명하는 처지였는데 가뭄과 모래폭풍까지 덥친 것이었다. 가뭄은 물을 끌어와 버틸 수도 있었겠지만 흙이 사라져버린 상황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농민들은 대출을 갚지 못했고 은행에 땅을 뺏기게 됐다. 떠돌이 신세가 된 농민들은 그나마 일거리가 있다고 알려진 미국 서부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서부로 간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1940년까지 미중부에서 서부로 떠난 인구수가 약 250만명 정도라고 한다. 이것은 미국 역사상 단기간동안 가장 많은 인구가 대이동을 한 사건이다. 많은 떠돌이 농민들이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경쟁했고 극심한 저임금과 노동착취에 시달리며 고달픈 삶을 살았다. 이렇게 계속되는 먼지폭풍으로 미국 중부가 쑥대밭이 됐던 1930년대를 더러운 30년대, Dirty Thirties 라고 부른다. 미국 역사에 있어 아주 비극적인 시대였고 인터스텔라 감독도 아마도 이 일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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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떠돌이 농민들의 모습

그런데 이런 토양침식 문제는 1930년대 미국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재진행형이고 세계적인 문제다. 현재 미국에서는 1년 동안 1ha 의 경지에서 약 30톤의 토양이 유실되고 있다. 1ha는 학교 운동장만한 넓이이며 결코 넓지 않다. 그럼에도 30톤에 달하는 토양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도 비슷한 양의 토양이 침식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집중 호우가 내리는 특성과 경사지가 많아 토양 침식이 심각하다. 전국적으로 연간 4억 3천여 톤이 유실되며, 토양 침식을 받는 면적은 국토의 45%에 이른다.

이런 문제는 농경을 하면서 숲을 없애고 땅을 노출시킨 대가라고 볼 수 있다. 숲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상태에서 그대로 빗물이 땅을 강타하게 됐고 밭의 이랑 같은 경우 물이 모여 흐르기 때문에 침식이 더 잘 일어나게 된다. 또한 도시화 역시 토양침식을 가속화시키기도 한다. 도시건설을 위한 토목 사업은 토양은 그대로 노출시키고 공사시의 진동으로 인하여 토양 구조가 약화되기 때문에 집중 호우 때에는 대량으로 토양침식이 일어나게 된다. 단 1년 동안의 토목 공사에 일어나는 토양 유실량이 수십 년간의 농경 활동으로 유실되는 양보다 많은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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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흙이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지만 다시 생기는 데는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린다. 겨우 1mm의 표토가 생기는데 1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표토는 단순한 흙이 아니라 미생물과 유기물이 만들어낸 하나의 복잡한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표토 흙 한줌에 미생물 60억 마리가 사는데 미생물 입장에서는 흙 한줌이 또 하나의 지구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거대한 세계를 인간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손쉽게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는 미생물만 입는 것이 아니다.

현대문명사회는 표토를 보호하지 않고 비료의 힘에 의존해 농업생산량을 크게 늘려왔다. 1950년대부터 농업 생산은 매년 연평균 3% 내외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이후부터 농업생산 증가율이 1%를 밑돌고 있다. 이는 농경지의 증가율이 줄어들고, 새로 늘어난 농경지도 토양 침식 등 환경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토양 침식이 농업 생산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 2.5 cm 두께 정도의 표토가 유실되면 농업 생산량이 1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으로 경작지의 1/3정도가 토양 침식으로 생산력이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토양파괴는 침식의 문제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바로 토양에 염분이 축적되어 토양이 파괴되는 염화현상이다. 염화현상은 비가 잘 내리지 않는 건조한 지방에서 농경을 할 때 주로 생긴다. 사실 건조한 지방의 경우 모자라는 물을 끌어와 관개를 통해 해결할 수 있고 폭풍이 자주 불지 않는다면 침식 걱정은 크게 할 필요가 없다. 얼핏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실제 인류 최초의 문명이 탄생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이런 식으로 농경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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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황무지지만 예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매우 비옥한 땅이었다. 건조한 초원지대라 침식이 적었고 풀과 같은 유기물이 계속해서 그대로 쌓이고 썩으면서 비옥한 표토가 형성됐다. 그래서 수메르인들은 이곳에 정착했고 농경을 시작하면서 인류최초의 문명인 수메르 문명이 탄생했다. 그러나 농사를 짓기 위해 강물을 끌어들인 것이 문제였다.

강물에는 아주 미량의 염분이 포함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소금, 즉 염화나트륨은 염소와 나트륨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화합물인데 염소와 나트륨의 기원은 암석이다. 암석에 포함된 염소와 나트륨이 물에 녹아 바다로 흘러들어 축적되어서 짠 바닷물이 된 것이다. 그래서 육지를 흐르는 강물에도 미량의 염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강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지으면 염분이 점점 땅에 축적된다.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은 소금기가 씻겨 내려가지만 메소포타미아 같은 건조한 지방은 증발량이 많아 축적될 수밖에 없다. 결국 나중엔 식물이 자라지 못할 정도로 토양염화가 진행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다.

실제 수메르문명의 기록을 보면 처음엔 밀농사가 잘 되다가 점점 수확량이 줄어들게 되고 나중엔 염분에 강한 보리로 품종을 바꾸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리도 자라지 못할 정도로 염화가 진행되면서 수메르 문명은 멸망하게 된다. 지금처럼 황무지가 된데에는 농경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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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의 황무지

오늘날 전 세계 농업수확량의 36%는 관개 시설에 의존해 거둔 것이다. 물을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는 지역은 염분 축적 문제가 덜하지만 인구증가와 온난화로 물이 부족해지면서 농토에 공급하는 물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 광범위한 농토에서 염화현상으로 생산량이 줄고 아예 농사를 포기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나친 관개농업으로 유입되는 물이 줄어들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아랄해 근처 지역이 그 예 중 하나다. 누쿠스라는 곳에서는 흙 위를 하얀 염분 층이 뒤덮고 있다. 이곳은 목화를 재배하는 곳인데 염분 때문에 생산량이 줄어들고 목화도 죽어간다. 물부족으로 관개농업을 할 물이 줄어들면서 노출된 토양이 건조화되고 이로인해 지하수가 지표로 올라와 증발하면서 염분이 축적된 것이다.

인도는 1943년 벵골 대기근으로 약 400백만 명 에 달하는 사람들이 굶어죽는 참사를 겪었다. 이후 인도정부는 미국인 식물 육종가 노만 볼로그가 개량한 다수확 품종 밀을 도입해 성공을 거두었다. 새로 심은 밀은 충분한 물과 비료만 공급하면 무려 세 배의 달하는 수확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혁신을 녹색혁명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금 인도는 그 후유증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규모 경작을 위해 실시한 관개농업 때문에 염화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비옥했던 땅이 황폐해지는 일이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다. 또한 인도 옆 나라인 파키스탄 역시 몇 세기에 걸쳐 인더스 계곡의 물을 과도하게 관개함으로써 극심한 염화 문제를 일으켰다. 그 결과 인더스 계곡은 세계에서 곡물 생산량이 가장 낮은 지역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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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로라도의 염화된 토양

프랑스에서 리비아에 이르는 지중해 해안에서도 심각한 염화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지역은 과도하게 지하수를 사용하면서 지하수가 고갈되었고 이로 인해 염화현상이 발생했다. 바다의 짠물은 토양을 뚫고 내륙으로 침투하는데 이는 담수로 이루어진 지하수층을 만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지하수가 고갈되면 짠물이 더 깊이 침투하면서 토양 염화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토양염화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곡물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지게 만들고 있다. 유엔은 지난 수십년 동안 확대되어온 관개 계획들로 인해 현재는 모든 관개 토지의 1/4정도가 이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렇게 농경은 결국 토양을 파괴할 가능성이 높다. 강수량이 풍부한 지역은 토양침식 문제가 발생하고 강수량이 부족한 지역은 토양염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생각처럼 농업은 자연친화적인 산업이 아닌 것이다. 공업처럼 똑같이 환경을 파괴하며 토양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이용하는 산업이다. 유엔에 따르면 이미 침식과 염화, 산성화 등으로 토양자원의 33%가 황폐화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이런 속도로 토양이 계속 파괴될 경우 60년 후 지구상의 농작물을 기를 수 있는 토양을 모두 잃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식량생산의 근본인 토양은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는데 지금도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은 많고 인구는 급속히 늘고 있다. FAO(세계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인구 중 9억2500만명 이상이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직면해 있으며, 세계 인구는 2050년 91억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식량생산을 지금보다 약 60% 증가시킬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유엔은 올해를 ‘세계 토양의 해(International Year of Soils)로 제정했다. 토양 없이는 인류의 미래 역시 존재할 수 없는데도 우리는 토양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모두 무관심하다. 올해가 세계 토양의 해인 줄 아는 사람은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입소문과 공유가 필요한 이유다.

 
이준호 인천부현동초등학교 교사 프로필
이준호-사진 이준호 (인천부현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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