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핸릭 데이비드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2010-08-17
1885~1962 덴마크의 이론물리학자. 1903년 코펜하겐 대학에 입학하고 06년에는 덴마크 학사원의 현상논문에 응모하여 금메달을 수상했다.
학위논문의 주제는 금속의 전기전도성 · 열전도성 등 여러 성질을 자유전자의 운동상태에서 포괄적으로 논하는《금속의 전자론 연구》였다.
그는 원자 내부의 운동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플랑크의 양자가설을 도입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다.
11년 학위를 취득하고 영국에 유학, 처음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J. J. 톰슨 밑에서, 이어 맨체스터대학의 E. 러더퍼드 연구실로 옮겨 방사선을 연구하는 실험 과정에 들어가 물질에 의한
선의 에너지손실을 계산하는 등 원자에 관한 많은 지식을 얻었다.
이듬해 귀국하여 코펜하겐 대학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원자구조의 이론적 고찰을 시작했다.
13년 수소 스펙트럼의 발머 공식 등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논문《원자 및 분자의 구조에 관해서》를 발표, 이른바 보어의 원자모형을 밝혀 물리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16년 코펜하겐 대학의 이론물리학 교수로 초빙되고 17년에는 코펜하겐 시당국과 재단의 원조를 받아 이론물리학연구소 건설에 착수, 21년에 개설했다.
이듬해 원자구조론을 기초로 원소의 주기율을 설명했다.
연구소는 국외에서 신진기예의 젊은 연구원들을 모아 자유롭고 활력이 넘치는 연구소가 되었다.
고전론과 양자론은 극한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형식상의 대응성이 있다는 보어의 대응원리(1918)를 지침으로 하여 원자 세계의 운동법칙을 기술하는 역학의 이론적 연구가 전개되어 22년 원자구조론의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25년 독일의 W.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역학을 발견했다.
그 무렵 취리히대학의 슈뢰딩거는 파동역학에 도달, 양자의 동등성을 수학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런데 하이젠베르크가 제시한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절대적 정밀도로서는 관측할 수 없다는〈불확정성의 원리〉와 관련하여 양자역학의 인식론적 문제가 부상했다.
그는 고전론적으로는 배반적인 파동성과 입자성의 이중성도 상보적인 것이며 시공(時空)의 기술과 인과율의 문제도〈상보성원리〉로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33년에는 로젠펠트와 공동으로 양자전자역학의 관측문제를 상보성원리로 분석했다.
이〈코펜하겐 해석〉에 관한 아인슈타인과의 논쟁은 유명하다.
36년 원자핵의 복합핵 모델을, 39년에는 J. A. 휠러와 공동으로 핵분열반응의 포괄적 이론을 발표했다.
한편 나치스에 의한 유태인의 박해에 대항하여 망명 지식인의 구원, 독가스 환자의 치료기구를 제작하는 한편 왕립과학원 원장을 지내는 등 평화와 과학발전에 힘썼다.
43년 신변의 위험을 느끼자 영국을 거쳐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진행 중인 원폭제조의 실정을 알고 장래의 원폭개발 경쟁의 파멸적 결과를 예견하여 이듬해 미국과 영국 양수뇌와 회견, 원자력의 국제관리안을 제언했다.
45년에 귀국하여 코펜하겐에 머물렀다.
전후 유엔에서 원자력관리안의 심의가 암초에 부딪히자《유엔에 대한 공개서한》(1950)을 발표하고 또 덴마크 원자력위원회위원장을 지내는 등 세계평화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의 실현에 진력했다.
또한 유럽 원자핵연구기관(CERN)과 북유럽 원자물리학연구소의 설립에 참가하는 등 과학의 국제협력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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