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데이

그 무렵, 1실링의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과학 이야기의 광고를 보고, 주인의 허락을 받고 자주 가서 과학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전기와 기계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되었다. 한번은 가게를 찾아온 손님이 패러데이가 과학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왕립 연구소에서 열리는 통속 강의의 입장권을 주었으므로, 그는 여기에 자주 가게 되었다. 여기서 데이비 (Humphry Davy, 1778∼1829)의 화학 강의를 들었다. 22세 때였다. 그 무렵 전에 있던 가게를 그만두고 다른 집에서 제책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전처럼 자유롭지 못하여 그만두고 다른 데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데이비 선생이 채용해주지나 않을까 해서 데이비 선생에게 편지를 쓴지 얼마 후 마침 데이비의 조수가 되었고, 1813 년 10월에 데이비와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 여행에서 여러 외국의 학문과 많은 학자들도 알게 되었다. ● 화학의 연구 유럽 여행에서 돌아온(1815년 4월)후에 조수 일을 보는 한편 자신의 연구도 하기 시작하여 1816년에 그의 연구가 최초로 발표되었다. 그것은 데이비로부터 주어진 문제로서, 이탈리아에서 가지고 돌아온 생석회의 분석에 관한 것이었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연구를 했는데, 그 가운데 주요한 것은 합근, 특히 특수강의 연구(1819∼1824년), 염소의 액화 (1822년), 벤젠의 발견(1825년) 등이다. 그리고 그 무렵 유리의 연구도 하여, 특수 유리를 만들기도 했다. 1825년, 왕립 연구소의 실험실 주임이 되었다. 이 연구소에서는 알기 쉬운 강의를 공개하고 있었으므로, 그도 그 무렵부터 이 강의를 하게 되었다. ● 전기 밑 자기의 연구 패러데이는 처음에는 주로 화학 분야의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차츰 전기 쪽으로 옮아갔다. 1820년에 덴마크의 외르스테드 (Hans Christian Oersted, 1777 ∼ 1851) 라는 학자가, 전기가 흐르고 있는 철사 가까이에서는 자침이 닿는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이 때부터 많은 학자들이 전기와 자기와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하게 되었으며, 프랑스의 학자 앙페르(Andre Marie Ampere, 1775 ∼ 1836)는 전기가 흐르고 있는 2개의 철사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패러데이도 전기와 자기의 관계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했으며 여러 가지로 연구도 했는데, 1831년에 마침내 전자 유도라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그 실험은 철선을 여러 겹으로 감은 고리에 2짝의 절연된 철사를 감고, 한 짝을 전류계에, 다른 한 짝을 전지에 연결한 다음 전지 와 연결하거나 전지에서 떼는 순간에 전류계의 바늘이 움직였다. 다시 말해서 직접 전지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쪽의 철사에 전류가 흐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유도전류이다. 그는 이 현상을 더 조사하여 유도전류는 자석을 사용해서도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실험은 코일을 전류계에 연결해 놓고, 막대자석을 코일 속으로 집어넣거나 빼면 전류계의 바늘이 움직여 유도전류가 흐른다는 것이다. 이 2가지의 실험은 비슷한 점도 있지만, 상당히 다른 점도 있다. 즉, 처음 실험에서는 한쪽 코일을 전지에 연결하거나 떼는 순간에 다른 코일에 유도전류가 흐르며, 코일을 전지에 연결한 채로 두면 전류는 흐르지 않는다. 나중의 실험에서는 코일 속으로 자석을 넣든지, 또는 속에서 뺄 때에 유도 전류가 흐른다. 즉, 이 경우는 자석을 움직이는 것으로 자석을 움직이지 않으면 전류는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두 경우가 모두 결과로서 유도전류가 흐른다는 것은 똑같다. 그래서 그는, 이것들은 똑같은 원리를 따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고심했다. 전류가 흐르고 있는 철사가 자석과 똑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은 이미 외르스테드와 앙페르의 연구로 밝혀져 있다. 코일의 양쪽 끝을 전지에 연결했다 떼었다 할 때에는, 전류가 갑자기 변화한다. 그렇다면, 전류가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는 것은, 자석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위의 2가지 실험은 똑같은 원리에 지배되는 2개의 현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즉, "자기장의 변화가 있으면 유도전류가 일어난다" 라고 할 수가 있다. 이것이 <전자유도의 법칙>이다. 이것은 매우 커다란 발견으로서, 전기에 관한 학문은 이로부터 한걸음으로 진보하게 되었다. 발전기도 변압기도 모두 이 원리의 응용인 것이다. 이어서 갖가지 전기를 비교해 보는 실험을 하였다. 갖가지 전기라는 것은, 전지에서 일어나는 전기, 전기뱀장어나 시끈가오리 따위 물고기가 일으키는 전기, 전자 유도의 전기, 물체를 가열할 때 일어나는 전기(열전기), 물체를 마찰할 때 일어나는 전기 등이다. 그리고 전기라 이름붙은 것은, 틀림없이 모두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이어서 그는 전기 분해의 이론을 연구하였다(1832∼1833년). 전기 분해는 이보다 이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패러데이는 전기 분해의 법칙 즉 <일정한 전기량에 의해서 분해되는 물질의 양은 그 물질의 당량에 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볼타의 전기 파일>, 전기 불꽃의 연구 등도 했는데, 건강이 약간 나빠졌기 때문에, 1841년에는 한동안 스위스로 가서 휴양하였다. 스위스에서 돌아오자 건강을 회복하여, 다시 연구에 몰두하였다. 패러데이는 여러 가지 현상 사이의 관련이라는 것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빛과 전기 혹은 자기의 관계도 그 가운데 한 문제였다. 패러데이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빛을 자화해 보자는 것이었다. <니콜의 프리즘>을 통한 빛은 그 진동 방향이 일정한데(이와 같은 빛을 편광이라 한다), 패러데이는 편광에 대한 자석의 영향을 조사해 보았다. 처음에는 여의치 않았으나, 전에 유리를 연구할 때 만든 중유리를 사용하여, 강한 전자석 가까이에 놓고 편광을 통과시키면, 자석 때문에 편광면이 회전된다는 것을 알았다. 빛의 진행 방향으로 자기장이 작용하고 있을 때, 반드시 이 작용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을 패러데이 효과라 부르고 있다. 후에 빛은 전자기의 물결이라는 설이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에 의해서 밝혀졌는데, 이 작용은 이 학설의 하나의 발판이 되는 것이었다. 패러데이 효과의 발견은 1844년의 일이었는데, 이에 이어서 반자성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먼저 실험에서 썼던 중유리에 대하여, 자기장의 작용이 직접적으로 미치지를 조사한 데서 비롯된다. 중유리 막대를 매달아 놓고, 여기에 자석의 양극을 가져가면, 유리는 일정한 위치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석이 유리에 대하여 전혀 작용을 하지 않는다면, 매달아 놓은 유리에 자기를 작용시켜도 변화는 없어야 할 것이지만, 사실은 유리가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물질에는 철처럼 자석에 끌려가는 것도 있고, 백금처럼 철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그 영향을 아주 근소하게 나타내는 것도 있다. 전자를 강자성체라 하고, 후자를 상자성라 하는데, 이에 반하여 중유리는 자석으로부터 달아난다는 것을 알았다. 이 성질을 반자성이라 하며, 반자성이 있는 물체를 반자성체라 한다. 패러데이는 많은 물질의 자성에 대해서 연구한 결과, 기체에서는 질소가 반자성을 나타낸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 그 밖의 연구 및 업적 이들 연구 외에 또 한 가지, 패러데이는 복빙의 현상을 발견했다. 얼음 2개를 접촉시켜 놓으면, 온도가 빙점보다 높더라도 얼어붙는다는 것을 안 것이 1850년경의 일이다. 패러데이가 마음먹은 연구는 모두 성공했는데, 단 한 가지 예상대로 안 되었던 일이 있다. 그것은 중력과 전기와의 관계라는 문제이다. 그는 여러 가지의 힘은 서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중력과 전기와도 무슨 관계가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여러 가지로 실험해 보았는데, 이 관계는 나타나지 않았다. 패러데이의 연구는 화학에 관한 것도 있지만, 전기와 자기에 관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의하여 이들 학문은 크게 진보하였다. 그는 연구를 실험적으로 해 나갔는데, 여러 가지 문제는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 후에 맥스웰이 이것을 다시 수학적으로 정리하여, 오늘날의 이론적인 전자기의 학문의 기초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대학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으나 사양하고, 줄곧 왕립 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 동안에 공개강의도 했다. 그것은 금요일 밤에 열리고 있었는데, 이 관례는 왕립 연구소에서는 그 후로도 오래도록 계속되어 유명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휴가 때에 소년 소녀를 위한 알기 쉬운 과학 이야기를 해 주는 것도 패러데이가 처음 시작한 것으로,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왕립 연구소의 유명한 교수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있다. 1857년에는 영국의 과학자로서는 가장 명예로운 지위인 왕립학회의 회장으로 취임하도록 권유를 받았으나 사양했다. 그리고 왕립 연구소의 소장이 되라는 것도 역시 사양하였다. 그는 이와 같이 이 세상의, 온갖 명예도 또한 금전까지도,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얻을 수 있었는데도, 막무가내로 그것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다만 가난한 평민 과학자로서, 게다가 놀랄 만큼의 많은 귀중한 발견의 결과를 사람들에게 안겨 주었다. 이리하여 패러데이는 수많은 업적을 남겨 놓고, 1867년 8월 26일에 77세로 세상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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