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제는 어떻게 개발됐을까?
2024-08-20
[마취제 개발 이전의 수술]
누구나 아픈 것을 싫어한다. 조금만 아파도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타이레놀이나 아스피린 같은 진통제를 먹는다. 그런데 수술을 위해 배를 가르고 내장을 자른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마취제 없이 수술하거나 이를 뽑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이 끔찍하다. 하지만 마취제가 나오기 이전에는 어떻게 했을까?
<마취제 없이 수술받는 환자의 고통> ⓒwikioo
마취제가 없을 때 수술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했다. 통증이 너무나도 극심해 정신적인 쇼크로 죽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상처를 소독한다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가 없어서 팔·다리 절단, 제왕절개, 개복수술 등을 받고 출혈과 감염으로 죽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수술실은 날카롭고 애처로운 비명으로 가득했다.
그때는 근육질의 몇 사람이 완력으로 환자를 꼭 붙잡아 매고 수술했다. 비명이 밖에 들리지 않도록 수술실은 병원 외딴 꼭대기에 있었다. 그래서 “외과수술을 받느니 자살하는 게 낫다”라는 말이 유행하곤 했다. 당장 죽는 경우가 아니라면 수술은 마지못해하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당시 통증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외과 의사의 속도였다.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수술을 마치는가가 실력을 판단하는 자질이었다. 재빨리 수술칼로 절개해 환자의 괴로움을 줄이는 것이 최대의 과제였다. 유럽에서 영국 런던대학병원의 의사 로버트 리스턴이 빠른 속도로 유명했는데 단 2분 30초 만에 다리를 절단할 수 있었다.
다른 방법으로는 술, 아편, 얼음이 있었다. 잔뜩 술을 먹여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 공포감을 줄이려고 했다. 양귀비에서 얻은 아편으로 환자를 몽롱하게 의식을 잃게 해 고통을 낮추기도 했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이 되진 못했다. 그만큼 수술은 힘들고 두려운 행위였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의 주치의 장 래리는 1812년 러시아 침공에 참전했다.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을 없애 적을 지치게 하는 러시아의 청야전술에 당해 한겨울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때 경험을 살려 그는 얼음을 수술에 도입했다. 혹독한 날씨에 동상에 걸리는 사람이 속출했는데 이때 절단 수술하면 신경 전도가 느려져 통증이 줄어들었다. 신체 부위를 자르거나 극심한 통증이 있는 경우, 차가운 얼음을 갖다 대 피부감각을 무디게 한 다음 수술한 것이다.
<추운 겨울 러시아에서 퇴각하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 ⓒLiterary Hub
[최초의 마취제, 웃음 가스(아산화질소)]
<19세기 유행한 웃음 가스 쇼> ⓒwikimediacommons
1844년 미국 동부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웃음 가스 쇼가 있었다. 웃음 가스(아산화질소 N2O)를 마시면 갑자기 웃으며 바보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데 자원자를 받아 웃음 가스를 마시게 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연출하는 쇼였다. 청중 가운데 웃음 가스를 마신 자원자는 갑자기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하더니 정신없이 관중 사이를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의자에 부딪혀 다리에 피가 흘렀다. 그런데도 상처가 난 것을 모른 채 웃는 것이었다.
때마침 쇼를 관람하던 치과의사 호레이스 웰스(1815~1848)는 그 광경을 보고 웃음 가스가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웃음 가스를 이를 뽑는 데 사용해 보자고 생각했다. 다음 날 동료 치과의사에게 부탁해 자신의 사랑니를 뽑으라고 시켰다. 그는 웃음 가스를 잔뜩 들이마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이를 뽑는데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웰스는 자신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달 반 동안 웃음 가스를 이용해 4개의 이를 뽑았다.
<웃음 가스 공개실험에 도전한 치과의사 웰스> ⓒcasher
또 다른 치과의사 윌리엄 모톤 (1819~1868)은 하버드 대학에서 자신에게 화학을 가르친 스승의 권유로 에테르(diethyl ether)의 마취 효과를 시험했다. 에테르는 휘발성과 인화성이 강한 무색의 액체다. 그가 손수건에 에테르를 떨어뜨리고 코에 갖다 대자 7~8분 만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감을 얻은 모톤은 에테르를 가지고 웰스처럼 공개실험에 도전했다.
<에테르로 마취한 후 시행한 목 종양 수술> ⓒmassachusetts ganeral hospital
1846년 10월 16일 메사추세츠 일반 병원에서 목 종양 수술을 했다. 모톤이 에테르로 마취하고 옆에 있는 외과 의사가 수술했다. 대성공이었다. 아프다고 고함치는 일은 없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난 환자는 “이것은 사기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고통 없는 수술을 확인한 사람들은 에테르의 마취 효과에 깜짝 놀랐다. 모톤은 크게 유명해졌고 이날을 ‘에테르의 날’이라고 불렀다. 과학이 고통을 제어하게 된 특별한 날이었다.
에테르 공개실험의 성공으로 수술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에테르로 마취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에테르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인화성이 강해 폭발하는 성질이 문제였다. 양초 같은 약한 열에도 휘발해 쉽게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휘발성이 낮은 다른 마취제를 찾으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에테르 공개실험의 성공으로 수술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에테르로 마취하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에테르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인화성이 강해 폭발하는 성질이 문제였다. 양초 같은 약한 열에도 휘발해 쉽게 폭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휘발성이 낮은 다른 마취제를 찾으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빅토리아 여왕이 분만에 사용한 마취제 클로로포름]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은 우연히 클로로포름의 마취 작용을 발견했다. 그는 클로로포름을 흡입시켜 산모를 마취시킨 후 출산했다. 이로써 출산의 고통은 크게 줄었다. 클로로포름은 에테르보다 마취 작용이 강하고 인화성도 적었다.
<많은 자녀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 ⓒinews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873)은 남편 앨버트 공과 17년간 지내면서 9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여왕은 왕실을 이을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계속된 출산으로 여왕은 힘들어했는데 어느 날 시녀 중 하나가 놀라운 사실을 말했다. “폐하! 새로 나온 클로로포름으로 마취한 후 이를 뽑으니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1853년 여왕은 여덟 번째 레오폴드 왕자를 출산하면서 클로로포름을 적신 손수건을 코에 갖다 대고 흡입했다. 출산의 고통을 마취제로 가라앉힌 것이다. 4년 후 막내 베아트리체 공주를 출산할 때도 클로로포름으로 무통분만했다. 여왕이 앞장서서 마취제를 사용하자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마취제가 널리 보급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남북전쟁을 거치며 간독성이 발견되면서 클로로포름은 마취제에서 점차 퇴출당하고 말았다. 한번 도입된 흡입마취제는 수술에 필수적인 의약품이 되었다. 한때 인기를 누리던 에테르, 클로로포름은 사라졌지만, 최초의 마취제 웃음 가스는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현대 의학의 필수품 마취제]
<불소를 함유한 흡입마취제 세보플루란> ⓒtajgenerics
마취제는 아주 우연히, 주의 깊은 관찰에 의해 개발됐다고 할 수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런 행운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억세게 운 좋은 뜻밖의 발견이라는 뜻이다. 마취제 개발은 세심한 관찰과 과감한 실험이 결합해 기적을 일으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되자 안전하고 효과 좋은 마취제들이 속속 등장했다. 지금은 불소를 다량 함유한 세보플루란 같은 흡입마취제와 프로포폴 같은 정맥 주사용 마취제를 많이 사용한다. 흡입마취제들은 화학적으로 유사성이 별로 없다. 다만 분자량이 적고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을 가지는 것이 주된 공통점이다.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가 몸속의 지질로 된 세포막을 통과해 약효를 발휘한다.
2022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206만 건의 수술이 있었다. 백내장, 척추, 치핵 수술 순이다. 마취제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수술은 불가능하다. 마취제는 외과수술을 크게 발전시켰고 인류를 구한 대표적인 약이라고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의 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슨은 우연히 클로로포름의 마취 작용을 발견했다. 그는 클로로포름을 흡입시켜 산모를 마취시킨 후 출산했다. 이로써 출산의 고통은 크게 줄었다. 클로로포름은 에테르보다 마취 작용이 강하고 인화성도 적었다.
<많은 자녀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 ⓒinews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1819~1873)은 남편 앨버트 공과 17년간 지내면서 9명의 자녀를 출산했다. 여왕은 왕실을 이을 자손을 많이 낳는 것을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계속된 출산으로 여왕은 힘들어했는데 어느 날 시녀 중 하나가 놀라운 사실을 말했다. “폐하! 새로 나온 클로로포름으로 마취한 후 이를 뽑으니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1853년 여왕은 여덟 번째 레오폴드 왕자를 출산하면서 클로로포름을 적신 손수건을 코에 갖다 대고 흡입했다. 출산의 고통을 마취제로 가라앉힌 것이다. 4년 후 막내 베아트리체 공주를 출산할 때도 클로로포름으로 무통분만했다. 여왕이 앞장서서 마취제를 사용하자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마취제가 널리 보급된 것이다.
그러나 미국 남북전쟁을 거치며 간독성이 발견되면서 클로로포름은 마취제에서 점차 퇴출당하고 말았다. 한번 도입된 흡입마취제는 수술에 필수적인 의약품이 되었다. 한때 인기를 누리던 에테르, 클로로포름은 사라졌지만, 최초의 마취제 웃음 가스는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현대 의학의 필수품 마취제]
<불소를 함유한 흡입마취제 세보플루란> ⓒtajgenerics
마취제는 아주 우연히, 주의 깊은 관찰에 의해 개발됐다고 할 수 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런 행운을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한다. 억세게 운 좋은 뜻밖의 발견이라는 뜻이다. 마취제 개발은 세심한 관찰과 과감한 실험이 결합해 기적을 일으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가 되자 안전하고 효과 좋은 마취제들이 속속 등장했다. 지금은 불소를 다량 함유한 세보플루란 같은 흡입마취제와 프로포폴 같은 정맥 주사용 마취제를 많이 사용한다. 흡입마취제들은 화학적으로 유사성이 별로 없다. 다만 분자량이 적고 기름에 잘 녹는 성질을 가지는 것이 주된 공통점이다. 호흡을 통해 폐로 들어가 몸속의 지질로 된 세포막을 통과해 약효를 발휘한다.
2022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206만 건의 수술이 있었다. 백내장, 척추, 치핵 수술 순이다. 마취제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수술은 불가능하다. 마취제는 외과수술을 크게 발전시켰고 인류를 구한 대표적인 약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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