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만으로 스마트폰과 컴퓨터, 로봇을 조작한다고?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2024-06-11
[최초의 텔레파시]
“뉴럴링크(Neuralink) 칩은 머지않아 생각만으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최초의 텔레파시를 만들었다.”
2024년 3월, 일론 머스크는 자회사인 뉴럴링크의 X(구 트위터)에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최초의 뇌 내 칩 이식 성공 사례를 공개했다. 어깨 아래가 완전히 마비된 영상 속 남성은 오로지 생각만으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며 컴퓨터로 체스를 두었다. 드디어 인간의 인지와 컴퓨팅 기술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뉴럴링크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임상시험에 참여한 사지마비 환자 ©Neuralink YouTube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rain-Computer Interface, 이하 BCI)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한 첨단기술 분야이며, 과학과 의학 연구의 최전선에서 연구되고 있다. 초기 연구는 다소 허무맹랑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결과적으로 뉴럴링크는 인간에게 처음으로 뇌 내 칩 이식에 성공했고, 이제는 인간의 상실된 신체 부위를 컴퓨터로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이제 머지않은 미래, 뉴럴링크와 같은 BCI 기술은 우리 삶 속에 부쩍 다가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우리 삶과 의료 시스템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기술의 활용이 단순 의료 행위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 인지 능력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미래로 나아갈 수도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도대체 뉴럴링크와 BCI 기술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우리 삶을 크게 변화시킬 거라고 하는 걸까?
BCI 기술로 걸을 수 있게 된 하반신 마비 환자, ©Nature
[뇌 속에 흐르는 전기 신호를 찾아라!]
다니엘 크레이머 박사 ©Anschutz
다니엘 크레이머 박사는 콜로라도 대학교 의과대학의 신경외과 조교수이면서 동시에 BCI 프로그램 개발의 전문가이다. 그는 뉴럴링크 기술의 원리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뉴럴링크의 기술은 매우 정밀한 ‘전극’을 사용하여 뇌 활동의 세밀한 부분까지 기록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사용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해독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변환할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단어는 ‘전극’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뇌는 생각을 하기 위해서 ‘전기 신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모든 BCI 기술의 출발은 이 ‘뇌 내 전기 신호’를 포착하는 데서 출발한다.
ⓒGettyImages
초기 BCI 기술은 1924년 독일의 한스 베르거가 자기 아들의 전기뇌파(EEG)를 측정하여 뇌 활동을 기록하면서 시작되었다. 모든 신기술이 그렇듯 처음 제안된 BCI 기술에 대한 과학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우리가 얼른 생각해봐도 그렇다. 뇌가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서 전기 자극을 이용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의 세기가 얼마나 될까? 고작 수십 mV(밀리볼트) 수준이다. 이것은 손톱만 한 건전지의 수백 분의 일에 불과하다. 이런 미세한 전기적 활동을 실제로 측정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미신처럼 들리지 않는가?
게다가 초기 전기뇌파 기록은 매우 낮은 신호의 세기와 큰 잡음을 가지고 있었고, 실험 도구 또한 간단한 실버 와이어와 호일을 사용하는 등 상당히 원시적인 도구들을 활용하였기에 주변 과학자들이 보낸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심했다.
ⓒElectroencephalograph Clin Neurophysiol. 1969
한스 베르거의 뇌 내 전기 신호 측정 장치, ⓒFlickr
그 후, 1970년대에 자크 비달 교수가 BCI 개념을 구체화하며 컴퓨터로 뇌 신호를 해석하고 조작하는 기술의 초석을 마련했다. 비달의 연구는 뇌파를 이용해 컴퓨터 커서를 이동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BCI 기술의 실용화 가능성을 처음으로 입증한 중요한 성과였다.하지만 그 후 BCI 기술은 잠시 동안의 겨울에 들어가게 된다. 뇌 바깥에서 전기 신호를 측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머리에 모자 혹은 스티커를 붙인 기구를 생각하면 된다.) 그 원인은 바로 두개골의 존재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뇌에 직접 전극을 연결할 기술력을 가진 것 또한 아니었다. 지식은 있었지만, 이것을 구현할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드러나기 시작한 ‘특이점’]
그로부터 50년 뒤 BCI 기술은 드디어 특이점을 맞이했다. 뉴럴링크에서 개발한 ‘N1 임플란트 칩’과 ‘R1 로봇’이 발표된 것이다.
N1 임플란트는 두개골을 개방한 뇌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칩이다. 그리고 R1 로봇은 초미세 공정을 통하여 이 칩의 전극을 뇌에 ‘바느질’을 통해 장착시킨다. 뇌에 바느질을 한다니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굉장히 정밀한 검사를 통해 뇌의 혈관 위치를 모두 스캔한 후 수술이 진행되어 그 안정성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N1 임플란트(좌), R1 로봇(우), ⓒNeuralink Blog
칩이 장착되면 몇 시간에 걸쳐 데이터를 수집한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발생하는 전기 신호를 확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를 떠올릴 때 어떤 전기적 신호가 발생하는지 코딩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데이터 수집 과정이 끝나면 이제는 뉴럴링크를 사용할 준비가 끝났다. N1 임플란트는 내장된 1,024개의 전극을 활용해 뇌의 전기적 신호를 포착하고, 그것을 증폭시킨 후 휴대폰이나 컴퓨터에 무선으로 신호를 전달해준다. 이를테면, 사과를 생각하는 순간 휴대폰에는 사과(apple)라는 단어가 출력된다는 것이다.
뉴럴링크 기술의 개요, ⓒNeuralink Blog
게다가 유지 관리 또한 크게 신경썼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이라도 외관상 흉측하다면 아무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N1 임플란트는 장착한 후 다시 두피를 덮어주기 때문에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생체 조건에 비해 훨씬 혹독한 환경에서 고장 나지 않도록 가속 수명 테스트를 마쳤고, 한번 장착된 기기는 무선으로 충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재수술의 번거로움 없이 장기간 사용하는 것까지 고려했다.
가속 수명 테스트를 실시하는 장면, ⓒNeuralink Blog
[우리가 대비할 BCI의 미래]
이제 BCI 기술은 단순히 공상과학이나 사이버펑크 세계관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닌, 현실로써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기술이 상용화되기에는 아직 몇 가지 과제가 남아있다.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바로 윤리적인 문제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가 나의 뇌에 접근한다는 것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아직 뇌 속에서 데이터를 ‘출력’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입력’하는 것은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 전문가의 의견이다. 뇌의 정보가 유출될 수는 있어도, 최소한 내 뇌를 누군가 조종하는 것은 멀었다는 뜻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Voice of America News
그리고 차별의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줄 이같은 기술이 누군가의 특권이 된다면, 그것은 없느니만 못한 기술이 되어버린다. 일론 머스크는 뉴럴링크 기술에 대해 “인간 인지 능력의 한계를 확장시키겠다”라고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만약 앞으로의 미래에 돈 많은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만이 이런 기술을 통해 지적 능력을 강화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두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런 신기술이 보급되는 것에는 반드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규제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BCI 기술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면서도 신중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혜택을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와 규제를 통해, 이러한 기술이 인류 전체의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잡아나가야 할 것이다. 뉴럴링크가 보여준 가능성은 분명 혁신적이지만, 그 가능성이 모두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다. 우리는 이 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대하며, 동시에 그 등불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비춰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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