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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퀴리 이후 120년. 원자의 발자국

작성일 2024-01-17

이렌 퀴리와 함께 있는 퀴리 부부 (출처 : Scientific American)

마리 스쿼도프스카 퀴리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지 120년을 맞았다. 1898년, 폴란드 태생의 프랑스 과학자인 마리 퀴리는 우라늄보다 훨씬 강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을 찾아내고 이를 라듐이라 명명했다. 마리 퀴리의 라듐 발견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방사능 연구와 원자력 과학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라듐으로부터 원자력 발전까지, 우리는 어떻게 나아왔을까?   놀랄만한 혁신라듐 1890년대의 과학자들은 원자 내부의 구조와 현상을 밝혀내는 데에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마리 퀴리와 그의 남편인 피에르 퀴리도 그런 과학자들 중 하나였다. 마리 퀴리는 박사 학위 논문 주제를 찾던 중 앙리 베크렐이 발견한 ‘우라늄염에서의 베크렐선 현상’에 주목했다. 그들은 우라늄을 포함하고 있는 광물인 우라늄 역청에서 기존보다 훨씬 강한 베크렐선을 관측했고 이것이 기존의 물질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물질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들은 1898년에 라듐의 존재를 확인하고 명명했으며 4년간의 실험 끝에 마침내 1902년 1월, 순수한 라듐 0.1g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이 부부는 방사능과 방사선을 처음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방사능 현상을 연구한 공로로 앙리 베크렐과 퀴리 부부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라듐이 발견되고 얼마 되지 않아 피에르 퀴리는 의사들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라듐이 암세포를 파괴하여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각국에서 라듐을 추출하기 위해 달려들었고, 여러 임상 결과에 힘입어 라듐은 기적의 물질로 추앙받았다. 라듐이 수명을 연장시켜 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라듐 산업 또한 부흥하기 시작했다. 장신구부터 화장품까지, 라듐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라듐 도료를 바른 언다크의 야광 손목시계였다.

라듐 화장품 광고 (출처 : Atlas Obscura)

 

라듐 시계 공장에서 라듐 페인트를 칠하고 있는 ‘라듐걸스’ (출처 : CNN)

그런데 시계 공장에서 일하던 직공들에게 원인 불명의 골수암, 악성 빈혈, 궤양 등의 병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라듐을 가장 오랜 시간 가까이했던 마리 퀴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마리 퀴리의 사인도 라듐의 방사선으로 인한 재생불능성 악성 빈혈이었다.     ┃방사선, '악마의 빛'이 되다 마리 퀴리의 죽음 앞에서 과학은 다시 일어섰다. 마리 퀴리의 딸과 사위인 이렌과 프레데릭 졸리오-퀴리 부부는 인공 방사능에 관한 논문을 게재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 후, 독일의 화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오토 한이 실험을 통해 핵분열 양상을 목격했고 유대인 여성 과학자인 리제 마이트너가 이것이 핵분열이라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원자핵이 분열하면 중성가나 나오게 되고, 이 중성자는 연속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원리에 따르면 이는 소량의 물질로 엄청난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는 반응임이 확실했다. 엄청난 에너지의 발생. 이 한 문구는 과학자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원자폭탄의 가능성이 제시된 것이다.  

트리니티 실험 (출처 : Britannica)

  1942년, 미국 정부는 극비리에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을 모아 맨해튼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오펜하이머를 위시한 과학자들은 나치보다 앞서 원자폭탄을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황량한 사막에서 폭발한 플루토늄 폭탄의 파괴력은 과학자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엄청난 살상력을 우려한 몇몇 과학자들은 폭탄의 사용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원자폭탄은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초기 2~4개월 동안, 히로시마에서는 9만 명에서 16만 6천 명, 나가사키에서는 6만 명에서 8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원자폭탄은 새로운 쓸모를 찾았다. 바로 원자력 발전이다. 미국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만든 원자로를 기반으로 발전소를 짓기 시작했다. 원자핵이 분열할 때 나오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했기에 새 시대의 에너지 소비를 감당하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기존 화력 발전과 달리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친환경적 이어 보이기까지 했다. 원자력 발전은 차세대 에너지원처럼 보였다. 어떤 ‘사고’ 이전까지는 말이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출처 : New York Times)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발전소는 시설을 점검하기 위해 안전 시스템을 전부 해제한 상태였다. 발전소의 설계에도 결함이 있었거니와, 제어봉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해 원자로에서 걷잡을 수 없는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연쇄반응에서 발생한 열은 냉각수를 가열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수소가 원자로 내부에서 폭발하면서 천장이 파괴되었다. 파괴된 천장으로 빠져나온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들은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스리마일 원전 사고와 함께 3대 원전 사고로 꼽히며 현재도 원전 반경 30km 이내 지역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방사능의 두 얼굴 앙리 베크렐이 베크렐선을,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가 라듐을 발견하면서 원자 단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연구 대상이 되었다. 라듐을 시작으로 부흥한 방사능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에 이르러 핵분열 이론의 정립에 이르렀고, 이는 맨해튼 프로젝트와 원자력 발전에 이론적 단초를 제공해주었다. 라듐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역사 속에서 인류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했다. 오늘날 원자 내부, 혹은 더 작은 단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유럽공동원자핵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를 필두로 진행되고 있다. 불과 10년 만에 원자 내부에 대한 과학은 전자를 제어하기에 이르렀다. 방사능 활용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원자력 발전이 가장 뜨거운 감자이기는 하나 그 외에도 방사선 요법, 방사성 원소 동위연대 측정 등 방사성 원소를 활용한 많은 연구가 있다. 요즈음 방사성 원소와 관련해 가장 화제가 되는 이슈를 꼽아보자면 단연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 방출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원전 폐기 문제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관한 문제도 끊임없이 나오는 주제 중 하나이다. 이처럼 핵에너지는 잘 사용한다면 유용할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위험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방사성 물질을, 핵에너지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이는 노벨상 시상식 연설에서 피에르 퀴리가 했던 말처럼 우리에게 달린 듯하다. 피에르 퀴리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자연의 비밀을 캐는 것이 인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그 비밀을 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인류는 성숙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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