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생명분야 20세기이후 10대 사건 5]
생명체 설계하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
초기 생물학이 단순히 생물을 관찰하는 것이었다면, 현미경의 탄생 이후의 생물학은 생명현상의 정체를 밝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세포에 관심을 돌린 생물학자들은 19세기 말 생명의 설계도가 DNA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때부터 DNA에 담긴 정보가 어떻게 전달되고 생명현상을 일으키는지가 생물학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그림 1 박테리오파지가 대장균에 자신의 DNA를 주입하는 장면. 유전자 재조합은 이미 생명체에 있던 ‘아이디어’다. 사진제공 : APOD. |
‘센트럴도그마(central dogma)'라고 불리는 DNA에서 RNA를 거쳐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 전달 과정까지 낱낱이 밝혀지자 생물학자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즉 DNA를 조작해 우리가 원하는 생명체 혹은 단백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됐다. 각각의 기능을 갖는 유전자만을 떼어내 다른 유전자와 결합시키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라고 부른다.
입박테리아와 바이러스에서 얻은 힌트
사실 ‘유전자 재조합’은 인간이 처음 개발한 기술이 아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이미 유전자재조합을 통해 세포 사이에 DNA를 교환하고, 생존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해왔다. 생화학자들은 박테리아와 박테리아, 혹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사이에서 DNA가 교환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힌트를 얻었다.
바이러스는 스스로는 증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살아 있는 다른 세포를 이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균을 숙주로 하는 바이러스, 박테리오파지는 자신의 DNA를 세균 속에 주입해 살아간다. 세균 속에 들어간 박테리오파지의 DNA는 세균의 DNA 속으로 몰래 끼어들어간다. 세균이 DNA를 복제하고, 단백질을 만드는 동안 몰래 끼어들어간 박테리오파지의 DNA도 복제되고, 단백질을 만들어 번식한다.
생화학자들은 다른 세포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의 메커니즘을 이용해 특정 세포에 새로운 유전자를 주입하려 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DNA에서 원하는 부위를 잘라내고, 이를 바이러스의 DNA와 이어붙일 방법을 알아야 했다. 즉 DNA를 자르고 붙일 ‘가위’와 ‘풀’이 필요했던 것이다. 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용은 효소가 담당하므로 가위와 풀 역시 효소여야 한다.
DNA 자르는 가위, 붙이는 풀
스위스의 세균학자 베르너 아르버는 1960년대에 이미 DNA를 자르는 효소를 발견했다. DNA를 자르는 가위를 ‘제한효소(restriction enzyme)’라고 한다. 하지만 아르버의 효소는 자르는 위치를 예상할 수 없는 ‘제1형(type I) 제한효소’여서 별로 쓸모가 없었다.
 그림 2 DNA를 자르는 ‘가위’인 제한효소(좌측)와 붙이는 ‘풀’인 연결효소(우측). 사진 제공 : 동아일보
|
1970년 미국의 미생물학자 해밀턴 스미스는 하이모필루스 인플루엔자이(Haemophilus influenzae)라는 미생물에 박테리오파지 P22의 DNA를 주입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다가 특정 부위만을 자르는 ‘가위’를 발견하고 이것을 ‘제2형(typeII) 제한효소’라고 이름 지었다. 작용하는 위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으므로 유전자재조합 기술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여러 형태의 제2형 제한효소가 발견됐다.
한편 대니얼 네이선스는 이 효소로 SV40 바이러스 유전자가 어떤 절단 부위를 가지는지 알려주는 유전자 지도를 작성했다. 아르버와 스미스 그리고 네이선스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에 기여한 공로로 1978년 공동으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DNA를 이어붙이는 풀을 ‘DNA 연결효소(DNA ligase)’라고 한다. 이미 1960년대 DNA 복제과정을 연구하는 도중 DNA를 연결하는 효소를 발견했다.
최초의 유전자 재조합 기술 등장
 그림 3 스탠리 코헨은 아프리카 두꺼비(사진)을 사용해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개발했다. | 이제 DNA를 자르고 붙일 가위와 풀이 있으므로 실험으로 입증할 일만 남았다. 1973년 허버트 보이어와 스탠리 코헨은 아프리카 두꺼비(Xenopus laevis)에서 유전자를 분리해 대장균 속의 작은 원형 DNA 분자인 ‘플라스미드(plasmid)’에 삽입했다.
이 플라스미드에는 제한효소가 인식하는 부위가 있다. 스탠리 코헨은 두꺼비의 유전자와 플라스미드를 제한효소로 절단한 다음 DNA 연결효소를 이용하여 둘을 서로 이어 붙였다. 그리고 재조합 유전자를 대장균에 삽입하자 두꺼비의 DNA가 대장균에서 단백질을 만들기 시작했다.
세균을 통해 고등동물의 단백질을 합성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스탠리 코헨은 자신의 방법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였다. 이것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근본 기술이자 특허이며, 1973년을 유전공학의 원년으로 일컫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스탠리 코헨은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그는 ‘상피세포 성장인자’에 관한 다른 연구로 1986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왜 그랬을까? 노벨상은 해당 분야에서 최고의 공적을 이룬 사람보다 해당 연구를 키울 최초의 발견자에게 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에서 최고의 업적을 세운 사람은 스탠리 코헨이지만 그보다 1년 앞선 1972년에 최초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개발한 사람이 있었다. 폴 버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폴 버그는 종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숙주세포에 들어가 숙주세포를 종양세포로 바꾸는 기전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바이러스의 유전정보가 숙주세포의 유전정보에 영향을 주어서 종양세포로 바뀔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했다. 이 과정에서 대장균의 젖당 대사와 관련된 세 가지 유전자를 SV40 바이러스의 유전체에 삽입시킨 뒤 숙주세포로 넣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다. 폴 버그는 이 업적을 인정받아 198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단백질을 대량으로 얻는 법
폴 버그, 허버트 보이어, 스탠리 코헨이 제한효소(가위)와 연결효소(풀)를 이용하여 기원이 다른 유전자를 이어붙이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개발했지만 현재 그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대장균을 숙주세포로 사용하는 경우 재조합 유전자가 복제되는 양이 적고, 이 유전자에서 단백질이 발현되는 과정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 4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특허를 받은 스탠리 코헨. 그가 개발한 방법으로 생명공학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사진 제공 : 동아일보 |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는 사람이 있는 법. 일본계 미국인인 게이치 이타쿠라가 해결사로 등장했다. 그는 호르몬의 일종인 소마토스타틴을 얻기 위해 사람의 DNA를 플라스미드에 삽입해 이를 대장균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소마토스타틴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이게 전부라면 이전의 연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는 소마토스타틴의 유전자와 함께 DNA 발현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플라스미드에 삽입했다. 그 결과 원하는 단백질을 대량으로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생화학자들은 대부분 이타쿠라의 방법을 사용한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은 생명을 ‘조작’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에서 많은 과학자뿐 아니라 철학자, 윤리학자, 법학자, 정치인을 흥분시켰다. 스탠리 코헨이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특허를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학자들은 스스로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위험을 알리기 시작했고, 1976년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유전자 재조합 실험을 규제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신학자와 윤리학자 중 일부는 과학자들이 ‘신의 역할’ 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또 대중매체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인간에 응용돼 우생학적으로 유해한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이윤은 많은 논쟁을 잠재운다.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얻을 수 있는 상업적 이득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자 찬성의 목소리가 반대의 목소리를 압도하게 됐다. 이윤에 대한 기대는 대중들에게는 의학 발전에 따른 건강과 수명 연장으로 포장됐다. 1980년대 들어 유전자 재조합 기술의 위험을 관리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자 규제는 약화됐으며, 세계는 바야흐로 생명공학의 시대에 진입했다.
[교육팁] 신문지 한 장을 준비해 펜으로 ‘인간 유전자'라고 쓴다. A4 용지 한 장을 준비해 ’플라스미드‘라고 쓴다. 복사기에 ’대장균‘이라고 써 붙인다. 가위에 ’제한효소‘라고 써 붙이고, 풀에 ’연결효소‘라고 써 붙인다.
신문지 전체(인간 유전자)는 크기가 너무 커서 직접 복사기에 넣고 복사할 수는 없다. 그 중 원하는 작은 사진 하나를 고른다. 원하는 사진을 가위(제한효소)로 자른 뒤 풀(연결효소)로 A4 용지(플라스미드)에 붙인다. A4(플라스미드)는 크기가 적당하므로 복사기에 넣고 복사할 수 있다. 복사기에 넣고 10장을 복사한다.
각각의 역할에 대해 다시 복습하고, 유전자 재조합 기술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토론한다.
[교육 과정] - 초등학교 5학년 우리의 몸 - 고등학교 1학년 생명 과학과 인간의 미래 | 글 / 이정모 과학저술가 penguin@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