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공학분야 20세기 이후 10대 사건 5]
식품 보관 방법의 혁명, 냉장 기술
요즘 우리 식탁에는 계절이 없다. 집에 있는 냉장고에는 온갖 음식이 가득하고, 지근거리의 슈퍼마켓에는 사시사철 식재료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식탁 위에서 계절이 사라지게 한 기술 중 하나가 냉장 기술이다. 냉장 기술은 온도를 낮춰 음식물이 부패하지 않도록 해주며, 식품을 장기간 보관할 수 있게 해준다. 덕택에 가정주부들은 매일 장을 보고 요리를 해야 하는 불편함을 덜 수 있게 됐다. 편리함 외에 냉장 기술은 식탁에 풍요로움도 가져다줬다. 강원도 고랭지 채소는 물론 지구 반대편에서 나는 해산물, 육류, 과일 등 보관 기간이 짧아 유통될 수 없었던 그 어떤 식품도 먹을 수 있게 했다. 이만하면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브라보를 외칠 수 있지 않을까?
냉장의 역사는 천연 얼음으로부터
 그림 1 경주 석빙고(보물66호)의 내부 모습. 사진제공 : 동아일보 |
낮은 온도에서 식품을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대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었다. 천연 얼음이나 눈을 채취해 동굴이나 지하시설에 쌓아두고 식품 보관에 활용했다는 증거는 여러 기록에서 확인된다. 그리스인은 산에서 가져온 눈을 뭉쳐 짚이나 흙 등으로 단열한 후 포도주를 저장하는 데 썼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높은 산의 눈을 가져오게 해 공을 세운 자에게 차가운 음식을 대접했다고 한다. 중국 전국시대 때 쓰인 『예기』에는 ‘벌빙지가’라는 얼음 창고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라 때부터 석빙고를 이용했다. 『삼국유사』에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얼음을 저장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지증왕 6년 11월에 얼음을 저장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천연 얼음을 이용한 보관 방식은 19세기까지 지속됐으며, 19세기 초 미국에서는 얼음 채취 보관업이 잘 나가는 업종 중 하나였다. 큰 회사의 경우 고용인만 수천 명에 달했다.
냉매 물질 에테르의 발견
 그림 2. 윌리엄 컬린은 에테르를 발견하고, 냉장 기술의 가능성을 열었다. | 인공 냉장 기술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람은 영국 글래스고우대학의 윌리엄 컬린(William Cullen, 1710~1790)이다. 컬린은 땀이 마르면서 피부의 열을 빼앗듯 액체가 기체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변의 열을 빼앗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론상 낮은 온도에서도 기화하는 액체, 즉 냉매를 이용해 섭씨 0도 이하의 온도를 얻을 수 있다면 얼음을 얻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적당한 냉매를 찾으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컬린은 알코올과 성질이 비슷한 에테르(에틸에테르)를 발견하고, 반 진공 상태일 때 에테르의 증발이 매우 빨리 일어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펌프를 이용해 에테르가 담긴 상자 주변을 반 진공 상태로 만든 컬린은 상자 안에서 에테르를 기화시켰다. 그러자 주변의 열이 흡수되면서 온도가 낮아졌다. 실험의 결과로 컬린은 작은 얼음까지 얻었다. 하지만 실험은 거기까지였다.
 그림 3 윌리엄 컬린이 디자인한 냉각장치 | 미국의 올리버 에번스(Oliver Evans, 1755~1819)는 컬린의 실험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기계적으로 저온을 만들고, 이를 실용화하는 방식을 체계화했다. 1805년에 에번스가 발명한 냉장장치는 증기로 구동되는 펌프를 이용한 압축기(컴프레서)를 통해 이뤄졌다. 압축기로 구현한 진공 안에서 냉매인 에테르가 증발돼 얼음이 만들어지는 형태였다. 또한 증발된 에테르는 물에 냉각·응축돼 다시 재사용할 수 있었다. 증기압축기를 사용한 순환형 냉장장치의 개발이었으나, 그것이 실제 냉장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냉각기의 구조와 냉각 과정> 냉장고의 핵심인 냉각기는 냉매를 계속해서 압축·순환시켜 냉장고 안을 낮은 온도로 유지해 주는 장치다. 먼저 압축기에서 나온 압축 냉매 가스가 넓게 퍼져 있는 와이어 응축기를 통과하면서 차갑게 냉각된다. 이어 모세관을 지나면서 저온·저압의 액화가스가 된다. 이 가스는 증발기를 통해 기체로 변하고, 냉장고 안의 열을 흡수해 냉장고의 온도를 떨어뜨린다. 냉매 가스는 다시 압축기로 되돌아가면서 지금까지 했던 동작을 되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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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의 아버지, 제임스 해리슨
 그림 4. 냉장고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해리슨. | 증기압축기 냉장고를 제작해 특허를 획득한 사람은 미국의 알렉산더 트위닝(Alexander Twinning)과 스코틀랜드 태생의 호주인 제임스 해리슨(James Harrison, 1816~1893)이다. 트위닝은 1850년에 특허를 취득하고, 회사를 세워 최초의 상업용 냉장고를 생산하고자 했으나 실현되지는 않았다. 얼마 후 해리슨이 독자적으로 냉장고를 제작했다. 해리슨은 컬린이 행한 실험에 대해 전혀 몰랐다. 대신 인쇄공으로 일했던 오랜 경험으로부터 활자에 낀 인쇄 잉크를 세척할 때 쓰는 에테르가 열을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해리슨은 이 점에 착안해 홀로 냉장고 개발에 뛰어들었다. 1855년 마침내 해리슨은 에테르를 냉매로 한 증기압축 냉장고를 개발하고 특허를 획득했다. 이 냉장고는 때마침 열린 국제박람회에 전시되면서 팔리기 시작했고, 해리슨은 ‘냉장고의 아버지’로 불리게 됐다. 이후 기계적 냉장 기술은 얼음제조회사, 양조장, 육류포장회사, 식품가공회사에서 산업용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증기를 이용하는 탓에 산업용 냉장고는 거대했고, 소음 또한 대단했다.
가정용 소형 냉장고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프랑스의 페르디낭 카레(Ferdinand Philippe Edouard Carr?, 1824~1900)였다. 1860년 카레가 개발한 냉장고는 이동식 난로의 열로 냉매인 암모니아를 가열해 기화시키는 가스 흡수식 냉장고로, 물이 담긴 저수조에서 암모니아를 흡수해 농축하는 순환식 구조였다. 그러나 가정에서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복잡했고, 암모니아 가스가 누출되는 등 여러 기술적 난제를 풀지 못했다.
 그림 5 모니터 탑 스타일의 냉장고. 사진제공 : 위키피디아 | 독일의 공학자 칼 폰 린데(Carl Paul Gottfried von Linde, 1842~1934)는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진전을 이뤘다. 1873년 린데는 압축기를 개량하고, 암모니아를 냉매로 기존의 것보다 성능은 뛰어나지만 크기는 작은 산업용 압축 냉장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특히 효율적인 냉장 공간을 필요로 했던 양조업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879년에는 가정용 소형 냉장고로 만들어 독일과 미국에 팔았다. 1895년에는 공기를 냉각해 액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구현했으며, 1902년에는 공기에서 산소와 질소를 분리해 액화산소와 액화질소로 만드는 방법도 개발했다.
최초의 가정용 전기냉장고 도멜레는 1913년에 시판됐으나 소음과 큰 부피로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후 일렉트로럭스, 프리지데르, 캘비네이터 등이 나왔다. 1가구 1냉장고 시대를 연 것은 제너럴일렉트릭사(GE)에서 판매한 모니터 탑 냉장고로, 최초의 밀폐형 냉장고였다. 소음이 줄고, 디자인이 뛰어나 냉장고를 주방가구로 인식시킨 제품이었다. 제너럴일렉트릭사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1931년 백만 대 생산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또 하나의 식탁 혁명, 급속냉동
 그림 6 초기 여성을 위한 냉장고 광고물 |
급속냉동 기술 역시 식탁에 혁명을 가져왔다. 식물이나 동물 세포는 영하 18도 이하의 온도에서 매우 빠르게 냉동되면 손상되지 않는다. 이 같은 원리에 착안해 1925년 미국의 클래런스 버즈아이(Clarence Birdseye, 1886~1956)가 급속냉동 기술을 개발했다. 1928년 최초의 냉동식품이 미국에서 시판된 이후 냉동식품 시장은 10년 새 규모가 두 배가 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가사와 일을 병행하는 직업여성들이 늘면서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냉동식품이 큰 인기를 끈 탓이다. 그들은 냉동식품으로 요리 시간을 줄이고, 대신 여가 시간을 늘렸다. 이후 슈퍼마켓에 대형 냉동고가 비치되면서 냉동식품의 종류도 갈수록 다양해졌다.
미래의 냉장장치
 그림 7 급속냉동기술이 발달하면서 냉동식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다. 사진 제공 : 동아일보 | 최근에는 펠티에 소자를 이용한 냉장고가 개발되는 추세다. 펠티에 소자는 반도체를 조합해 만든 것으로, 프랑스의 펠티에(Jean Charles Athanase Peltier, 1785~1845)가 1834년 발견한 펠티에 효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펠티에 효과란 서로 다른 금속의 접점을 통해 전류를 보내면 열이 흡수되거나 발생하는 현상으로, 이를 이용하면 냉각장치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펠티에 효과를 구현할 수 있는 적당한 소재가 없었기에 실용화할 수 없었다. 그러다 반도체가 개발되면서 펠티에 소자를 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반도체를 이용하기 때문에 펠티에 소자를 사용한 냉장고는 냉매도 압축기도 필요 없다. 그래서 소음도 진동도 월등히 적다. 현재 김치냉장고와 일부 와인냉장고가 펠티에 소자를 사용해 냉장을 실현한다. 하지만 기존 냉장고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앞으로 펠티에 소자 같은 전자소자의 개발이 본격화하면 머지않아 효율이 높고 소음과 진동이 없는 냉장고가 보급될 것이다. 냉장고의 용량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조립식 냉장고의 미래도 밝다. 가족 수나 집의 크기에 따라 일부를 떼거나 붙여 규모를 적절히 조절할 수도 있다. 큰 덩치로 이사 때 골칫거리였던 냉장고의 분해가 가능해지므로 이동과 운반 역시 쉬워질 것이다.
[용어사전]
*에테르 에틸알코올에 진한 황산을 넣고 증류하여 만든 무색 액체. 낮은 끓는점과 독특한 냄새를 있다.
*냉매 저온의 물체에서 열을 빼앗아 고온의 물체에 열을 운반해 주는 매체.
*기화 고체 또는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현상.
*액화 기체가 냉각·압축되어 액체로 변하거나 고체가 녹아 액체로 되는 현상. | |
[교육팁] 얼음과 소금이 만나면 영하 10℃ 이하로 온도를 낮출 수 있다. 이를 이용해 슬러시를 만들어본다. *준비물: 얼음 3판, 소금, 수건, 망치, 오목하고 작은 유리그릇, 주스나 음료수, 나무젓가락 수건에 얼음 3판을 부은 뒤 잘 싸서 망치로 부순다. 큰 그릇에 부순 얼음을 넣은 뒤 소금을 골고루 뿌려 잘 섞어준다. 소금이 뿌려진 얼음의 온도를 재본다. 작은 유리그릇에 주스를 담은 후 얼음 사이에 넣어둔다. 20~30분 후에 유리그릇을 꺼내본다. 유리그릇 안의 주스가 어떻게 변했는지 말해본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는지 이유를 설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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