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담는 그릇, 자기기록장치
2010-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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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담는 그릇, 자기기록장치
인간의 문명은 정보를 저장하고 공유하면서부터 급속히 발전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정보는 문자가 사용되면서부터 기록으로 전해졌으며, 종이와 인쇄술의 발명에 힘입어 널리 퍼졌다. 자기기록장치의 등장은 이러한 정보 저장의 역사에 커다란 혁명이었다. 첫 자기기록장치는 1898년 발명된 녹음용 텔레그라폰. 이후 영상과 데이터를 기록·저장하는 자기저장장치가 개발됨으로써 현대 정보화 시대가 열렸다. 전자석 원리와 전자기 유도현상을 이용하라
지갑을 열고 신용카드를 꺼내보자. 신용카드가 없다면 현금카드도 괜찮다. 카드의 뒷면을 보면 검은 띠가 하나 있다. 이것이 자기테이프로 산화철 등의 자석가루가 발라져 검게 보인다. 카세트테이프나 하드디스크 같은 다른 자기기록매체들도 띠 모양이나 원판 모양의 플라스틱판에 자석가루가 발라져 있다. 그렇다면 이들 자기기록매체에 어떻게 정보를 기록하고, 기록된 정보를 다시 읽어낼 수 있을까? 자기기록매체에는 전자석의 원리와 전자기 유도현상이 이용된다. 기록을 할 때는 전자석 부근에 자기테이프를 지나가게 해 정보를 기록한다. 전류에 의해 생성된 자기장은 전류의 방향에 따라 자기장의 방향도 뒤바뀐다. 이때 자기테이프 표면에 발라진 자석가루가 극을 달리하며 자화된다. 결국 자화된 테이프는 N극과 S극이 엇갈려 있는 미세한 자석의 합이라고 볼 수 있다. 기록된 정보의 재생은 자화된 자기테이프를 전자석 부근에 지나가게 하고, 전자기 유도현상에 따라 발생한 전류를 감지시키면 된다. 이 같은 원리는 거의 모든 자기기록장치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녹음기로 시작한 자기기록장치
최초의 자기기록장치는 1898년 덴마크의 발데마르 폴센(Valdemar Poulsen, 1869~1938)이 발명한 텔레그라폰이다. 원통에 철사가 촘촘히 감겨있고, 이 철사에 자기로 음성을 기록·재생하는 녹음기다. 테이프리코더의 전신이랄 수 있는 장치로,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해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폴센의 텔레그라폰은 상품화에는 실패했다. 녹음의 질이 떨어졌을 뿐더러 재생할 때의 진동으로 잡음이 컸다. 게다가 한 시간 녹음을 위해서 수 킬로미터의 철사가 필요했다. 마그네토폰에 사용된 자기테이프가 녹음용이었다면 데이터 저장장치로 쓰인 첫 자기테이프는 1951년 레밍턴랜드사에서 개발한 유니서보(UNISERVO)다. 유니서보는 IBM에서 상업용으로 판매한 최초의 컴퓨터 유니백(UNIVAC-I)의 기억장치로 사용됐다. 이후 자기테이프는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기록?재생하고, 반복적으로 기록이 가능하다는 장점에 힘입어 데이터 저장장치로 각광받았다. 그러나 자기테이프에 저장된 특정 부분의 자료를 재생하려면 그 위치까지 테이프를 감아줘야 해 데이터를 찾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었다.
하드디스크 대용량의 일등공신 거대자기저항 하드디스크의 저장용량이 현재처럼 획기적으로 늘어난 데에는 두 번의 전환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IBM이 1991년 자기저항(Magneto Resistance, MR) 효과를 하드디스크 헤드에 응용하면서부터다. 자기저항이란 강자성체에 자기장을 가하고 전류를 흘려주면 자기장이 없을 때보다 전기저항이 커지는 현상이다. 이는 1850년대에 영국의 물리학자 윌리엄 켈빈(William Kelvin, 1824~1907)이 처음 발견했다. MR 헤드 기술 덕분에 1평방 센티미터 당 1Mb였던 하드디스크 저장용량이 금방 10배로 증가했다. 하지만 MR 하드디스크의 용량 확장은 두 번째 전환점인 GMR 하드디스크의 용량 폭발을 위한 격발 장치에 불과했다. GMR 효과는 200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독일 율리히연구소의 페터 그륀베르크(Peter Grunberg, 1939~) 박사와 프랑스 남파리대학의 알베르 페르(Albert Fert, 1938~) 교수가 1988년에 각각 독립적으로 발견했다. 이들이 발견한 것은 두 강자성층 사이에 금속층을 껴 넣으면(또는 강자성체와 반강자성체를 번갈아 붙인 박막) 외부 자기장의 세기가 조금만 변해도 전기저항이 크게 달라지는 현상으로, 그 저항차가 MR의 수십 배에 달했다. MR 앞에 ‘거대(Giant)’라는 단어를 덧붙여 거대자기저항(Giant Magneto Resistance, GMR)이라 명명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기장의 작은 변화에도 저항이 크게 달라진다는 사실은 그만큼 정밀한 하드디스크 헤드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GMR 헤드는 두 개의 강자성층 사이에 금속층을 껴 넣은 구조를 사용한다. 이 덕분에 하드디스크에서 1평방 센티미터 당 저장용량이 곧장 100Mb 정도로 높아졌다. 현재는 100배 수준인 10Gb에 이른다. 1997년 IBM이 GMR 헤드를 장착한 하드디스크를 첫 출시한 이래 하드디스크의 용량은 급격히 증가해 테라바이트를 넘게 됐다.
최근에 과학자들은 RAM의 고속기록재생 속도와 하드디스크의 큰 저장용량의 장점을 모두 가진 ‘유니버설 메모리’를 생각하게 됐다. 유니버설 메모리의 후보 중 가장 유력한 것은 MRAM(Magnetic RAM)이다. MRAM은 GMR에 바탕을 둔 터널링 자기저항 효과를 응용했다. 터널링 자기저항 효과는 두 개의 강자성층 사이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층을 끼워넣은 구조에서 나타난다. 한쪽 강자성체에 있는 전자가 양자역학적 현상인 터널링으로 절연층을 통과해 다른 쪽 강자성체로 이동할 때 나타나는 자기저항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다.
[용어사전] 글 / 이재일 인하대학교 물리화학부 교수 jilee@in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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