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공학분야 20세기 이후 10대 사건 9]
상하수도, 인간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리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세계의 과학자들은 인류의 위대한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 20가지를 꼽은 적이 있다. 그 중에는 전기, 항공기, 자동차 등이 있었는데,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이 상하수도였다. 장티푸스, 콜레라, 이질 같은 불결한 환경에서 전파되는 수인성 전염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평균수명을 30~40년 연장하는 데 공헌했다는 게 이유였다.
물을 정복한 로마제국
인간이 인공적으로 물을 구한 최초의 상수 시설은 우물이다. 이집트인들은 기원전 3000년경 이미 우물을 팠다. 아프리카 북동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누비아 우물은 기원전 2000년경에 축조된 우물이며, 이집트 카이로의 깊이 90미터짜리 요셉 우물은 기록으로도 남아있다. 우물에 이어 만들어진 것은 수로다. 카나트라고 하는 일종의 지하수로는 우물과 수로로 구성돼 있으며, 기원전 1240년경 아시리아에 건설됐다. 이런 카나트 덕분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카나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란,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가장 오래된 댐도 발견됐다. 와티 게스라워 골짜기에서 발견된 댐은 폭이 약 81미터, 길이 111미터에 이르는 돌로 쌓은 댐이다. 이처럼 일찍이 문명을 일으켰던 곳에서는 이와 같은 여러 유적들이 발견됐다. 우물과 수로, 저수지와 댐 등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찾기 위한 고대인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그림 1 로마시대의 수도교. 사진제공: 위키피디아 |
체계적으로 상수도 시설이 만들어진 건 로마제국에 이르러서다. ‘물의 도시’라는 명칭답게 로마인들이 만든 정교한 수로는 현대 토목기술로도 이루기 힘든 대단한 위업이다.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물을 운반해 왔으며, 100만 명 이상의 로마 시민이 먹고 씻었다. 분수까지 만들어 즐길 정도로 물은 충분했다. 기원전 312년 로마 최초의 수도이자, 세계 최초의 수도인 아피아 수도가 탄생한다. 로마의 정치인 아피우스 클라우디스에 의해 건설된 이 수도는 총 길이가 16.6킬로미터로, 그중 지하로 뚫린 길이만 16.5킬로미터다. 이후 로마제국 시절에 건설된 수도는 모두 열한 개. 수도관 길이만 578킬로미터에 이른다. 아델(Aedele)이라는 수도, 도로, 목욕탕을 관리하는 공무원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당시 로마 시민들에게 공급됐던 물은 하루 한 사람당 평균 190리터 정도. 1리터 병, 190개에 달하는 꽤 많은 양이다.
로마의 수도 시설은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잊혀졌다. 상수도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제국이 멸망하면서 이를 감당할 능력 역시 사라진 것이다. 그 결과 수도는 쇠퇴했다. 중세 암흑기를 지나 12세기에 들어서야 일부 수로의 건설이 행해졌다. 1527년에는 독일의 하노버에서 수도에 처음으로 펌프가 사용됐지만 18세기까지 수도의 발달은 미비했다.
탁한 물을 맑은 물로 만드는 여과법
16세기에 들어오면서 유럽은 늘어나는 인구로 물이 부족해졌다. 유럽의 여러 나라 중에서도 발전 속도가 가장 빨랐던 영국은 더욱 심각했다. 그 결과 영국은 수도 시설을 발전시켜야만 했다. 영국 런던에 처음으로 수도 시설이 설치된 건 1582년. 이후 1619년에는 최초의 상수회사인 뉴리버사가 설립됐다. 파이프라인 연결망을 통해 각 가정에 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뉴리버사는 수도 파이프를 목관에서 주철관으로 교체했다. 1761년에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펌프를 설치해 더 먼 곳에서 깨끗한 물을 끌어올 수 있었다.
 그림 2 첼시수도회사의 증기펌프가 템스강으로부터 물을 끌어올리고 있다(1752년) |
물의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근대적인 정수처리 방법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반이다. 영국의 첼시수도회사는 물을 하루 5미터 이내로 천천히 모래층에 통과시켜 깨끗한 물을 만드는 완속여과법을 개발해 1829년 런던 템스 강에서 처음으로 시행했다. 당시에는 세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여과의 목적은 물을 탁하게 만드는 물질을 제거하는 데 그쳤다. 이 여과법이 상수도 역사의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음은 반세기가 지나서야 밝혀진다.
1829년부터 번지기 시작한 콜레라는 순식간에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콜레라가 대유행한 후 그 원인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고,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마시는 물로 감염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과된 물을 마신 지역에서는 사망자가 훨씬 적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를 실험적으로 확인한 사람은 영국의 화학자 에드워드 프랭크랜드(Edward Frankland, 1825~1899)로, 1885년 완속여과된 물속의 박테리아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현미경을 통해 확인했다. 완속여과법은 장치가 비교적 간단하고, 유지하는 비용 역시 저렴했기 때문에 유럽의 여러 나라로 급속히 확대됐다.
1884년에는 미국의 하얏트(A. Hyatt)가 황산철을 사용한 급속여과법으로 특허를 획득하고, 같은 해 뉴저지주의 썸머빌에서 급속여과지가 최초로 만들어졌다. 이 방법은 완속여과법에 비해 여과 속도가 10배 이상 빨랐다. 그렇기 때문에 인구가 많아 대량의 물을 빨리 정수 처리해야 하는 대도시의 정수장에 적합했고, 현재에 이르러 대부분의 정수장에서 사용되는 시스템이 됐다. 급속여과법은 완속여과법에 비해 물에 녹아있는 미량의 불순물이나 악취를 제거하는 데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물에 녹아있는 여러 성분과 냄새를 없애주기 위해 오존 처리나 활성탄 흡착 등의 고도정수 처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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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박멸의 일등공신, 염소
물을 정수하는 최종 단계는 병원성 세균을 살균하는 소독 단계다. 도시 상수도는 정수장에서 가정까지 수 킬로미터의 관을 통해 물이 공급되므로, 운반 도중 2차 오염이 생길 우려가 있다. 이런 이유로 정수장에서는 물을 내보내기 전 살균 소독을 철저히 한다. 살균 방법으로는 주로 염소와 오존을, 기타 방법으로 자외선을 쓴다.
 그림 3 현대적인 상수도 시설_물을 여과하고 염소를 투입한다. 사진 제공 : 동아일보 |
정수 처리에 먼저 이용된 것은 오존이다. 1785년 독일의 반 매럼(Van Marum, 1750~1837)이 처음 발견했고, 1801년 프랑스의 크뤽샹(Cruickshank)이 물을 전기분해하면 발생하는 가스에서 특이한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886년에는 프랑스의 드 메리땅(De Meritens)이 오존을 발생해 곰팡이, 박테리아와 같은 세균을 살균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오존은 강력한 산화력으로 물속에 있는 미세한 유기물질을 제거하고, 세균을 살균할 수 있다. 게다가 염소 살균 시 발생하는 염소계 화합물도 만들지 않는다. 1893년에 네덜란드 정수장에 오존에 의한 고도정수 처리가 처음으로 도입된 후 오존의 수요는 급속히 증가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중 저렴한 비용의 염소가스가 개발되면서 오존의 수요는 감소했다.
염소 소독은 현재 상수도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독 방법이다. 최초의 염소 소독은 벨기에에서 1902년 실시됐다. 염소 소독의 장점은 수돗물에 오래 잔류해서 수도관으로부터 침투하는 세균을 지속적으로 제거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경제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염소 소독은 전 세계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염소 소독을 하면 염소가 유기물과 결합해 트리할로메탄(THM)이라는 발암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원수에 가능한 한 유기물이 적게 나오도록 상수원의 수질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 가끔 하얀빛을 띄는 수돗물이 나온다. 이를 염소라 종종 오해하는데, 실은 물속에 산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집안과 밖의 온도차가 커 산소가 물 외부로 나오려는 성질이 강해질 때 자주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자외선은 강력한 살균 작용이 있지만 너무 비싸고, 소독 후 다시 원수가 오염될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정수장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상수처리만큼 중요한 하수처리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상수도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획기적인 변화를 맞았다. 단순히 물을 공급하는 시설에서 벗어나 정수의 기능을 갖춘 중요한 위생 시설이 됐다. 하수도 시설 역시 마찬가지. 19세기 초 수세식 화장실과 하수도와의 접속이 시작됐고, 콜레라 유행을 계기로 대규모의 하수도가 건설됐다. 1870년경부터는 하수를 황야지에 유입시켜 미생물로 오염된 하수를 정화하는 관개법이 등장했다. 1914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활성오니법에 의한 하수처리장이 건설된 이래, 이 방법은 가장 진보된 방법으로 인정돼 현재까지 대부분의 하수처리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림 4 생활 오폐수를 처리하는 하수처리장. 사진제공 : 동아일보 |
상하수도는 도시를 청결하게 유지해 인간의 평균수명을 30년 이상 늘리는 엄청난 효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상하수도 시설을 건설하고 유지·관리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는 점이다. 로마제국이 멸망하자 그들의 우수했던 시설이 붕괴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상하수도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물질의 흐름을 순환시키는 데 있다.
예를 들면 하수에서 발생한 영양염류들을 하천에 버리기보다는 음식물의 재배에 이용하는 것. 이를 이용하면 화학비료의 사용을 줄일 뿐 아니라 하천으로 방류되는 오염물질도 줄일 수 있다. 이처럼 수질 오염을 감소시키는 노력이야말로 상하수도 관리 비용을 절감하고 환경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미래지향적인 현대식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기 위해 IT(정보기술), BT(생명공학기술), NT(나노기술) 등을 접목시키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또한 지금은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용어사전]
*수인성 전염병 물이나 음식물에 들어 있는 세균에 의해 전염되는 병. 이질, 장티푸스, 콜레라 등이 대표적.
*활성탄 높은 흡착성을 지닌 탄소질 물질. 색소나 냄새 따위를 잘 빨아들인다.
*오존 산소 원자 3개로 이뤄진 푸른빛의 기체. 특유한 냄새가 나며, 산화력이 강해 산화제, 표백제, 살균제로 쓴다.
*활성오니 하수처리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진흙탕 모양의 물질. 물속의 물질을 분해하는 능력이 있다. | |
[교육팁] 간이정수기를 만들어보고, 물의 여과 과정에 대해 이해한다. * 준비물 : 숯, 모래, 자갈, 거즈, 고무줄, 물약 통 큰 가위로 물약 통의 윗부분을 잘라낸다. 거즈로 물약 통의 구멍을 감싸고, 고무줄로 단단히 묶는다. 숯, 모래, 자갈을 차례로 물약 통 속에 넣어주고, 앞의 방법대로 한 번 더 채운다. 흙탕물을 간이정수기에 붇고, 어떤 물이 나오는지 그 결과를 설명한다.
[교육 과정] - 초등학교 3학년, 흙을 나르는 물 - 초등학교 4학년 과학, 강과 바다 - 초등학교 4학년 과학, 물의 여행 - 초등학교 4학년 과학, 혼합물 분리하기 - 중학교 2학년 과학, 혼합물의 분리 - 중학교 2학년 기술·가정, 자원의 활용과 환경 - 중학교 3학년 과학, 물의 순환과 날씨 변화 | 글 / 한무영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myhan@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