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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리오퀴리부부(Jean Frederic Joliot-Curie)

작성일 2010-08-23

1900~58, Irene Joliot-Curie 1897~1956 프랑스의 부부 물리학자. 프레데리크 졸리오는 25년 파리 대학 라듐연구소에서 마리 퀴리 부인의 실험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퀴리 부인의 장녀 이렌 퀴리는 이미 조수로 일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26년 10월에 결혼했다.

두 사람은 중성자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연구, 선에 의한 전자쌍(電子雙) 생성의 연구 등 을 했으며, 34년에 폴로늄의 선을 이용, 처음으로 인공방사능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부는 이 업적으로 35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부부가 2대에 걸쳐 노벨상을 수상한 예는 이들 외에 없다.

이렌은 38년 P. 사비치와 함께 우라늄을 중성자로 조사(照射)했을 때 생기는 방사능 속에 화학적으로 희토류(稀土類)와 비슷한 것이 있음을 발견했으나 초우라늄 원소가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했기 때운에, O. 한 등이 핵분열의 발견자가 되었다.

이 핵분열 반응에 강한 관심을 갖고 실험을 해 온 프레데리크는 39년 4월에 핵분열로 발생하는 중성자 수를 측정. 핵분열의 연쇄반응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5윌에는 알뱅·쿠아르스키·페랭 등과 연명(連名)으로 원자로의 제조와 이용에 관한 5가지의 특허를 신청했다.

이것은 오늘날의 천연우라늄 중수형(重水型) 원자로와 다른 바가 없다.

9월에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10월에 과학 아카데미 앞으로「우라늄을 함유하는 물질 중에서의 무한연쇄핵반응(無限連鎖核反應)을 일으키는 가능성」이라는 표제의 봉인서한(封印書翰)을 제출했다.

48년 12월에는 프랑스 독자적으로 설험용 원자로 조에(ZOE)를 완성시켰다.

전쟁 후에는 국제적으로도 활약, 50윌 3월에 평화옹호 세계대회 위원회 제3차 총회에서 원자무기의 무조건 생산금지를 요구하는「스톡홀름 어필」의 제창자의 한 사람이 되었으며, 55년 7월에 발표된「러셀-아인슈타인 선언」에도 연명으로 참여했다.

이렌은 1956년 3월, 어머니와 같은 백혈병으로 사망했는데, 오랜동안 방사선을 다루는 연구에 종사했고, 제1차 세계대전중에 어머니와 함께 군대의 X선진료반에서 일했던 것이 그 원인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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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species) 201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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