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

원인(猿人)의 단계에 속하는 초기의 화석인류. 지금까지 다수의 표본이 발견되어 인류진화상의 지위가 확고해졌으나 발견 초기에는 4반세기 동안이나 무시되었다.
1924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의 위트워텔슬렌드 대학 해부학 교수 R. 다트는 베추어널랜드(보츠와나)의 타웅 석회암 채석장에서 출토된 유년두골(幼年頭骨)을 입수하고 바로 이것이 사람과 유인원(類人猿)을 결부시키는 믹싱링크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아프리카 남쪽의 원숭이」라는 의미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당시의 권위자들은 이를 부정했다.
고생물학자 R. 브롬은 다트의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남아프리카 각지에서 발굴을 거듭하여 같은 종류의 표본을 많이 입수했다.
그 결과 45년 전후부터 세계적으로 재검토되어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屬) 외에 파란트로푸스속도 설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들이 다시 동일속(同一屬)으로 정리되었다.
전자는 화사형(華奢型)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라 하고, 후자는 강건형(强健型)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라고 한다.
또 속과 종이 구별되지 않아 각기 A타입 · P타입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59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올두바이 계곡에서 남아프리카의 루이스리키와 메리 부부가 진잔트로푸스 보이세이를 발견하고, 이어서 이듬해에 그보다 진보된 골격을 발굴하여 그 진보성이 인정됨으로써 호모하빌리스라고 명명되었다.
전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에 들어갈 수 있으나 후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넣을지 호모속에 넣을지 결정하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리키 부부의 아들 리처드 리키 등은 동아프리카의 대지구대(大地溝帶)에서 다수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의 화석을 발견했다.
79년 미국의 D. C. 요한슨은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저지에서 출토된 것과 탄자니아의 라에트리에서 출토된 뼈를 정리하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라는 종(種)을 제창하고 이것을 최원시종(最原始種)으로 내세웠는데,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와 같이 많은 종이 있기 때문에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의 특징을 일괄하여 말하기는 어려우나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① 직립자세(直立姿勢)를 취한다는 점. 이것은 골반을 형성하는 관골(-骨)이 다수 출토되었으며 유인원의 그것과는 달리 장골익(腸骨翼)이 넓어 상반신을 지탱하기에 적합하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밖에 두개저(頭蓋底)의 형태나 사지골(四肢骨)에서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② 두개용량(頭蓋容量)은 평균 500ml가 약간 넘으나 현생인류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고 고릴라와 거의 같다.
하빌리스는 700ml 이다.
③ 위아래 턱뼈 등 저작기(咀嚼器)는 매우 튼튼하고 크며 특히 로부스투스나 보이세이가 현저하다.
뇌두개(腦頭蓋)의 저작근 부착부를 넓히기 위해 두정부(頭頂部)에 전후방향으로 시상릉(矢狀稜)이 형성되어 있다.
④ 치아는 크고 특히 어금니가 큰데, 치관(齒冠)이 둥글게 생겼다.
그러나 송곳니가 현저히 퇴축(退縮)되고 엄니가 되지 않은 것은 유인원과 다르다.
또 치열궁(齒列弓)도 포물선상으로 되어 있어 유인원의 ㄷ자형과 분명히 구별된다.
또 송곳니가 엄니를 이루고 있는 유인원의 경우는 측절치(側切齒)와 송곳니 사이에 간격이 있는데, 그것도 볼 수 없다.
50년대에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직립자세를 취하고 직립하여 두발로 걷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들이 인류이냐 유인원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다.
그러나 진잔트로푸스의 발견과 함께 매우 조잡한 역석기(礫石器)가 출토되었다.
그 후 그것은 하비릴스에 속한다는 정정 의견도 나왔으나 어쨌든 이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문화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었으며 후에 다수의 석기가 발견되어 인류임이 확실해졌다.
그 생존 연대는 여러 측정값이 나와 있으나 대체로 300만 년 전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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