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구조론(theory of molecular structure)

분자의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 또는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 〔역사〕 이탈리아의 A. 아보가드로가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분자가 존재하리라는 분자설을 제창한 1811년 당시에는 아직 분자의 구조에 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제시되지 않았다.
두 분자의 수소와 한 분자의 산소가 반응하여 한 분자의 물을 만들 때 분자구조의 최소단위는 수소와 산소에 대해서는 2원자분자이고, 물에 대해서는 3원자분자이다.
수소와 산소의 분자구조는 원자간 결합길이의 길고 짧은 차이는 있어도 직선상의 구조 이외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당시의 관측수단으로는 물분자 구조가 H-0-H인지, H-H-0인지, 그리고 이들 세 원자가 직선상이 되는지, 굴곡되어 있는지를 구별할 수 없었다.
1823~24년에 걸쳐 독일의 F. 뵐러와 J. 폰 리비히는 HCNO의 조성(組成)을 가지지만 성질이 다른 산의은염(銀鹽)을 각기 독자적으로 합성했다.
그 당시 두가지 합성 결과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교환되었으나 결국 그것은 시안산(HOCN) 및 풀민산(HONC)의 염인 것이 판명되었다.
이는 이성질체가 처음으로 확인된 예이다.
이 중에는 또 하나의 이성질체 이소시안산(HNCO)도 존재한다.
이성질체의 존재는 분자에서 원자의 결합순서 차이 또는 입체적 배열 차이에 화학자들의 눈을 돌리게 했다.
19세기 중엽에 결정의 광학적 성질과 구성분자의 구조의 관련성이 연구되어 한때는 결정의 외형에 나타나는 대칭성은 분자 구조의 대칭성을 직접 반영한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분자는 반드시 4개 이상의 원자가 3차원적으로 집합한 구조를 가진다고 여기게 되었다.
이런 생각은 프랑스의 L. 파스퇴르가 자연분정(分晶)한 타르타르산염의 결정을 거울상체(對掌體)의 형태적 특징에서 D-타르타르산염과 L-타르타르산염으로 분리하고 각 광회전성을 밝힌 사실 때문에 한때는 그럴듯하게 설명되었다.
또 이에 근거하여 네덜란드의 J. H. 반트호프와 프랑스의 J. A. 르벨은 유기화합물에서 탄소원자의 결합은 탄소원자가 정사면체의 꼭지점 방향에 있다는 탄소원자의 사면체 모형을 제안했다.
독일의 A. 케쿨레는 벤젠 분자가 정육각형의 탄소원자 골격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E. 피셔의 당류 연구는 지방족 탄소의 정사면체형 구조를 강력히 뒷받침하고 벤젠의 6원자고리 구조도 많은 연구를 통해 지지되었다.
1893년부터 20세기 초엽에 걸쳐 스위스의 A. W. 베르너는 금속착물의 입체배위구조를 광학이성질현상과 관련시켜 밝힘으로써 분자구조를 원자의 1~3차원 배열로 표시하는 기초가 굳혀졌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분자구조를 직접 측정하는 수단이 없어 모든 것은 가설에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화학자들의 그러한 가설 대부분은 훗날 검증과정을 거쳐 옳았다는 것이 증명 되었다.
〔분자구조론의 발전〕 분자구조의 이해에는 먼저 그 기하학적 구조, 다시 말하면 결합길이와 결합각을 아는 것이 우선인데, 물질의 물리·화학·생물적 성질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핵 및 전자의 운동 또는 에너지 상태가 관여하는 동적 거동을 해명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많은 측정법이 그 목적을 위해 개발·개량되어 가고 있다.
그러한 실험과학적 수단이 발전하는 한편 고속 컴퓨터의 발전은 양자역학 이론에 의한 분자구조를 직접 계산하는 길을 열었다.
특히 몰레큘러 그래픽(molecular graphic)이라는 컴퓨터 화상처리는 실측된 것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 생각될 수 있는 분자구조까지도 3차원 입체화상으로 그려낼 수 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화학반응성이나 약리작용 등의 분자기능을 예측해서 설계된 분자를 합성하는 분자설계 합성이 한층 발전했음은 물론 분자생물학·유전자공학 등의 복잡한 분자구조를 가진 계의 입체분자 구조도 비교적 쉽게 해명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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