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

1514~1564 벨기에의 해부학자 · 외과의사. 브뤼셀에서 의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1533년 파리 대학에 입학하여 F. 실비우스와 J. 권테르(1505~74) 둥에게서 의학을 배웠다.
당시의 파리 대학은 인체해부가 허가된 극소수 대학 중 하나였으나 실제의 해부는 신분이 낮은 이발의사(理髮醫師)에게 맡기고 교수 자신은 직접 집도하지 않고, 옆에서 갈레노스 등의 고전 강석(講釋)만 하는 실태였다.
베살리우스는 36년 고향에 돌아와 인체를 해부할 귀중한 기회를 얻었고, 또 비합법적으로 입수한 유골을 연구하는 등 해부학에 숙달해졌다.
37년 당시 의학의 최고학부인 이탈리아의 파도바 대학에 유학하여 그해 12월에는 학위를 취득하고 23세의 젊은 나이로 해부학과 외과교수로 임용되었다.
38년에는 《해부학 육도(六圖)》를 출판했다.
파도바에서는 정력적으로 인체와 동물의 해부학적 연구를 하여 43년 《파브리카(Fabrica)》라는 《인체의 구조에 관한 7가지 책》, 그 요약본인 《경개(梗槪)》 (《메피토메》)를 출판했다.
《파브리카》는 획기적인 해부학서로 의학계에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같은 해에 간행된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와 함께 과학혁명의 횃불로서의 역할도 했 다.
《파브리카》를 간행한 후 그는 볼로냐와 피사 등지에서 공개 해부를 하여 절찬을 받았고44년부터는 신성로마 황제 칼 5세의 시의가 되고, 그의 아들인 에스파냐 왕 펠리페 2세의 전의(典醫)가 된 후에는 해부학 연구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성지 예루살렘 여행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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