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헨리크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

[요약] 노르웨이 수학자로 ‘아벨의 적분’, ‘아벨의 정리’, ‘아벨방정식’, ‘아벨군’ 등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많은 수학 용어가 그의 이름을 따서 불린다.
1802~1829 노르웨이의 수학자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펀드에서 태어났다. 1815년에 수도 크리스티아니아(지금의 오슬로)의 중 크리스티아니아 대학을 졸업했으나 재학 중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생활이 어려웠다. 24년《일반의 5차 방정식을 풀 수 없음을 증명한 대수방정식에 관한 논문》을 자비로 출판했다. 차수(次數)가 주어 진 방정식 속에서 대수적으로 풀 수 있는 것을 모두 찾아내는 일과, 주어진 방정식을 대수적으로 풀 수 있는지의 여부를 정하는 일의 두 가지를 다룬 것이다. 그러나 K. F. 가우스가 1799년에 「모든 대수방정식은 풀 수 있다」고 증명했으므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벨은 25년 독일에 유학했으나 5차방정식의 논문을 인정하지 않는 가우스가 있는 괴팅겐을 피해 베를린으로 갔다. 거기서 수학자라기보다 정부의 요인으로 젊은 수학자들에게 살롱을 제공하고 있던 A. L. 크렐레를 알게 되었다. 26년 파리로 옮겨간 아벨은 타원적분(楕圓積分)이 정의하는 함수의 역함수를 생각하고 이것이 이중주기(二重周期)를 가진다는 것을 제시하여 타원함수를 도입했다. 같은 해 10월 10일 과학 아카데미에 이것을 확장한 논문을 제출했으나 인정받지 못했다. 27년에 귀국한 아벨은 빈곤과 싸우면서 타원함수와 대수방정식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후자의 연구에서 가환군(可換群)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처음으로 도입한 연구자의 이름을 붙여 아벨군(群)이라 한다.
29년 1월에 선병이 악화되어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자 파리에서 발표하지 못했던 대수함수에 관한 「아벨의 정리」를 증명하는 논문을 써 베를린의 크렐레에게 보냈다. 이후에 그의 업적은 수학계에 알려져 높이 평가되었으나 젊은 나이로 생애를 마쳤다. 그의 이름은 「아벨의 적분」 「아벨의 정리」 「아벨의 방정식」 「아벨군」 등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수학 용어 속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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