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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대로 가상현실AI

작성일 2020-02-25

[과학기술 정보통신부 장관상]

김보미

김성자씨는 손을 마주 비볐다. 잔뜩 긴장했을 때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올해 70세인 김성자씨의 잇몸은 몹시 붓고 피 까지 나는 상태였다. 그러나 선뜻 치과에 가지 못하고 있었다. 예전과 다른 요즘의 무인의료시스템이 고령의 김성자씨를 두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몇 십 년간 보험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해온 김성자씨는 스스로가 외형적이고, 도전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런 데 은퇴와 동시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신감이 없어지자 우울증이 찾아왔다. 결국 치과 에 가는 것조차 미룰 정도로 바깥세상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고령자들의 이러한 정서적 어려움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최신형 AI 원하는대로는 특정 긴장 상황을 가상현실로 만들 어낸다. 고령자들이 가상현실에서 위축되거나 두려운 상황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많은 사람 들이 가상현실을 통해 우울증과 같은 정서적인 병을 이겨내고 있었다.

AI는 김성자씨를 편안한 의자에 앉도록 했다. 가상현실이 시작된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김성자씨는 AI가 건넨 가상현 실 전용 헬멧을 썼다. 그러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김성자씨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큰 딸 은애씨였다.

김성자씨는 떨리는 손으로 치과 입장 버튼을 눌렀다. 의료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김성자씨가 다시 두 손을 비볐다. 그 러자 AI의 모니터에 김성자씨의 안면근육 긴장상태가 급격하게 상승곡선을 그렸다.

은애씨는 부드럽게 김성자씨의 팔짱을 꼈다. 큰 딸의 익숙한 스킨십에 김성자씨는 곧 마음이 편안해졌다.

“엄마, 손목혈관을 여기에 먼저 대고, 그 다음엔 눈동자를 여기에 대면 엄마가 어떤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가 화면에 뜰 거예요.”

딸의 따뜻한 목소리에 김성자씨가 손목 혈관을 스캐너에 댔다. 1차 스캔이 끝난 후, 홍채 스캔까지 마치자 그간 김성자 씨의 의료기록과 현재 상태가 화면에 떠올랐다. 김성자씨는 치은염을 앓고 있었다. 그녀는 발밑에 켜지는 화살표 모양의 LED를 따라 지정된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로봇이 치료를 시작했다. 김성자씨는 입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에 집중했다. 가상현실이지만 꼭 진짜 치료를 받 는 것 같았다. 그녀는 치료가 끝나자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헬멧을 벗 자, 혼자서 치과에 갈 용기가 생겼다.

다음날 아침, 김성자씨는 가상현실에서 연습한대로 무사히 혼자 치과에 다녀왔다. 그 동안 자식들에게 동행을 요구할 때마다 어쩐지 서글프고 의기소침했는데 그런 느낌이 없어 한결 기분이 좋았다.

가상현실을 통해 연습을 한 것이 충분히 효과가 있다고 판단되자, 김성자씨는 다시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 다. 김성자씨의 전담 복지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의 영양상태를 점검하는 일을 권했다. 고령자들을 위한 일자리인데다 김 성자씨가 워낙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김성자씨는 자신이 영양상태를 기록하는 단말기나 카드리더기 같은 낯선 기기를 다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계속 거절해왔다. 자꾸만 스스로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할머니로 제한해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보지 않은 일이 두려웠고, 체력이 떨어짐에 따라 마음도 약해졌다.

그러나 치과진료에 성공하자, 가상현실을 통해 계속 연습하면 일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김성자씨가 심리 상태가 변화하자, AI가 김성자씨에게 원하는 가상현실에 대해 질문했다. 곧 김성자씨가 직업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가상현실이 만들어졌다.

헬멧을 쓴 김성자씨는 막내 손자 현석이 보이자 덥석 안아들었다. 멀리 떨어져 사는 바람에 자주 보지 못해 늘 보고 싶 은 녀석이었다. 현석은 그녀의 품 속에서 버둥거리다 모니터 뒤로 사라졌다. 김성자씨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모니터로 현석이가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모니터 한 쪽에 현석이의 건강상태와 영양 상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있었다. 체지방량이 약간 높다는 결과가 나오 자 모니터에서 주의 표시가 떴다. 이러한 주의표시를 모아 학교 측에 전달하는 것이 김성자씨가 해야 할 일이었다.

김성자씨는 현석이의 동그란 얼굴을 보며 힘을 냈다. 부끄럽지 않은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 집중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 는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곧 맡은 일이 끝났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김성자씨는 치과에 가기 전처럼 몇 번이 고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가상현실을 통해 일에 익숙해진 김성자씨는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업무 강도도 세지 않아 무척 만족스러웠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자 김성자씨는 젊은 날 느꼈던 성취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녀는 고령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활기찬 걸음으로 마트 전용 지상철에 탑승했다.

큰 딸 은애씨가 가족들과 함께 김성자씨를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에 장을 봐야 했다. 김성자씨는 마트에 가는 동안 잠깐 가상현실을 통해 손녀가 갖고 싶어 했던 게임기의 사용법을 익혔다. 졸업선물로 준비한 게임기의 사용법을 직접 알려주 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에서 게임기를 만지는 김성자씨의 손길에 자신감이 가득 했다. 연습하면 얼마든지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회로 다시 복귀하는 동안, 심각한 정도였던 우울증과 무력증도 조금씩 차 도를 보였다.

그 날 저녁, 김성자씨의 집에서 밤늦도록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손녀는 김성자씨의 선물을 손에서 놓을 줄 몰랐 다. 김성자씨가 직접 사용법을 알려주자, 그 익숙한 손놀림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녀는 손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가족들은 지난 몇 년 간 두문불출 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던 김성자씨가 활기찬 노후를 보내는 것 같아 안심했다. AI 는 그러는 동안에도 김성자씨의 감정 상태를 면밀하게 기록했다.

내일은 실버타운에서 주최하는 음악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가족들이 돌아가면 김성자씨는 가상현실을 통해 음악회에 서 낯선 사람들과 교류를 나누는 연습을 충분히 할 것이다. 그녀는 그 곳에서 또래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 했다.

그녀가 원하는 음악회 가상현실을 만드느라 분주한 AI 뒤로 다시 한 번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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