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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암스트롱, 달 표면에 발을 디디다!

작성일 2010-06-06

  [항공우주천문분야 20세기 이후 10대 사건 2]

닐 암스트롱, 달 표면에 발을 디디다!

 

수백 년 전만 하더라도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간다는 것을 상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류에게 우주는 단지 바라만 보던 동경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낭만을 느끼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다. 천문학이 발달하고 우주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부터 인간은 우주를 그저 바라만 보는 세계로 남겨두지 않았다. 백여 년 전부터 우주여행을 다룬 SF 소설이 등장했고, 인류는 서서히 우주로 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1957년, 구소련이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1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면서부터 이전까지 바라만 보던 우주는 새로운 탐험의 세계로 바뀌었다. 그리고 1969년 7월, 드디어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 1930~)이 달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우주를 향한 인류의 본격적인 도약이 시작됐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은 단순히 개인과 한 나라의 영광이 아닌, 인류가 지구 이외의 다른 천체에서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엄청난 사건이었다. 또한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성공은 우주 개발을 더욱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이후 축구장 두 배 크기의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우주에 건설되고, 수천 대가 넘는 인공위성이 발사되며 우주를 새로운 생활 무대로 바꿔 버렸다. 또한 현재는 달과 화성에 인간이 살 수 있는 기지를 건설할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암스트롱의 달 착륙은 우주시대로 나아갈 수 있는 자신감을 인류에게 안겨준 역사적 사건으로, 항공우주천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 중 하나로 기억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구소련과 미국의 우주개발

1957년 10월 4일, 이날은 바로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가 쏘아 올려진 역사적인 날이다. 러시아말로 ‘길동무’를 뜻하는 스푸트니크 1호는 지름 58cm, 질량 84kg으로 구소련이 새롭게 개발한 R-7 로켓에 의해 발사됐는데, 우주를 비행하는 스푸트니크의 모습을 지구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인공위성은 1957년 세계가 정한 국제적인 지구 관측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 발사됐다. 스푸트니크의 발사는 미국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구소련은 이를 통해 세계 제 1의 우주 강국이라는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이 사건을 가리켜 미국은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뒤이어 1961년 4월 12일, 구소련은 또다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사건을 만들었다. 바로 인류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 소령을 태운 보스토크 1호를 발사해, 지상 327km의 타원 궤도를 따라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무사히 귀환한 것이다.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에 충격을 입은 미국은 폰 브라운 박사를 주축으로 1958년 1월 21일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고 몇 달 후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설립, 본격적인 우주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구소련의 가가린 소령이 최초의 우주 비행을 성공하자 미국은 전 국민이 실의에 빠질 정도로 큰 충격을 입게 된다. 이것은 자유진영을 대표하는 세계 최강 국가로서의 미국의 자존심이 결코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가린의 우주 비행이 있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5월 5일, 미국은 앨랜 세퍼드를 태운 머큐리 3호(프리덤 호라고도 함)의 발사에 성공한다. 앨랜 세퍼드는 15분간의 비행 후에 무사히 대서양으로 귀환해 미국 최초의 우주인이 됐다. 비록 머큐리 3호가 보스토크 1호보다 낮은 고도인 186km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가가린으로 인해 상처받은 미국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달 착륙을 계획하다

머큐리 3호 발사 이후,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국민들의 열광에 힘입어 1961년 5월 25일 러시아에 꺾인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원대한 포부를 발표한다. “미국은 1960년대가 끝나기 전까지 인간을 달에 보내고 다시 지구로 무사히 귀환시킬 것입니다. 비록 이것은 힘든 일이지만 우리는 이 길을 선택하고 해 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폴로 계획의 시작을 알리는 발표였다. 아폴로 계획은 미국 국민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고, 미국의 우주 개발 목표는 달에 가기 위한 것으로 확실히 정리됐다. 이때부터 미국과 구소련은 누가 먼저 달에 갈 수 있느냐를 놓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미국은 인간을 달에 보내기 위한 1단계 사업으로 제미니 계획을 추진했다.제미니 계획의 목표는 확실했다. 바로 달 탐사를 위한 준비 작업이라는 것이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오랜 비행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을 알아보고, 귀환할 우주선과 달 착륙선의 도킹(우주선이 우주 공간에서 다른 비행체에 접근해 결합하는 일) 기술을 익히는 것, 지구로 귀환할 때 대기권과의 마찰열을 견디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포함됐다. 물론 우주인들의 우주 유영 기술이나 여러 가지 과학 실험도 준비됐다.

제미니 우주선은 머큐리 우주선을 개량해 만들어졌다. 제미니 우주선은 과거의 우주선과 달리 세계 최초로 스스로 궤도를 변경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1966년 3월, 닐 암스트롱을 태운 제미니 8호 우주선은 우주에서 위성과 도킹에 성공하는 세계 최초의 성과를 이뤄냈다. 미국은 제미니 계획을 통해 총 10대의 유인 우주선을 발사해 달 여행을 실험했고, 미리 달을 탐사하기 위해 여러 대의 무인 탐사선을 달로 보내는 계획도 꾸준히 진행시켰다. 1964년 레인저 7호가 최초의 달 사진을 촬영한 것을 시작으로 1966년부터 발사된 서베이어 탐사선들은 5차례에 걸쳐 무사히 달에 착륙해 달 표면을 조사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달로 보내진 5대의 루나 오비터 탐사선들은 달 궤도를 돌면서 달 표면의 정밀한 사진들을 찍었다.

 

인류의 달 착륙, 아폴로 계획 시작

1966년 11월, 제미니 12호의 발사를 끝으로 미국은 제미니 계획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유인 달 탐사를 위한 아폴로 계획을 시작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기 마련이다. 1967년 1월 지상 실험을 하던 아폴로 1호 우주선에서 화재가 발생해 3명의 우주 비행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후 미국은 길이 110m에 이르는 거대한 3단형 로켓 새턴 5호를 개발해, 인간의 달 착륙을 위한 계획을 꾸준히 진행시켰다. 최초의 유인 아폴로 우주선인 아폴로 7호의 우주 실험에 이어, 1968년 12월 21일 새턴 5호 로켓에 의해 처음으로 발사된 아폴로 8호는 20시간에 걸쳐 달 궤도를 10회 선회하고 지구로 돌아와, 달까지의 왕복 비행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로써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은 달의 뒷면을 직접 관찰한 최초의 사람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

 

아폴로 8호의 성공으로 미국은 인간의 달 착륙에 대해 확실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뒤이어 1969년, 아폴로 9호를 이용해 지구 대기권에서 착륙선과 본체의 도킹 실험을 성공했고, 1969년 5월 18일 아폴로 10호를 발사해 달 착륙을 위한 최종 실험을 진행했다.

 

아폴로 10호는 달에 무사히 도착해 착륙선을 달 표면 위로 약 15km까지 접근시켰다.

드디어 1969년 7월 16일, 닐 암스트롱 선장과 에드윈 올드린 주니어, 마이클 콜린스 등 세명의 우주인을 태운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발사됐다. 아폴로 11호는 지구를 1바퀴 반 정도 돈 후에 시속 약 4만km의 속도로 달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7월 20일 오후 10시 56분 20초(한국 시간으로는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20초),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인 이글호는 달의 ‘고요의 바다’ 위에 무사히 착륙했다.

 

그리고 6시간 반 정도가 지난 후 암스트롱 선장과 올드린이 우주복을 입고 달 표면에 역사적인 발자국을 남기게 된다.

이때 암스트롱 선장이 남긴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한 걸음에 지나지 않지만, 인류에게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라는 말은 우주 개발사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대사가 됐다.

아폴로 11호의 성공으로 미국은 구소련에게 짓밟혔던 자존심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인류에게 우주에 대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됐다.

 

그 후 1970년 발사된 아폴로 13호가 산소 탱크 폭발로 중간에서 귀환하기도 했지만,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총 12명의 우주인을 태운 6대의 우주선(아폴로 11호~17호)이 달에 착륙했다.

 

이들은 달 표면을 탐사하고 달지진계, 태양열풍측정기, 지구와 달의 거리를 측정하기 위한 레이저광선반사기를 달표면에 설치했으며 달의 토양 샘플을 가지고 지구로 귀환했다.미국은 아폴로 계획의 성공을 위해 총 250억 달러(현재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조원)를 지출했지만, 그 성공으로 인해 미국 국민들이 가진 자신감은 돈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조작설

외국의 일부 방송과 잡지 등을 통해 가끔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이 조작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때가 있다. 그들은 아폴로 우주선이 보내온 영상과 사진이 실제로는 지구에서 가상으로 촬영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달에는 공기가 없는데도 성조기가 펄럭였다’, ‘그림자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다’, ‘달의 암석에 특별한 마크가 표시돼 있었다’ 는 등 조작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주장하는 내용은 무척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영상물들 중 상당부분은 실제로 NASA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달 착륙의 가장 중요한 증거는 당시 아폴로 우주인들이 달 표면에 설치한 반사판이다. 지금도 레이저 광선을 이 반사판에 반사시켜 달까지의 거리를 측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폴로 우주선의 착륙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이다.

 

달 탐사의 미래

아폴로 계획 이후 막대한 예산이 드는 달 탐사 대신 실용주의 우주 개발이 중심이 되면서 주춤했던 달 탐사는 1990년대에 이르러 미국에서 다시 시작됐다. 클레멘타인, 루나 프로스펙터 등이 달 기지 건설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보다 자세한 달 탐사를 시도했다. 이렇듯, 아폴로 착륙 이후의 달 탐사는 달에 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계획 중 하나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달에 기지가 건설될 경우, 달은 행성 탐사의 중간기지 역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원을 지구로 가져오는 에너지 보급소의 역할도 하게 될 것이다.

달에는 핵융합의 연료로 쓸 수 있는 헬륨-3(He-3)이 상당량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륨-3은 보통의 헬륨보다 중성자가 하나 적은 동위원소로, 방사능 오염을 수십 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핵융합 연료이다.

 

헬륨-3은 지구에는 극히 소량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달 표면에는 태양으로부터 날아온 많은 양의 헬륨-3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에 존재하는 헬륨-3의 양은 100만~5억 톤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100만 톤이면 인류가 약 1만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양과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비록 예산 문제로 달 재착륙 계획이 지연되고는 있으나, 인류의 우주 개발이 늦춰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비록 예산 문제로 달 재착륙 계획이 지연되고는 있으나, 인류의 우주 개발이 늦춰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이외에도 일본이나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달 착륙과 기지 건설을 위한 계획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또한 2010년 4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2030년대 중반까지 화성 착륙을 위한 우주선을 발사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아폴로 발사로 축적된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이제 우주에서의 생활을 SF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머지않아 지구 궤도 위에 우주 도시를 건설할 것이며, 달이나 화성에 기지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이번 세기가 지나기 전에 대부분 이루어질 것이다.

[교육팁]

달착륙선과 우주선의 도킹을 간단한 실험을 통해 알아보자. 우선 종이컵 두 개와 큰 빨대 1개, 작은 빨대 6개, 글루건, 칼을 준비한다. 종이컵 두 개의 바닥을 마주보게 해서 같은 위치에 한 번에 구멍을 뚫는다. 두 종이컵에 고정시키는 빨대는 굵기와 길이가 달라야 하므로 도킹 대상 종이컵은 굵은 빨대를 4~5cm정도로 길게 자르고, 도킹하려는 종이컵은 얇은 빨대를 2~3cm 정도로 자른다. 두 개를 마주보게 하고 천천히 결합시켜 본다.

 

실제 우주선의 도킹은 도킹하려는 우주선과 도킹 대상이 되는 우주선의 안전을 위해 컴퓨터가 도킹의 전 과정을 느리고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보통 도킹에 실패하면 또 한 번의 시도를 하고, 두 번째에도 실패하면 도킹하지 않고 그대로 귀환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이 따르는 작업이다. 이 실험을 통해 도킹의 기본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교육 과정]

- 중학교 1학년 실과, 미래의 기술

- 중학교 2학년 과학, 지구와 별

- 중학교 3학년 과학, 태양계의 운동

 

/ 이태형 충남대학교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 (주)천문우주기획 대표이사 hyades1@cosmodre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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