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식 농장을 시작하여 근대식 농업기술을 도입하려 애썼던 선구자. 보빙사의 일행으로 약 40일 동안 미국에서 농업기술을 배움. 귀국과 함께 미국식 농목장을 설치하여 3백 44종의 농작물을 얻어냈다. 얻어낸 종자를 전국의 305개 지방에 나눠 보내어 재배를 권하기도 했다. 아마 이들 새 품종이 널리 보급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새 채소나 곡물을 먹을 사람이 드물었을 테니까 어차피 그것이 널리 보급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1886년 봄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 초빙되어 온 영국의 농업기술자 제프리마저 1년 안에 죽었기 때문에 한국 최초의 근대 농업기술의 수용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