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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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의 침략으로 고통받는 백성들. "왜구를 막는 데 화약만 한 것이 없으나, 국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 태조실록 1395년 4월 화약의 필요성을 절감해 원나라 이원(李元)을 찾아간 최무선(1325~1395)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마침내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 1377년, 먼 곳 공격을 위한 신형 무기를 개발 고려 우왕 8년, 진포대첩 화약 무기로 무장한 100척의 배로 왜선 500척에 맞서 대승을 거둠 화약을 발명해 나라를 구한 최무선(1325~1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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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석 교수|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세종은 왕에 즉위하면서부터 화약무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는지 새로운 화약무기의 개발에 힘을 많이 쏟았다. 화약무기의 개량과 새로운 개발 작업은 최무선의 아들인 최해산을 등용시켜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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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연석 교수|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영화 ‘명량’의 누적관객수가 드디어 1,750만 명을 넘었다. 한국 영화사상 최고의 관객수를 기록하고 있다. 영화 내용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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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화약무기는 고려말 최무선(崔茂宣)이 개발한 화약무기를 보완하고 약간 개량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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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선(崔茂宣)은 고려말(1325-1395)의 무기 발명가이며 무관이었다. 그는 중국의 이원(李元)을 만나 흙으로부터 초석(염초)를 추출(抽出)하는 방법을 배우고 화약을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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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을 이겨내며 오늘에 이르렀다. 크고 작은 전쟁을 겪어야 했던 우리 민족은 성능이 뛰어난 무기를 보유하고 끊임없이 훈련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요체(要諦)임을 습득했다. 전쟁에서는 병력의 규모나 전략과 전술, 충분한 물자의 조달, 그리고 훈련된 병사와 장수의 통솔력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사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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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고대 4대 발명품 중 하나인 화약은 ‘불을 만드는 약’, ‘불을 만드는 가루’라는 뜻을 지닌다. 옛날 화약은 흔히 ‘흑색화약’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화약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약을 연구하던 학자들이 염초, 숯, 유황을 넣고 실험하다가 갑자기 폭발하는 것을 보고 우연히 화약이 발명됐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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