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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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수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 피타고라스는 사실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기원전 560년경 에게해의 사모서섬에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며, 일설에는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시조인 탈레스의 제자였다고도 한다. 그는 이후 '피타고라스 학파'라 일컬어진 추종자들을 데리고 '만물은 수'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수론과 기하학, 음악, 천문학 등을 연구하였으며,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이탈리아 남부의 여러 도시에서 정치적인 활동을 하였다. 피타고라스가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진 것은 피타고라스 정리와 무리수(√2)를 발견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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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수학자, 물리학자. 파엔차 출생. 그리스의 고전 기하학과 천문학을배워 코페르니쿠스설을 지지하는 동시에, 갈릴레이의 에 관한 로마에서의 최초의 연구자가 되었다. 그의 연구중에서 특히 유명한 것은 진공에 관한 실험이다. 토리첼리는 관 속에서 물이 왜 9m이상은 상승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풀기위해, 물보다 무거운 액체인 수은을 사용한 실험을 했다. 그는 1643년 1.2m길이의 유리관을 수은으로 채운 다음, 접시 위에 거꾸로 세웠을때 유리관 속의 수은 위 공간에 진공이 생기는것을 밝혔다. 그는 이것을 대기압에 의한 것으로 설명하여 수은 기압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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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천문학자. 최초의 해왕성 발견자. 뷔텐부르크 근교에서 태어나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과 이학을 공부하였다. 1835년에 동 대학 천문대의 대장 엥케에게 천문학을 배우고 조수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6년간 구경 23cm의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에 종사하였다. 1838년에 토성의 제3 고리를 발견하고, 1839년에서 1840년까지 3개의 혜성을 발견하는 등 당시의 천문학계를 놀라게 하였다. 또한 1846년에는 르베리에의 예측으로 이미 그 존재가 입증되었던 해왕성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는데, 그는 르베리에에게 해왕성 탐사 의뢰를 받고 그 날밤에 추정 위치 근처에서 이 별을 포착하였다. 1851년에는 브레슬라우 천문 대장이 되었고, 이 무렵 그는 소행성의 시차가 태양계의 거리 결정에 적용된다는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 유성과 혜성에 관한 연구도 많으며, 저서에는<혜성의 궤도 요소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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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실험 물리학자. 파리 출생. 선척적으로 몸이 약해 가정 교사에게서 공부를 배웠다. 1845년경부터 피조와 공동으로 빛을 연구하기 시작하여 1850년에는 아라고가 제기한 공기 속과 물속에서의 광속 비교 실험을 하여, 광속이 공기 속에서 더 빠르다는 파동설을 뒷받침하는 결론을 얻었다. 1851년에는 일명 '푸코의 진자'를 고안하여 지구의 자전을 실험적으로 증명하였고, 1852년에는 자이로스코프를 발명하였다. 1855년 강한 자기장 속을 움직이는 구리원에서 맴돌이 전류 즉 '푸코 전류'를 발견했다. 천문학 분야에서는 반사 망원경의 거울을 개량하고, 렌즈와 반사경 곡면의 표면 결함을 검사하는 방법인 '나이프 에지테스트'를 개발했다. 1862년에는 회전경을 사용하여 초속 29.8만 km라는 정확한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데 성공하여, 그 후의 광속 측정에의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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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錫文. 조선 숙종 때의 학자. 호는 대곡. 숙종 때 벼슬길에 올라 1726년에 통천 군수를 지냈다고, 말년에는 경기도 포천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았다. 일찍부터 역학에 관심을 갖고 주자학저적뿐만 아니라 제자백가와 천문학, 지리학까지 두루 읽었다. 1697년에는 라는 책을 쓰고, 여기에서 지동설을 주장하였다. 그 책에는 `천체가 지구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고 지구가 자전함으로써 낮과 밤의 하루가 이루어진다. 그것은 마치 배를 타고 산과 언덕이 움직이는 것을 보되 사실은 산과 언덕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배가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당시 천동설을 원칙으로 한 주자학에 최초로 반대 의견을 말한 학설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그의 학설은 홍대용의 지동설과 역사 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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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수학자, 이론 물리학자. 아일랜드의 더블인에서 출생. 1823년 더블린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1824년에 기하광학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1827년 이 곳의 천문학 교수와 던싱 천문대장을 겸했다. 1828년에는 '광선계 이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그는 미분과 같은 간단한 수학 연산을 통해 광선들의 계가 갖는 모든 성질들을 해밀턴의 특성 함수로부터 유도해 냈다. 이 논문은 기하광학의 기초 이론이 됨과 동시에 역학 이론의 발단이 되었다. 1834년에는 광학에 도입한 특성 함수를 역학 전반에 확장하여 변분 원리로서 '해밀턴의 원리'를 만들었고, 같은 해에 원뿔 함수를 발견한 공적으로 아일랜드 학술원이 수여하는 커닝햄 메달과 영국 학술원이 수여하는 황실 메달을 받았다. 나아가 '해밀턴의 정준 원동방정식'을 확립하였다. 해밀턴의 역학은 야코비에 의해 발전되어 현대 파동 역학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또 4차원법에 대해 연구를 하여, 다원수 이론 등 추상대수학과 물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분야의 저서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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洪大容. 조선시대의 실학자. 과학사상가. 호는 홍지. 북학파의 선구자로서 1766년 삼촌을 따라 중국에 가서 천문·지리·역사 등에 관한 지식을 쌓고 서양 문물을 배우고 돌아왔다. 귀국하여 천주교와 천문학의 이론을 기록한 '유포문답' 과 과학 사상을 담은 '의산문답'을 지었다. 북학파의 선구자로 지구의 자전설과 경제 정책의 개혁, 과거 제도를 폐지하여 공거제(각 지방의 인재를 추천함)를 통한 인재 등용 등 혁신적인개혁 사상을 제창하였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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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여행해도 미리내는 외계인을 찾지 못하자 안타까워 한다. 이때 지구를 빙빙 도는 물체를 발견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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