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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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스톤힐 대학에서 천문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뛰어난 과학 작가로 유명한 쳇 레이모의 천문학 교양서. '감동적인 에세이와 사진이 함께하는 별과 우주로의 사계절 산책'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의 문학적 능력과 깊은 사색의 성과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책으로, 특별히 제작된 24개의 계절별 별자리 지도를 통해 계절별로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별과 행성과 혜성, 유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폭발로 시작한 우주의 탄생에서 무한히 팽창하는 우주의 종말까지 세상 만물의 운명, 별들의 일생과 지구와 달의 기원, 일식과 월식이나 유성우 같은 천문 현상, 외계 생물의 존재 가능성 등 다양한 천문학적 주제들을 흥미롭게 소개한다. 모두 4장 12개 절로 이루어져 있으며, "밤하늘을 보세요"코너에서는 성도와 함께 별자리에 대한 짤막한 설명과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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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black hole)의 존재는 현대천문학과 현대물리학의 이론이 정확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현대천문학의 별진화이론과 현대물리학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이런 이유로 블랙홀은 20세기 이후 10대 뉴스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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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문학계의 가장 명예로운 펠로우십인 나사 허블 펠로우십(박사학위를 받은 지 3년 이내에 해당되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나사에서 주는 펠로우십으로, 매년 10여명을 뽑고 3년 동안 연구비를 보장해 준다. 천문학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펠로우십 중 하나다)을 받아 연구의 정점을 맞고 있는 열혈 천문학자, 이 사람이 『블랙홀 교향곡』을 쓴 우종학이다. 한국에 돌아오게 된다면 ‘다양한 과학의 내용들이 학문의 분야를 넘어서서 토론되고 대중과도 호흡할 수 있는 장을 열어보는 것이 막연한 꿈’인 그가 한국의 대중에게 다가서는 첫 걸음으로 이 책을 통해 대중과의 과학적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몇 과학자의 황당하다고 여겨지던 엽기적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어떻게 블랙홀이 발견됐는지, 블랙홀의 정체는 무엇인지, 블랙홀이라는 엽기적 존재에 어떤 사람들이 열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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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일주운동을 알아볼 수 있는 실험을 해보고 각 위도에 따라 별의 일주운동 모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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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집트에서 활약한 이슬람의 물리학자. 천문학·수학·의학도 연구. 유럽에도 널리 알려져 베이콘, 케플러에게 영향. 특히 광학의 연구로 유명한데, 구면경 등의 수차, 굴절각과 입사각, 렌즈 등에 대해서 서술했으며, 박명의 현상을 대기차로 설명하고, 이것으로 대기의 높이를 알아보았다. 눈의 구조와 기능, 시각 등에 대해서도 뛰어난 연구를 남겼다. 저서《광학》은 실험에 의한 과학연구법의 훌륭한 성공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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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우주의 중심에서 밀어내기는 했지만 수십 년 동안 적극적인 동조자를 얻지 못하고 있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세상에 받아들여지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케플러였다. 그는 행성 운동의 법칙을 밝혀내고, 천체역학을 탄생시켰다. 독일의 작은 도시 바일에서 태어난 케플러는 수도원 학교를 거쳐 1587년 튀빙겐 대학에 입학하였다. 여기서 코페르니쿠스의 를 접한 그는 신학자가 되려던 소망을 접고 수학 교사가 되었다. 점성술, 수학,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이 과학자는 우주에는 신비로운 조화가 존재하며 개인과 우주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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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전반에 활약한 우리 나라의 대표적 천문학자. 1427년 과거에 급제하여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에서 근무함. 1434년쯤 이순지는 간의대라는 관측대의 책임자가 되었고, 이 자리에 있으면서 그의 천문학은 더욱 깊이를 더해 갔음. 세종 대의 천문학을 몇권의 책에 정리하여 오늘까지 남겨 주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 , 등을 들 수 있다. 세종 때 만든 수많은 천문계산표들을 남긴 이순지는 세조 때에는 라는 풍수지리에 관한 저서도 남겼다. 조선시대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이순지는 1465년(세조 11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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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천문학자. 서울 출생. 연희 전문학교 수물과(數物科)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전공하여 1926년에 '항성 분광 분석'이라는 논문으로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7년 귀국하여 연희 전문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우라 나라 최초로 미적분학을 강의하였다. 중앙 기독교 청년회 이사를 지냈고, 광복후에는 국립중앙관 상대 초대 대장으로 6년간 재임하였다. 그 후 천문학 회장으로 있으면서 한국 대표로 천문 기상 국제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하였고, 1960년 학술원 회원에 선출되었다. 새로운 별을 발견하여 '원철 스타'라고 명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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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년 9월 7일 부르고뉴의 몽바르에서 방자맹 프랑수아 르클레르와 안 크리스틴 마를랭의 아들로 태어났다. 뷔퐁가는 부상하는 부르주아 집안이었다. 10대 말이 되었을무렵 뷔퐁의 관심은 과학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1728년 그는 앙제의 대학에서 의학, 수학, 천문학과 식물학을 공부했다. 1730년대 초에 뷔퐁은 군함 건조에 쓰는 목재의 장력 강도를 연구하여 책으로 냈다. 뉴턴의 미적분법을 이용한 확률 이론을 응용하여 프랑스의 복권에 관한 에세이도 썼다. 『박물지』는 당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디트로의 『백고전서』와 함께 계몽사상의 초석으로 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