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화합물 | 과학문화포털 사이언스올 - Part 8

유기화합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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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속이나 유기화합물 등이 물 속에 유입되면 물에서 분해되지 않고 있다가 식물성 플랑크톤이나 물풀에 흡수되고 이 물질이 먹이사슬을 따라 차례로 축적되는 현상을 생물농축이라 한다. 특히 독성이 강한 오염물질의 생물농축은 생명체에게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는데, 대표적으로는 수은, 카드뮴, 납 등의 중금속 물질이나 DDT, BHC 등의 유기 화합물이 있다. 수은, 카느뮴, 납과 같은 중금속이나 DDT, BHC, PCB, 다이옥신, 유기 염소계 농약 등의 유기합성물질이 생활 하수, 쓰레기 침출수, 농약, 살충제, 광산의 유수, 각종 폐기물 등에서 유출되어 토양이나 물에 유입되면서 생물농축이 시작된다. 토양이나 물에 유입된 중금속이나 유기화합물은 자연분해가 되지 않아 생산자인 식물성 플랑크톤이나 식물에 쉽게 흡수된다. 일단 생산자에 흡수된 생물농축 원인 물질은 먹이사슬을 따라 상위 소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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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화학자. 분자량 측정을 위한 증기 밀도 측정법 및 유기물 중의 질소의 정량적인 측정법을 고안하였다. 이 방법은 뒤마법이라 불리며, 그 당시 아직 인정되고 있지 않던 아보가드로의 원자·분자의 생각을 옳다고 인정하고, 이들 방법을 궁리하였다. 또 유기화합물의 구조에 대하여, 처음으로 형(type)의 생각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C.F. 제라르에 계승되어, 유기화합물을 수소형·염화수소형·물형·암모니아 형이라는 4형으로 분류하는 <형의 이론>으로 발전. 원자가의 생각을 준비했으며, 유기화학의 체계화에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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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화학자. 파리에 유학, 게이 뤼삭에게 배웠으며, 22세에 기센 대학 교수가 되었고, 각종 유기화합물의 합성과 분석을 비롯하여 유기화학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뵐러와 공동으로 반응 때에 무더기로 움직이는 원자단이 있다는 것을 발견, 이것을 기라 불렀다. 기의 생각은 뒤마 등의 형의 생각과 함께 유기화합물의 구조 연구를 발전시켰다. 1840년 《농예화학》을 출판, 그 속에서 식물의 비료는 유기물이 아니라 무기물이라도 무방하며 특히 칼륨과 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물화학》(1842년)에서는 동물의 영양으로서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서술하여 큰 영향을 끼쳤다. 교육에도 열심이어서, 세계 최초의 학생 실험실을 만들었으며, 당시의 유기화학의 세계적 중심이 되었다. 《화학 통신》이라는 쉬운 책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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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화학자로, 유기합성 연구의 제1인자. 하버드 대학에서 1944년의 키니네류의 합성에서 비롯하여, 클로로필, 비타민류 등 구조가 복잡한 유기화합물을 잇따라 합성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1965년 이 업적에 의하여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론적으로는 우드워드-호프만 법칙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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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유기화학자. 케쿨레와 바이어에게 사사했으며, 독일 여러 대학에서 주로 당류·단백질 등을 연구, 생물화학의 기초를 세웠다. 복잡한 구조의 유기화합물의 구조를 결정하고, 합성하였다. 1902년의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피셔라는 유기화학자가 유명한 사람만 4사람이 있는데, 모두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활약하였다. 촉매를 써서 일산파탄소와 수소로 석유를 합성하는 피선-트롭슈 반응의 피셔는 F.피셔이고, 혜모글로빈의 성분의 구조결정과 합성으로 1930년의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것은 H.피셔이다. 또 E.O.피tu는, 유기금속화합물의 연구로 1973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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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화학자. 1923년 유기화합물의 미량분석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1893년 그라츠대학교에서 의사자격을 획득했으며, 1913년 이 대학교 의화학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1904년경부터 담즙산과 다른 물질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이 물질들은 재래의 분석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을 얻기가 어려웠으므로 그는 극소량만으로 분석할 수 있는 분석법을 고안했다. 1912년까지 그는 7∼13㎎의 출발물질만 가지고도 탄소·수소·질소·황을 확실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획기적 성공으로 과학자들은 마침내 수십분의 1㎎의 물질만으로도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또 원자단을 측정하기 위한 감도가 좋은 미량저울과 미량방법을 개발했으며, 신장의 기능적 용량을 결정하는 간단한 방법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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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화학자. 일본 나라 출생. 교토 대학 공학부 공업화학과를 졸업했다. 교토 대학 교수와 교토공예섬유대학 학장을 거쳐 1988년부터 (재)기초화학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프론티어 궤도이론으로 1981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유기화합물의 전자구조와 화학 반응의 이론적 연구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또 많은 양자화학 연구자를 길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