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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잘츠부르크출생. 1823년부터 10년간 빈의 공업 연구소에서 조수로 일했고, 1841년 프라하의 국립 공업대학 교수, 1847년 셈니츠 공업 대학 교수를 거쳐, 1850년 빈의 물리학 연구소 소장 겸 빈 대학의 물리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는 음향 현상과 광학 현상을 연구하여 관측자와 진동원과의 상대 운동에 의해 진동수가 변화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른바 '도플러 효과'의 존재를 설명하였다. 이 유명한 현상은 라는 논문 속에 해석되어 있다. 이것은 얼마 후 발로트에 의해 음향 현상이 실험으로 확인되었고, 빛에 대해서도 항성의 스펙트럼선의 어긋남을 통하여 확인됨으로써 도플러 효과는 천체 물리학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밖에 수차ㆍ항성ㆍ색체론에 관한 연구가 있고, 망원경과 광학거리계의 개량 등을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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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병리학자. 쾨니히그레츠에서 출생. 프라하 대학과 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1834년 빈 대학 병리 해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질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시체의 병리 해부를 권장하고, 많은 양의 별이 해부 기록을 남겨 해부학 연구에 기여했다. 또한 악성 심내막염(심장 내면을 덮고 있는 막에 생기는 염증)을 일으키는 병원균을 알아내기 위한 연구를 하다가 대엽성 폐렴(크루프성 폐렴)과 소엽성 폐렴(기관지 폐렴)을 구분하였고, 신장염과 지방신을 구분하였다. 또 급성 위확장ㆍ급성 간황색 위축증(로키탄스키병)ㆍ폐기종 등의 병리를 밝혔다. 그의 저서 는 병리학서로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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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생화학자. 빈 대학을 졸업한 뒤 케임브리지 대학 캐번디시 연구소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1959년 그는 헤모글로빈 결정의 X선 회절상을 얻어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결정했다. 이 회절상은 헤모글로빈이 4개의 폴리펩티드 사슬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폴리펩티드 사슬에는 1개의 헴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헤모글로빈에 의한 호흡의 메커니즘을 완벽하게 이해하게 해 준 중요한 발견이다. 1962년 X선 회절 분석법으로 헤모글로빈의 구조를 결정한 공로를 인정받아 켄드루와 함께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또한 그는 눈이 빙하로 변하는 과정을 결정학적으로 연구하여 빙하의 흐름을 조사했다. 그 결과 빙하가 표면에서는 빨리 흘러내리고, 바닥 부근에서는 느리게 흘러내린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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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이론물리학자. 빈 출생. 빈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그라츠 대학ㆍ뮌헨 대학ㆍ빈 대학의 교수를 지냈다. 그의 연구는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지만, 그 주제는 이론 물리학 특히 고전 역학과 원자론적 관점에서의 열 이론이다. 맥스웰의 기체 분자 운동을 발전시켜 속도 분포 법칙을 더욱 엄밀리 증명하여, 분포 함수에 시간적 변화를 주는 볼츠만 방정식을 세웠다. 또한 이것을 기초로 열현상의 비가역성의 역학적 증명을 얻고자 노력하여, 1872년 H 정리를 제시하여 비가역성을 증명하였다. 그러나 1876년 이것에 대해 강력한 비판이 제기되자 H 정리의 물리적 의미를 탐구하여 엔트로피의 증대는 단순한 역학적 법칙이 아니고 확률적 함수로서 파악하는 방법을 수립하였다. 유명한 볼츠만 상수는 이것에서 나온 것이다. 또 평형 분포의 고찰에 관련하여 에르고드 가설을 도입하는 등, 통계 역학의 성립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더 나아가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검토하여 유전율과 투과율의 측정에 따른 전파 속도를 점검하고, 복사 에너지의 온도 의존성을 이론적으로 이끌어 내 슈테판-볼츠만의 법칙을 세웠다. 열렬한 원자론자로서 19세기 말의 에저니 일원론 주창자들의 반원자론과 맞서서 격렬한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만년에 쇼펜하우어 철학에 심취하였고, 신경쇠약에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끓었다. 저서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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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화학자. 1923년 유기화합물의 미량분석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그는 1893년 그라츠대학교에서 의사자격을 획득했으며, 1913년 이 대학교 의화학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1904년경부터 담즙산과 다른 물질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이 물질들은 재래의 분석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양을 얻기가 어려웠으므로 그는 극소량만으로 분석할 수 있는 분석법을 고안했다. 1912년까지 그는 7∼13㎎의 출발물질만 가지고도 탄소·수소·질소·황을 확실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획기적 성공으로 과학자들은 마침내 수십분의 1㎎의 물질만으로도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또 원자단을 측정하기 위한 감도가 좋은 미량저울과 미량방법을 개발했으며, 신장의 기능적 용량을 결정하는 간단한 방법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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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빈에서 출생. 빈 대학과 뮌헨 대학에서 각각 의학과 동물학을 공부했다. 1910년경 프리슈는 일련의 연구를 통해 물고기가 색깔과 밝기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다는 것과, 물고기의 청각이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꿀벌에 대한 연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꿀벌의 방향 감각 및 정보 전달, 일벌의 성장과 행동의 변화와의 관계 등 꿀벌에 관한 여러 현상을 해명하였다. 1919년에는 꿀벌이 다양한 맛과 냄새를 구분하는 데 익숙하다는 것과, 후각이 사람과 비슷한 반면 미각은 그만큼 고도로 발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꿀벌이 원을 그리거나 꼬리를 흔드는 2가지 형태의 춤을 춤으로써 군체의 다른 꿀벌들에게 먹이의 거리와 방향을 알려 준다는 것을 발견했다. 1949년에는 꿀벌들이 편광을 기각함으로써 태양을 나침반으로 사용한다는 이론을 확립했다. 꿀벌에 대한 개체적, 사회적 행동에 대한 연구로 1973년 로렌츠, 틴버겐과 함께 노벨 생리 의학상을 받았다. 주요 저서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