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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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랑살랑 실사구시의 새바람! 백성들의 실생활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개혁이 시작되었다! 실학자 정약용의 거중기부터 조선판 CSI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대동여지도, 최초의 백과사전 등장까지. 무궁무진한 실학의 세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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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기의 실학자이며 개혁사상가이자 과학사상가인 최한기(崔漢綺:1803~1879)의 90권 43책에 이르는 글들을 한데 묶어 놓은 총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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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이며 1861년 (철종12)에는 혼자의 힘으로 <대동여지도> 22첩을 판각하여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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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기(崔漢綺)는 조선말기(1803∼1879)의 실학자이며 과학사상가이다. 최한기의 저술로는 <농정회요(農政會要)>, <육해법(陸海法)>, <청구도제(靑丘圖題)>, <심기도설(心器圖說)>, <명남루수록(明南樓隨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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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洪大容)은 조선후기(1731∼1783)의 실학자이며 과학사상가이다. 그는 <주해수용(籌解需用)>이라는 수학서를 썼으며, 여러가지 천문관측기구를 만들어 농수각(籠水閣)이라는 관측소에 보관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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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유형원(柳馨遠)과 이익(李瀷)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했다.1762년(영조(英祖) 38) 태어나 1836년(헌종(憲宗) 2) 사망했으며, 자는 미용(美鏞). 송보(頌甫), 호는 다산(茶山). 사암(俟庵)이고 당호는 여유당(與猶堂). 본관은 나주(羅州)이다.어려서 아버지에게서 경사(經史)를 배우고 1776년 상경, 이듬해 이익(李瀷)의 유고(遺稿)를 보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이벽(李檗)을 통해 서양서적을 얻어 읽기도 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지평(持平). 수찬 등을 지내고 94년 경기도 암행어사(暗行御史)가 되어 연천현감 서용보(徐龍輔)를 파직시켰다. 이듬해 동부승지.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청(淸)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의 잠입사건에 연루,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으로 좌천되었다가, 부사직. 곡산부사.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유득공(柳得恭), 박제가(朴齊家) 등과 함께 규장각(奎章閣)의 편찬사업에 참여하였다. 99년 공서파(攻西派)로부터 천주교 신봉문제로 탄핵을 받자 자명소(自明疎)를 올리고 사직, 고향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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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계 박세당【1629년(인조 7)~1703(숙종 29)】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서 그 업적이 뛰어나다. 대표적인 저서 「색경(穡經)」은 농사에 관한 내용으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글로 남긴 책이다. 근처에 생가인 사랑채와 부친인 하석 박정의 영정이 있다. 서계 박세당 묘역 탐방을 통하여 박세당의 업적과 조선시대 실학의 특징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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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실학자이자 과학사상가. 대체로 17세기 이후 서양 과학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19세기 이후 급속도로 전파되기 직전에 이미 서양 과학을 폭넓게 배우고 연구하던 학자이다. 1836년에 과 저술. 지구중심적인 우주관을 벗어나 태양중심설을 받아들임.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이 '가백니'라는 중국식 표면으로 이 책에 등장하고 있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도표까지 곁들여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고 있다. 1867년 라는 책을 펴냄. 이것은 1858년 중국에서 번역된 윌리암 허셀(William Herschel, 1738∼1822)의 천문학 책을 발췌한 것인데, 이를 통해 비로소 우리 나라에 한층 체계적인 서양 천문학이 소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866년에는 이란 책도 썼는데 요즘 소아과·산부인과·내과·외과 등 전문의 구분은 이 책에서 이미 시작된 셈이다. 이것은 서양 의학의 대강을 소개한 것으로, 당시 북경에 있었던 영국의 선교사 겸 의사 벤자민 홉슨(Benjamin Hobson)이 쓴 책들에서내용을 골라 꾸민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