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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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이후 또 한 번의 과학기술 부흥기 영·정조 시대 천문·역산 연구를 책임 수행한 서 호 수 (1736 ~ 1799) 조선 4백 년 간 천문현상 기록 수집, 정리 《국조역상고》 편찬 2개의 해시계를 하나의 돌에 새겨놓은 간평일구 · 혼개일구 창제 '해동농서' 집필 새로운 농학 체계 확립 조선 최고의 천문 역산 전문가 서 호 수 (1736 ~ 1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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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조선 전기 과학기술 문화의 부흥을 이끌었다면 조선 후기의 과학기술 부흥기는 영·정조 때였다. 이 두 시기는 과학 부흥기를 맞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니지만, 성격적인 면에서는 약간의 차이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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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18세기말)에 서호수(徐浩修: 1736-1799)가 쓴 농업기술서로 정확하게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은이가 죽기 직전까지도 만들었던 것 같다. 농가집성(農家集成)ㆍ산림경제(山林經濟)ㆍ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ㆍ금양잡록(衿陽雜錄)등 우리 나라의 지금까지 내려온 농서를 바탕으로 부족한 내용은 주로 중국 농서인 서광계(徐光啓)의 농정전서(農政全書)와 왕정(王楨)의 농서를 참고하여 쓴 해동농서는 8권의 초고본(草稿本: 성균관대 소장)과 4권의 목판본(일본 오사카 부립도서관 소장)의 두가지가 있다. 내용은 우리 나라 농학의 전통 위에서 우리의 자연조건을 반영하고 중국의 농업기술까지도 부분적으로 받아들여 논ㆍ밭에 관한 제도(田制)ㆍ농기구ㆍ수리(水利)를 포함한 새로운 농학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즉 이제까지의 다른 학자들과는 다르게 중국의 농서를 비판적인 입장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우리 나라 농학 사상 일정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