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1580

  프랑스의 물리학자. 방사능의 발견으로 유명. X선(1895년 뢴트겐이 발견)이 형광을 수반한다는 현상에 힌트를 얻어, 1896년 인광을 발하는 우라늄 광석을 검은 불투명한 종이로 덮은 사진건판 위에 놓고 그 작용을 확인했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방사선이 그 검은 종이를 투과하여 건판을 감광시킨다는 것을 발견. 다시 이 방사선이 기체를 전리시킨다든지, 전기장·자기장의 작용을 받아 구부러진다는 것을 밝혀 내어 X선과는 다른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 방사선은 처음에는 베쿠렐선이라 불렸다.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

1571

  프랑스의 물리학자. 파리 시립고등공업물리화학학교에서 랑쥐뱅에게 배웠다. 졸업 후 퀴리 부인의 라듐연구소에서 방사능의 연구를 했으며, 딸 이렌 퀴리(Irene Curie, 1897∼1956)와 결혼하였다. 1934년에 이렌과 함께 알루미늄, 붕소에 α선을 대어 인공방사성핵종을 만들었으며, 다음 해에 두 사람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였다. 우라늄의 핵분열이 발견되자, 분열 후에 2개 이상의 중성자가 나오는 것을 실험으로 확인하여 핵연쇄반응이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스 독일에게 점령된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하였다. 전쟁 후, 중앙과학연구소 소장, 원자력청장관으로 활약하였다.

1548

  영국의 실험물리학자. 래더퍼드의 지도로 방사능의 연구를 했으며, 후에 케임브리지에서 원자핵물리, 특히 α선을 원자핵에 때렸을 때에 일어나는 반응을 연구하였다. 1932년에는 중성자를 발견. 이업적으로 1935년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중에는 미국에서 원자폭탄 개발에 종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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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퀴리는 1859년 5월 15일 프랑스의 파리에서 태어났다. 가정은 가난하지도 부자도 아니었다. 피에르의 아버지는 개업 의사였는데, 평생을 두고 과학에 정열을 쏟은 사람이었다. 피에르는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을 오로지 아버지와 형으로부터 받았다. 그의 꿈 많은 성격은 학교 선생들의 틀에 박힌 수업을 견뎌내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부모는 피에르의 머리가 돌아가는 것이 느리기는 하지만 결코 나쁜 머리는 아니라고 믿어서 끈기 있게 가정 교육을 계속하였다. 아버지는 그에게 자연을 관찰하고 그것을 사랑하도록 가르쳤다. 피에르는 자기 나름대로 깊이 사물을 생각하고 정신을

1545

  독일의 화학자. 유기화학을 연구하다가, 영국에서 람제이에게 사사하고부터 방사성물질의 연구로 전환하며 1912년에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로 옮겨, 마이트너와 함께 수많은 방사성 물질을 발견하였다. 1938년에 슈트라스만과 함께 우라늄에 중성자를 쪼여 주면 원자핵이 분열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대발견에 의하여, 1944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제2차세계대전 후에는, 카이저 빌헬름 협회가 개편되어서 생긴 막스 플랑크 협회의 초대 총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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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물리학자. 뉴욕에서 출생. 컬럼비아 대학과 로렌스 방사능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그는 장(場)의 양자론에서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연구하여, 1967년에는 소립자의 통일 모형을 제출하고 양자크로모 역학을 전개시켰다. 그의 이론은 1973년 CERN 가속기로 중성 커런트의 존재가 확인된 것을 비롯하여 실험적 증거가 많아 거의 확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1979년 전자기 상호 작용과 약한 상호 작용을 게이지장 이론의 입장에서 통일적으로 다루는 이론을 정식화한 공로로 글래쇼, 살람과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82~1983년에는 중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