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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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비해 빠르게 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가는 곳마다 새로운 기술들이 넘쳐났고, 김용관 선생은 근대화의 뿌리가 과학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여 과학기술인들을 만나 발명 학회를 창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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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명과 김용관은 한국형 과학의 핵심 인물이다. 두 사람 모두 식민지 상활에서 조선의 과학기술의 위신을 세우려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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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容瓘. 김용관은 서울 창신동에서 태어났고 호는 장백산이었다. 1918년 경성공업전문학교 화학공업과를 졸업하고 동경의 구라마에 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일본에서 학업을 마치고 1924년 귀국한 그의 발명학회 설립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과학 대중화 운동의 모체가 된 과학 지식 보급회의 산파역을 맡았다. 또 언론과 법조, 교육, 종교계를 포함한 과학 대중화 운동을 전개하였다. 『과학 조선』이라는 과학 대중잡지를 창간하여 편집인을 하면서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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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길용은 서울 종로구 예지동에서 출생하였다. 그리고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를 졸업하였다. 박길룡은 최초로 조선인 건축설계사무소인 "박길룡 건축사무소"를 운영하였다. "당시 하루에 집 한채를 설계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또한 박길룡은 사회활동에도 폭이 넓어 건축 분야 외에도 경성공전 동기 김용관이 주도한 발명학회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조선인 최초로 건축설계사무소를 개설하여 서울-특히 종로구 일대에 많은 건물을 설계하였다고 한다.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서구 근대 건축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자 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