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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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산불 확산...러시아 비상사태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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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국방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보고서를 다음 달에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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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유인 탐사를 위해 모형 우주선과 캡슐을 만들고 그 안에서 연구자 세 명이 500여 일 동안 외부와 격리된 채 생활하도록 하는 '화성 500일' 실험이 러시아에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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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태생의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물리·우주·생물 분야에 대해 연구. 고전역학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을 양자역학의 이론으로는 빠져나갈 수 있다는 <터널효과>를 발견. 원자핵의 α붕괴를 설명. 유전자 DNA의 암호에 관한 고찰. 또한 그는 우주가 불덩이의 폭발로 평창해 왔다면 우주의 모든 방향으로부터의 전자기파가 존재한다고 예언하여, 후에 이것이 우주흑체방사로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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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과학자. 러시아의 과학 아카데미의 최초의 러시아인 정회원으로 뽑혔으며, 거기서 연구하였다. 물질의 구조와 그 변화, 열의 발생 등을 현재의 원자·분자에 가까운 입자라는 착상으로 설명하고 실험하였다. 또 화학반응에서의 질량의 변화에 착안하여 반응의 전후에서 질량이 전체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하였다. 이밖에 유리 제조, 야금, 공중 전기, 금성의 대기, 빙산, 북극해 항로, 지도 제작 등 물리·화학·천문·지학·기술학·인문학 외에 많은 분야에서 선구적 연구를 하였다. 시인으로서도 유명하다. 러시아 최초의 대학인 모스크바 대학의 창립(1755년)에도 공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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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토양학자. 페테부르크 대학에서 광물학ㆍ지릴학을 전공한 후 도쿠차에프 아래서 초양학을 연구하여, 그 방법에 따라 (1908)을 발표함으로써 능력을 인정받았다. 도쿠차에프 방법을 각종 토양에 널리 적용하여 자연 조건의 투영이 여러 종류의 토양형을 형성시킨다는 것을 실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1923)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는 또 토양 콜로이드의 결정적 역할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였다. 또 다른 저서 (1912)은 미국 토양학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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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토양학자. 근대 토양학자의 선구자. 스콜렌스크 출생.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지질학을 공부하고 모교 교수가 되었다. 1870년 그는 니지니노브고로드 현의 토양, 특히 '체르노젬'이라고도 부르는 검은 흙의 생성과 성인에 관해 조사를 하였다. 거기서 그는 토양이란 암석이 풍화하여 생긴 잔 부스러기이고, 어느 정도 썩어 버린 동식물의 유체가 그것에 섞여 있다는 일반적인 개념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그리고 토양의 부식 형성 과정을 자세히 연구하여 토양은 현재의 기후ㆍ기반암ㆍ생물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생성되었다는 것을 발표하였다. 그이 이러한 생각을 근거로 토양을 분류한 토양대의 개념은 그 후 구미 여러 나라에 소개되었고, 토야의 범위가 넓어지고 조사법이 달라지긴 했어도 여전히 그의 기본 개념은 계승되고 있다. 저서에 (1883년) 등이 있고, 모스크바 그이 업적을 기념하는 도쿠차예프 기념 토양 연구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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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경제학자ㆍ수학자. 랴잔 출생. 페테르부르크 대학에서 공부하고, 모교의 교수를 지냈다. 그는 여려서부터 수학 성적이 뛰어나 중학 시절에 상수 계선형 미분방정식의 한 해법을 발견할 정도였다. 그는 확률 과정이 이론 가운데 특히 '어떤 계통의 시간적 발전의 모양이 계통의 현재 상태아 목표하는 미래의 시점만으로 확률적으로 결정되는 확률 과정'을 도입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마르코프 과정'이라 불리고 있다. 그의 연구는 상호 종속적 사건들의 확률 연구를 토대로 발전하였고, 생물학 및 사회과학에 널리 응용되었다. 저서에 등이 있다.